타인의 삶을 구경하느라 멈춰버린 당신에게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 흩어지는 나의 일상을 역사로 만드는 법

by 라이팅유주

돌이켜 보면 나는,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철저히 ‘콘텐츠 소비자’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아주 달콤하고 편안하기만 한 소비자의 삶 말이다. 퇴근 후 지친 몸을 뉠 잠시의 여유라도 생기면, 나는 침대나 소파에 파묻혀 습관처럼 스마트폰 화면부터 켰다.


엄지손가락 하나로 화면을 쓱쓱 올리며 타인의 화려한 일상, 정제된 지식,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훑어 내리고 있으면, 알 수 없는 묘한 안도감까지 느껴지곤 했다. 그 작은 사각 화면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아는 것 같고, 나도 온라인 속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역시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끝없는 스크롤의 바닥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정신이 홀린 채 한참을 훑어 내리고 나면, 언제나 짙은 공허감만이 덩그러니 남을 뿐이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지?” 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남의 이야기를 구경하느라 내 소중한 시간은 이미 증발해 버린 뒤였다.


나의 오늘은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고, 타인의 삶을 구경하느라 정작 내 삶의 시계는 멈춰버린 듯한 기분. 그 찝찝한 기분은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비참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언젠가부터 그렇게 허무하게 흘려보내는 나의 시간이 사무치게 아까웠다. 지인과 나눴던 오늘의 인상 깊은 대화, 책을 읽다 발견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들,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던 노을 같은 순간들. 그 반짝이는 조각들을 그저 흘러가게 두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의 뇌는 '망각'이라는 아주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기록하지 않으면 그 소중한 순간들은 영원히 소멸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내가 계속 콘텐츠 소비자로만 남아 있다면, 내 삶의 주도권은 영원히 타인에게 있겠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앞으로도 평생 남이 만든 콘텐츠에 웃고 울며 반응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주체적인 존재가 될 것인가. 그 기로에 선 나는 무언가 변화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결국 나는 남의 콘텐츠를 소비하던 시간을 덜어내어, 나를 위한 '생산'의 시간으로 채우기로 결심했다. 남의 글을 읽고 부러워만 하던 구경꾼의 삶을 멈추고, 매일이 똑같아 보이는 나의 하루를 직접 채굴하는 일상의 주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럼 어디에서 어떻게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까. 여러 플랫폼을 기웃거리다 가장 만만한 블로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전에도 블로그에 일기 같은 글을 간간이 써오긴 했지만, 그건 기록다운 기록이라기보단, 그날의 감정 배설이나 기억 보조에 가까운 글이었다. 순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독백이었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들키는 게 싫어 철저히 비공개로 잠가둔 상태였다.


생산자의 삶을 시작하는 첫걸음으로, 나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새로운 블로그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체 공개' 버튼을 눌렀다.


초반 며칠은 여전히 일기 수준의 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오늘 점심은 맛이 없었다는 둥, 어떤어떤 상황이 나를 짜증 나게 했다는 둥 그저 그런 푸념들.


하지만 공개된 글은 확실히 비공개 글과는 무게가 달랐다.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새로운 이웃이 하나둘 생겨나고,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늘어나면서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댓글로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글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나의 사적인 경험이 타인에게 닿으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내 글을 읽어주는 그들에게, 공감이든, 위로든, 정보든, 하다못해 작은 웃음이라도 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렇게 조금씩 '나'에게만 머물던 시선이 '타인'에게로 확장되었다. 단순히 '내가 힘들었다'라고 쓰는 대신, '이런 힘든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정리해서 쓰게 되었다. 그렇게 내 글은 단순한 일기를 넘어 생명력을 얻었고, 누군가에게 공유되고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소비자로 살 때는 타인의 완벽하게 편집된 삶을 보며 박탈감을 느꼈지만, 생산자로 살다 보니 정반대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완벽함보다 나의 결핍과 실수, 엉성하기 짝이 없는 허당미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내가 겪은 뼈아픈 실수담을 솔직하게 기록했을 때, 본인도 그랬다며 나를 보며 위로받았다는 댓글이 달렸다. 나의 찌질한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안도감이 되고, 내가 겪은 평범한 시행착오가 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이정표가 될 수도 있으며, 나의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가이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생산자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 각자의 몫이다. 오늘 하루도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켜고 남들의 삶을 구경하며 당신의 시간을 태워버릴 것인지, 아니면 단 한 줄이라도 자기 생각을 기록하며 내일의 자산으로 남길 것인지.


거창한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당장 스레드나 블로그 앱을 켜거나, 하다못해 메모장 앱이라도 열어보자. 오늘 먹은 점심 메뉴가 왜 유독 좋았는지, 퇴근길 버스 차창 밖 풍경이 어떤 기분을 주었는지,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스치듯 들었던 의문점은 무엇인지 적어보자. 그 사소한 생산의 조각들이 모여 당신의 고유한 서사가 될 수 있다.


소비자는 사라지지만, 생산자는 남는다. 흩어지는 일상을 붙잡아 역사로 만드는 힘, 그것은 오직 기록하는 생산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생산적인 오늘을 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소비를 멈추고 글쓰기를 시작하자. 멈춰 있던 당신의 삶은, 글을 쓰는 순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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