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01410을 기억하는가

PC통신에서 시작된 나의 멀티 페르소나

by 라이팅유주

펜팔 편지에 폭 빠져 지내던 아날로그 소녀의 세계에, 1990년대 중후반, 거대하고도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바야흐로 디지털 낭만 시대의 정점, PC통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시 나는 학업에 한창 열중해야 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집에 모뎀과 PC가 생기면서 PC통신의 세계에 무섭게 빠져들게 되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PC와 56k 모뎀을 전화선으로 연결해 온라인에서도 사람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해준 바로 그 서비스. PC통신으로 인해 내 인생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atdt 01410'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신비로운 명령어를 입력하면 모뎀 특유의 '삐- 삐이-' 기계음이 울리고 파란 화면에 흰 텍스트가 또르르 떴다.


전화회선을 이용해 호스트에 접속하는 것이었기에 PC통신 도중엔 집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고, PC통신을 하다가 중간에 집으로 전화가 오면, 통신이 끊기기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요금도 상당히 비싼 축에 속했다. 속도는 느린 데다 요금은 비싸서, 정액제를 이용하지 않으면 한 달 집전화 요금이 십만 원을 훌쩍 넘는 건 다반사. 한 달 뒤 날아올 전화 요금 고지서에 전전긍긍하며, 엄마의 등짝 스매싱 공포를 견뎌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야간 정액제가 가능했던 밤 10시가 되기만을 매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곤 했다. 덕분에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우리 집은 항상 통화 중. 01410이라는 번호는 나를 또다른 우주로 데려다주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그 시절 PC통신 서비스로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이 있었는데, 나는 천리안 빼고는 다 써본 것 같다.


자료실은 각종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마치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었고, 영화 '접속'과도 비슷했던 낯선 사람과의 채팅, 그리고 그 시절의 번개모임과 정모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그 파란 화면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본명 외의 새로운 이름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첫 닉네임은 '바다소리'. 부산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한 방울 섞으면서도, 어딘가 고독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고 싶어 고심 끝에 지은 닉네임이었다.


당시 현실 세계의 나는 '부산 사는 고등학생', '몇 학년 몇 반 누구누구' 정도로 불렸지만, 파란 화면 안에서는 오직 '바다소리'라는 닉네임으로만 존재했다. 내 닉네임을 내가 직접 지어본 경험, 그건 내 생애 최초의 퍼스널 브랜딩이기도 했다.


가끔씩 나는 얼굴도 모르는 이와 텍스트를 주고받으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상대의 외모나 배경은 알지 못한 채, 오직 서로가 타이핑한 문장만으로 서로에게 반했던 경험. 텍스트만으로도 이렇게 순도 높은 소통을 할 수 있다니. 그건 정말이지 너무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그곳에서의 나는 평소보다 훨씬 말수가 많았다는 것. 현실에서는 속으로 꾹꾹 삼키던 생각들이 키보드를 통과하면 비교적 쉽게 흘러나왔다. 아무도 나를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솔직할 수 있었고, 내가 솔직해질수록 사람들은 뜨겁게 반응해 주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구나. 나는 말보다 글로 말하는 게 훨씬 편한 사람이었어.'


그땐 스트리밍 따윈 없었고 초고속 인터넷망도 없었기에 MP3 한 곡 받는 데만도 몇 분이나 걸렸다. 화질 안 좋은 영화 파일 하나라도 받을라치면, 하도 시간이 오래 걸려 밤에 다운로드를 걸어 놓고 잠들어야 했다. 지금으로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속도지만, 당시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던 그 기다림의 즐거움.


지금 생각해도 '바다소리'라는 이름으로 로그인하던 그날의 밤들이 아득하다. 그 이름으로 웃었고, 그 이름으로 상처도 받았고, 그 이름으로 위로를 건네기도 했던 추억의 시간들.


어느새 PC통신은 까마득한 추억의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그때 만들어진 온라인 생활 잔근육은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


내가 여전히 브런치에 문장을 남기고, SNS에서 기록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역시도, 어쩌면 그 시절에 이미 결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내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일 줄은.


지금은 초고속 인터넷에 AI, 메타버스까지, 안 될 것이 없는 세상이지만, 그 시절 느리고 따뜻했던 접속의 감성은 내게 여전히 특별한 온기로 남아 있다.


아 정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모두 그런 의미가 있는 듯.

추억에 잠기는 2026년의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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