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편지를 주고받던 군인 오빠가 있었나요?

채일병이 채병장이 될 때까지

by 라이팅유주

지난 회차 동성 친구와의 펜팔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조금 더 농익은(?) 설렘을 꺼내 보려 한다. 그 시절 모든 여중·여고생의 로망이자 이성 펜팔의 정석, 바로 군인 오빠와의 펜팔 이야기다.


지금이야 길거리의 군인들이 그저 뽀송한 아가들로 보이지만, 그때의 나에게 군인은 아저씨가 아닌, 사회의 쓴맛을 좀 아는, 어딘가 고독하고 어른스러운 오빠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국군 장병 아저씨께 몇 번의 위문편지를 쓴 적은 있지만, 그들과의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걸 보면, 그때의 위문편지는 거의 숙제에 가까웠나 보다.


내게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군인과의 펜팔은, 역시나 잡지 뒷면 펜팔 코너가 이어준 채일병과의 편지였다. 성씨마저 특이했던 채일병. 그가 채상병을 지나 채병장이 될 때까지. 우리는 꽤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걸로 기억한다.


그는 강릉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마음속으로 영화 같은 로맨스를 꿈꾸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편지봉투에 찍힌 시커먼 부대 소인이 주는 그 묘한 느낌. 게다가 가끔 동봉해주던 사진 속 그는, 마치 잘 깎아놓은 밤톨처럼 외모도 참 훈훈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외모는 가장 강력한 무기...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그 오빠의 편지에서 나던 향기였다. 땀 냄새와 흙먼지, 칙칙한 남자 냄새만 가득할 것 같은 군대에서 온 편지인데, 어떻게 그렇게 매번 세련되고 은은한 향이 날 수 있었을까? 그 향기 하나로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채일병 오빠를 깔끔하고 다정한 도시 남자로 멋대로 정의해버렸다.


지금의 SNS는 프로필 사진과 소개글로 각자의 PR에 열심이지만, 그때는 드문드문 오는 사진 한 장과 편지 속 문장 몇 줄로 그의 목소리와 성격을 상상해야만 했다. 문장 사이의 행간을 읽으며 그 사람의 온도를 짐작하던 시간들.


편지지에 압화를 넣거나 서태지와 아이들, 전람회의 가사를 적어 보내며 나의 있어빌리티를 뽐내려 했던 필사의 노력. 생각해 보니 이게 바로 지금 우리가 목매는 퍼스널 브랜딩의 원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심지어 핸드폰도 없던 케케묵은 시절이었다. 삐삐 음성사서함으로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듣던 날은 설렘 도파민이 폭발하는 날이었다. 결핍이 만들어낸 상상력은 그토록 무서운 힘을 가졌더랬다.


강릉에 북한 잠수함이 침투했다는 속보가 뜨기라도 하면, TV 앞에 붙어 앉아 “우리 오빠 어떡해!”라며 울먹였던 것도 생각난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러길 잘했다 싶기도 하다. 학업으로 나는 점점 바빠졌고, 답장을 미루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계도 멀어졌다. 이별이라 하기엔 거창하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하기엔 꽤 뜨거웠던 그 시절의 우리.


생각해 보면 펜팔은 단순히 사람과 연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상상하는 일에 더 가까웠다. 지금의 SNS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얼굴보다 그 사람의 문장으로, 실체보다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에 끌려 더 강력하게 연결되니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영상통화로 바로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지만, 가끔은 그때의 아련한 결핍이 그립기도 하다. 모든 관계가 꼭 오프라인에서 마주쳐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닐 터. 어떤 연결은 그저 그 시절의 나를 무사히 건너게 해준 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한 것일 테니 말이다.


<갑분 영상 편지>

그 시절의 오라버니. 잘 살고 계신가요? 지금은 반백 살이 다 되었겠네요. 편지 쓰는 걸 좋아하던 분이었으니, 지금도 어딘가에서 글을 쓰고 계시려나요? 우체통 앞에서 답장을 기다리던 열일곱 소녀는 이제 스레드에서 전 세계와 소통하는 마흔 중반의 언니가 되었답니다. 운이 좋다면 귀신 같은 알고리즘이 우리를 언제 한 번쯤 연결해 주려나요?


만약 이 글이 오빠의 화면에 닿는다면, 꼭 한번 묻고 싶네요. 그 시절 오빠의 편지에선 대체 왜 그렇게 좋은 향기가 났던 건지 말이죠.






자, 그럼 채오빠의 안녕을 빌며, 나는 이제 좀 더 지독하고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넘어가 보려 한다.


다음 이야기는 밀레니엄 시대, 군대로 떠나버린 내 남자를 기다리며 썼던 수백 통의 생존 보고서, 캠퍼스 커플(CC)의 곰신 편지 이야기이다. 그 뜨거웠던 기록의 현장도 기대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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