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잡는 글쓰기는 이제 그만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명제뿐이다.”
정말 그 말이 맞다. 세상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변해간다.
그 변화의 물결은 SNS의 흥망성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블로그로 시작했던 나의 온라인 글쓰기는 한동안 꽤 재미있었고, 물론 지금도 여전히 즐겁게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유저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이 바뀌면서 새로운 SNS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때는 트위터(지금의 X)와 페이스북이 세상을 삼킬 것 같더니, 또 어느 순간엔 감각적인 이미지와 숏폼 영상으로 무장한 인스타그램이 유행의 정점을 찍었다.
그래도 스스로를 나름 '트렌드세터'라 자부하는 내가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면 부지런히 가입하고 또 사용해봤다. 하지만 정치·사회 이슈로 늘 시끄러운 트위터(X), 실명 기반이라 그리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연결되는 페이스북, 세상 힙한 감성만 강요하는 인스타그램은, 왠지 나랑은 잘 맞지 않았다.
오래 즐길 만큼 흥미가 지속되는 SNS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결국 ‘구관이 명관’이라며, 나는 여전히 블로그만 꾸준히 이어가고 있었다.
블로그는 분명 매력적인 플랫폼이 맞다. 차곡차곡 쌓이는 내 콘텐츠를 보는 것도 좋았고, 어떤 분야에 대한 취향이나 전문성을 보여주기에도 더없이 좋았다.
그럼에도 블로그에는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잘 써야 한다’라는 은근한 압박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글쓰기 싫은 날 두세 줄만 적고 발행하는 것도 이상하게 찝찝했고,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늘 마음의 준비운동을 오래 해야 했다.
사람들은 블로그 글을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말하듯이 쓰라고 했지만,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 가독성을 위해 사진과 영상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는 의무감, 검색 로직까지 의식해야 하는 문장 구성.
그건 마치 잘 차려입고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가야 하는 모임 같이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발행도 하지 못한 채 제목만 덩그라니 있는 임시저장 글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40대의 우리는 이미 삶의 여러 영역에서 '각 잡고' 살고 있다. 직장에서는 프로다워야 하고, 가정에서는 든든한 양육자나 배우자여야 한다. 그렇게 늘 긴장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취미나 자기 계발을 위한 글쓰기마저 각을 잡아야 한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블로그 글쓰기는 어느 순간 나에게 해방구가 아니라 또 다른 노동처럼 느껴졌다.
정작 내가 붙들어두고 싶었던 건, 오늘의 내 기분 같은 것들—정보도, 감동도, 재미도 없지만 그냥 스쳐 보내기엔 아까운 한 줄짜리 생각들. 그런데 블로그는 그런 사소한 감정을 올리기엔 왠지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온라인 글쓰기에서 방황하던 어느 날, 내 눈에 새로운 플랫폼이 들어왔다. 그건 바로 ‘스레드’.
처음 스레드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제목을 적는 칸도 없었고, 해시태그를 길게 달 필요도 없었다. 사진이 없어도 그냥 글만 덜렁 올리면 끝이었다.
마치 늦은 밤, 잠옷 차림으로 식탁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따는 기분이랄까. 화려한 조명도, 격식 있는 테이블 세팅도 없지만, 그곳에는 가장 편안하고 느슨한 기분의 내가 있었다.
많고 많은 플랫폼 중에 왜 하필 스레드였을까. 돌아보면 답은 단순했다. 스레드는 나에게 ‘잘 써야 한다’라는 강박을 요구하지 않는 몇 안 되는 플랫폼이었다. 한 줄만 써도 되고, 사진이 없어도 되고, 의미가 없어도 괜찮았다. 그저 지금 떠오른 생각을 가볍게 털어놓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공간. 어쩌면 나에게는 그런 가벼움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 항상 바쁘다.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지만, 감정적 여유는 더더욱 없다. 기승전결 갖춘 긴 글을 써낼 에너지도, 남의 긴 글을 정독해 줄 여력도 부족하다. 하지만 소통은 하고 싶으며, 어딘가에서 내 존재를 확인받고도 싶다.
스레드는 이 모순적인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문장이 수려하지 않아도 되며, 결론 나지 않은 생각의 파편이라도 괜찮다. 오히려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은 스레드의 가벼운 공기 속에서 촌스럽게 느껴진다.
“아, 글쓰기가 이렇게 만만한 거였어?”
이 ‘만만함’이야말로 스레드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블로그가 ‘전시’를 위한 공간이라면, 스레드는 ‘대화’를 위한 공간이랄까. 전시를 하려면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만, 대화는 그저 말을 걸면 바로 시작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직함도, 나이도, 이런저런 타이틀도 잠시 내려놓고 ‘글 쓰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긴 호흡의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더 자주, 더 솔직하게 쓸 수 있다. 역설적으로 힘을 빼니 오히려 글은 더 좋아진다.
블로그는 쌓아가며 기록하는 맛이 있지만, 나름의 무거움이 있어 부담스러웠다면, 이제 우리에겐 스레드라는 제3의 공간이 생겼다. 이곳은 언제든 활짝 문이 열려 있지만, 아무도 당신의 복장을 검사하지 않는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와, 툭 하고 한마디 던지면 그뿐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반드시 대답해 줄 것이다.
"어서 와요, 웰컴. 당신의 그 어떤 생각도 환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