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거북이 할머니

제 14회 부천신인문학상 소설 당선작

by 은쓰다

# 일부 표현은 구어적 표현을 위해 일부러 표준어 사용을 지양했으며,

문장 또는 문단의 단락 또한 대화의 흐름을 위해 임의로 구분한 경우가 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반듯하게 누운 할머니는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늘 나를 향해 웃어주던 그 미소였을 텐데도 난 그 미소를 무시하고 살았다.

‘할머니, 이제 편안하게 지내. 허리 쭉 펴고 그 곳에서는 하늘 실컷 보며 살아.’

흙을 한 줌 쥐어 뿌리며 그렇게 할머니를 보냈다.



“야! 저기 왔다. 거북이래요. 저 할머니 거북이야. 너네 할머니는 왜 등딱지를 달고 다녀?”

“넌 그럼 알에서 태어났어? 거북이가 파충류인가? 파충류할머니. 으윽! 외계인인 가봐.”

하굣길 갑작스러운 비에 오도 가도 못 하는 우리는 학교 현관 앞에 오밀조밀 모여 서서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들 마냥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는 엄마의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어디서 주워 들은 지식으로 거북이가 파충류인 것쯤은 아는 나이의 솔직하고 못돼 먹은 반 친구들의 놀림은 우산을 가져온 엄마들의 단호한 눈빛이 있고서야 그 재잘거림이 제압 된다.

그러고 나면, 우리 할머니는 축 늘어진 월남치마를 빗물에 추적추적 적시며 느그적 느그적한 걸음으로 찬찬히 기어온다.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호기심과 약간의 거리감 섞인 시선을 아랑곳 할 수도 없이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땅만 바라보며 기어온다.

어정쩡한 자세로 균형을 잡느라 여념이 없어 우산을 쓴 건지도 모를 만큼 홀딱 젖은 채…….

그 모습이 창피하고 안쓰럽기도 해 모르는 채 비를 맞으며 쌩 하니 그 옆을 내달음질 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달리는 나를 보지도 못 하는 그 시선은 학교 앞에서 우두커니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나를 기다리게 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 후 내 방문을 열며 바라보던 그 홈빡 젖은 눈빛은 죄송스럽기도 원망스럽기도 한 나의 어린 시절의 원죄를 드러나게 한다. 철없음으로 용서 받고자 했던 나의 못된 심보가 떠오를 때면 명치 끝 어딘가 쯤의 근육이 뚝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수현아, 이것 봐봐.”

장례식을 다 치르고 할머니 방을 정리하던 엄마는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이것 좀 봐봐라. 너희 외할머니 연애편지인가 보다.”

누렇게 바랬지만 빳빳하게 풀까지 먹여 다려놓은 듯한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엄마는 코 끝을 훔치신다.


곱단아, 곱단아. 내 곱단아

늘 부르는 이름인데도 오늘은 참으로 그립구나.

호롱불에 어른거리는 네 모습으로 오늘을 산다.

달빛에 차는 네 모습으로 내일을 버티마.

미안하다. 내 널 지켜주지 못 해서……


짧지만 진솔한 오랜 시절의 연애 편지를 훔쳐 보는 기분이 이상하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가슴 설레며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봤을 할머니의 소녀 시절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고, 네 할머니도 주책이다. 이걸 보물이랍시고 여태껏 간직하고 계셨다니? 근데 필체가 간결한 게 이 분 성품이 느껴진다. 얘….”

언제 눈시울을 붉혔냐는 듯이 엄마는 예의 수다를 늘어 놓으신다.

“아마 이 분이 소작 받던 주인댁의 도련님인 것 같아. 나중에 나도 다 커서 들은 얘긴데 느이 할머니도 연애를 했더라고… 처음에 듣고는 ‘엄마는 주책 맞게 그런 소리를….’ 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같은 여자로 안쓰럽고 딱하지 뭐…. 엄마도 여잔데 사랑도 연애도 왜 안 해봤겠어. 그저 그렇게 태어나신 게 느이 할머니 탓도 아닌데 만날 그런 엄마를 창피해하고 원망만했으니….”

엄마는 다시 한 번 코 끝을 훔치시며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남은 건 네가 좀 정리 해라. 난 못 하겄다. 차마….”

방문을 닫고 나가시는 엄마를 뒤로 한 채, 나는 엄마가 치우다 만 할머니의 물품들을 상자에 주섬주섬 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손 때가 묻은 반짇고리며, 무엇에 쓰려고 모은 건지 모를 갖가지 단추들, 얼마 전 노인정에서 받았다며 좋아하시던 도금 꽃무늬 배지(badge), 내가 유치원 때 만들어드린 카네이션 카드_그저 빨간색 색종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을 뿐, 사실 카네이션이라 할 수도 없다._, 낡고 꼬질꼬질해진 비단으로 싸인 거울,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흑백 증명 사진과 여러 명이 찍힌 낡은 사진 한 장.

여러 명이 찍힌 그 사진 속에는 아마도 주인댁 식구들인 듯 곱게 차려 입고 온화한 미소를 지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 등이 굽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 수줍은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마 집 마당에서 가족 사진을 촬영하는 주인댁 식구들 곁을 지나다 찍힌 모양이다.

갖가지 물품들과 사진 속의 구부정한 할머니까지 태우기 위해 다 주워 담고 나니 상자가 그득하다. 꽤나 무거워진 그 상자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아버지는 드럼통에 작은 나뭇가지들과 숯을 놓고는 불을 지피고 계신다.

