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좋아요'보다 나의 '좋음'이 우선인 공간
20세기말, 특유의 대혼돈 시기를 지나 21세기에 접어들 무렵, '인터넷'이라는 거센 파도가 온 세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PC통신 파란 화면 안에서 여러 네티즌들과 옹기종기 복작거리며 살던 나는, 이제 웹의 파도를 타고 온라인이라는 망망대해를 신나게 유영하기 시작했다. 대망의 웹서핑 시대가 열린 것이다.
때마침 ADSL 기반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고 국민PC가 보급되면서, 인터넷은 더더욱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흥청망청 콘텐츠 소비자로만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던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묘한 갈증이 일기 시작했다.
남이 차려놓은 콘텐츠를 그저 떠먹는 것도 좋지만, 이 망망대해에서 나 역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이 아니라, 내가 직접 기획하고 한 땀 한 땀 일궈낸, 나만의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어진 것이다.
당시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도, 네이버 블로그도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다. 그 말인즉슨, 내 온라인 공간을 갖고 싶으면 설계부터 공사까지 직접 도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단 여기저기 묻고 물어 나만의 도메인과 호스팅 계정을 구매했다. 바야흐로 내 인생 첫 번째 온라인 부동산을 계약한 순간이었다. 아직 메인 페이지조차 만들지 않아 그저 텅 빈 공간이었지만, 내 소유의 온라인 주소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마구 벅차올랐다.
그 시절엔 개인 홈페이지 구축을 위해 '나모 웹에디터'라는 프로그램을 많이들 썼다. 에디터와 씨름하며 HTML 소스를 한 줄 한 줄 고쳐나가는 과정은 나름 고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즐거운 작업이기도 했다. 밤새 대문 이미지를 만들고 FTP로 파일을 올리던 그 집요했던 노가다의 추억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단순히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 나의 퍼스널 브랜딩, 그 원초의 과정이기도 했다.
내 취향에 맞게 카테고리도 알차게 꾸렸다. 매일의 생각을 기록하는 일기장, 책과 영화 리뷰를 남기는 비평의 공간, 그리고 출사 때 찍은 사진들을 보관하는 사진첩, 누군가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방명록까지. 게시판마다 그 특색에 맞게 제로보드 스킨도 정성껏 입혔다.
그렇게 완성된 내 첫 홈페이지. 주소창에 처음 도메인을 치고 들어갔을 때의 그 설렘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취향대로 벽지를 바르고 대문까지 직접 단, 진짜 내 공간이 탄생한 순간.
물론 지금은 누구도 이런 수고를 하지 않는다. 대 연결의 시대에 나 혼자만 개인 홈페이지를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스레드... 지금은 계정만 생성하면 1초 만에 공간이 생기는 편리한 시대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 뒤엔 셋방살이라는 고단함 역시도 숨어 있다. 플랫폼의 횡포에 내 계정이 정지당할 수도 있으며, 서비스가 종료되면 내 소중한 기록은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거 내 개인 홈페이지의 가치가 더 남다르게 느껴진다. 플랫폼의 권력에 내 기록을 저당 잡히지도 않고, 오직 나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 말이다.
비록 지금은 도메인도, 홈페이지 자체도 사라졌지만(다행히 DB는 내 하드디스크에 고이 잠들어 있다), 그때 기른 집짓기 근육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기록을 이어갈 수 있는 건, 아마 그 시절 내 손으로 직접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본 주체적 경험 덕분일 것이다.
당시 내 홈페이지엔 '좋아요' 버튼도, 공유 기능도, 팔로워 숫자도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순수하게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지금의 나는 어떨까. 거대 플랫폼에 종속되어 노출수와 도달률에 일희일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떻게 하면 더 나다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될까'를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만히 돌아볼 일이다.
비록 지금의 나는 거대 SNS 플랫폼에 의탁해 살아가는 세입자 신세지만, 마인드만큼은 독립 도메인을 가졌던 그때처럼 주체적이고 싶다.
타인의 '좋아요'보다 나의 '좋음'이 우선인 공간, 남의 시선에 편집되지 않은 날 것의 문장을 쓰고 싶은 나.
그런 나는, 어쩔 수 없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인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