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너머로 배운 관찰의 힘
밀레니엄 대혼돈의 시대를 막 지나온 2000년대 초반. 그 시절 갓 스물을 넘긴 나는 ‘사진’이라는 취미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당시는 필름 카메라의 아날로그 감성과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한 디지털카메라의 편리함이 공존하던, 묘한 과도기이기도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비를 꼬박꼬박 모아 보급형 똑딱이 디카를 하나 구매했고, 얼마 뒤엔 묵직한 DSLR도 어깨에 메게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비비드한 매력의 로모와 폴라로이드를 거쳐 수동 니콘 필름 카메라에까지 손을 뻗쳤다. 가방에는 늘 카메라와 필름이 들어 있었고, 길을 걷다가도 마음에 드는 빛과 풍경을 만나면 발걸음을 멈추기 일쑤였다.
물론 기록은 글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으로 하는 기록은 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랄까. 글이 생각을 정리하는 행위라면, 사진은 순간을 붙잡는 행위에 가까웠다.
단순히 장비를 다루는 기술의 문제를 넘어, 무엇보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진에서는 중요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순간이나 장면을 남다르게 보는 시선.
그 시선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메시지를 심는 일. 내가 생각하는 사진의 크나큰 매력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시절의 사진 생활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수십 장을 찍어 그 중 베스트 컷을 고르지만(심지어 폭망 사진도 다 복원 가능), 고작 24장, 많아야 36장이었던 필름, 그 필름 한 롤을 아껴 쓰던 시절엔 셔터 한 번도 허투루 누를 수 없었다.
게다가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현상소에 필름을 맡기고 인화된 사진을 받기까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결정적 순간이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오래 관찰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는 사실도 그때 어렴풋이 배웠다.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 현상의 기다림은 사라졌지만, 뷰파인더 속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또 기해야 했던 시절. 생각 없이 마구 셔터를 눌렀다간, 나중에 사진을 고르는 일이 더 괴로워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혼자만 찍는 사진이 조금 외로워질 무렵, 사진 동호회 활동도 시작했다. 주말마다 방방곡곡 출사를 나갔고,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담았다.
흥미로운 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피사체를 담아도, 나중에 꺼내 본 결과물은 저마다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 같은 하늘도, 같은 길도, 각자의 시선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음 어쨌거나. 사진이라는 취미 덕분에 나는 세상을 더 오래 바라보고, 더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게 되었으며, 그럼으로써 내 삶을 더 깊이 있게 살아낼 수 있었다. 혼자 시작한 기록이 사람들과 연결되어 내 삶의 스펙트럼 또한 더욱 다채로워졌다. 이 좋은 사진 기록을 왜 안 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 중이다. 무겁던 DSLR과 기다림의 시간이 다소 불편했던 필름 카메라 대신, 이제 내 손에는 가벼운 스마트폰이 들려 있을 뿐.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 읽은 책의 한 구절, 내가 먹은 정갈한 한 끼,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나의 셀피까지. 이 사소한 조각들은 내 SNS 곳곳에 흩어져 또 하나의 거대한 기록의 성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나는 믿는다. 세상을 깊이 바라본 사람만이, 자신의 삶 역시 깊이 살아낼 수 있다고.
사진은 그러기엔 너무도 좋은 기록 수단이다. 글로 다 담지 못한 감정은 사진 한 장으로 완성되고, 사진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서사는 다시 또 글이 메워준다.
이 좋은 기록, 여러분도 꼭 해보시라.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