“제가 할게요. 아빠는 들어가 좀 쉬세요.”

“조심해. 생각보다 불이 뜨겁다.”

역시 아버지 눈에는 아직도 내가 어린 아이 같나보다. 어느덧 서른 살 중반을 넘기고 있는데도, 무엇만 하려 하면 걱정 섞인 잔소리가 먼저 나온다.

“네네, 알겠습니다요!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서 눈 좀 붙여요. 잘 치우고, 재 흐트러지지 않게 잘 마당에 묻고 다 마무리 할게요. 다 끝나면, 드럼통은 저기 구석에 둔다. 아빠.”

“그래. 드럼통도 뜨거울 테니….”

“아이고~ 우리 아버지, 또 또! 저도 그 정도 머리는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라며 아버지의 등을 떠밀고는 드럼통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마저 불을 지핀다. 타오르는 드럼통 안으로 물건들을 하나씩 던져 넣다가 차마 풀 먹인 편지와 수줍게 굽은 할머니 뒷모습은 던지지 못 하고 손에 쥐고 멍하게 바라 보았다. 때마침 갑자기 울린 휴대폰 벨 소리에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장례식은 잘 치렀냐는 친구, 지방에서 애 키우느라 올라와보지 못 해 미안하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팔십육 년의 세월이 남긴 거라곤 한 상자뿐인 할머니의 추억이 다 타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편지와 사진은 던지지 못 하고 이내 주머니 속에 넣고 일어섰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우며 주머니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편지와 사진을 꺼내 두 팔을 뻗어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찬찬히 쓰다듬어 보았다. 햇빛에 비친 사진 뒷장을 보니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 백 정 학 도 련 님 ]

아마도 편지를 쓴 애잔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밝은 색 한복_흑백 사진이라 정확한 색은 알 수 없다._의 청년이리라….

‘백정학, 백정학…….’

가만히 이름을 읊조리다 번뜩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가 내 실내화 바꿔놨어? 할머니 때문에 나 학교에서 정학 맞게 생겼잖아!”

날카로운 소리로 할머니에게 성질을 잔뜩 내며 집에 들어오자 마자 들고 있던 실내화 주머니를 집어 던졌다.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있는 성질을 다 부려가며 현관에 들어서는 나를 보았다. 슬며시 구석으로 가 던져진 실내화 주머니를 말 없이 주우시는 할머니께 난 남은 성을 냈다.

“그러니까 남의 물건은 왜 만지냐고 왜? 그리고 촌스럽게 이게 뭐야? 이딴 촌스러운 실내화를 누가 신어? 정말 내가 쪽 팔려 죽는 줄 알았다고! 그리고 우리 학교는 남색 슬리퍼나 하얀색 단화 아니면 정학 맞는단 말이야!”

아마도 지난 주말, 내 더러워진 실내화를 할머니가 나 모르게 빨아 놓은 후,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으로 사거리 옆 신발가게에서 샀을 촌스러운 진분홍색 실내화. 그렇게 바꿔 넣어 놓은 걸 미처 모르고 학교에 갔었다. 할머니 눈에는 그 촌스러운 진분홍색 슬리퍼가 예쁜 손녀딸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셨겠지.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으나 나는 그저 중학생 사춘기 소녀의 독기 어린 반항심으로 낮 내내 있었던 스트레스를 할머니에게 쏟아 냈다.

“미안해. 이 핼미가 무식해서 그랬어. 몰랐어. 난 그냥…. 이게 더 예뻐서….”

내 성질에 기죽은 목소리로 할머니는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더욱 웅크리며 던져 널브러진 실내화 주머니를 신발장에 걸어 놓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아, 몰라! 다시는 내 물건에 손도 대지마! 뭘 모르면 건들지를 말라고!”

다시 한 번 참으로도 못된 성질을 툭 하고 할머니 가슴에 꽂아버리고, 쾅 하고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도 그 때 할머니는 또 다시 비 오는 하굣길에서 날 기다린 게 아니라 버려졌다는 걸 알게 된 그 먹먹한 눈빛으로 내 닫힌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손녀딸에게 당한 벼락같은 수모를 가슴에 안고 동동 거리며 안절부절 못했겠지. 어차피 펼 수도 없는 등허리였다지만 풀이 죽어 더 쪼그라든 모습이었겠지.

시간이 조금 지나고 제 풀에 지쳐 제 분이 스스로 풀릴 무렵, 할머니는 빼꼼히 내 방문을 열었다.

“밥 먹어야지. 배 안 고프냐?”

사실 성질은 냈지만 배는 고팠던 터라 못 이기는 척 할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 아무 말도 없이 차려진 밥을 먹고 있는 나에게 할머니는 머뭇머뭇 거리며 물었다.

“저기…… 수현아, 그런데 너 아까 뭐라고 그랬지? 학교에서 뭘 맞는다고?”

“뭐? 내가 뭐랬는데?”

밥을 우걱우걱 씹으며 할머니의 말에 퉁명스레 대꾸를 했다.

“아, 정학? 응. 우리 학교는 슬리퍼로 신으려면 남색 실내화만 된단 말이야. 그런데 할머니 때문에….”

내 딴에는 괜한 성을 낸 것이 아니었다고 변명이자 설명을 하려는데 차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되물었다.

“정학이 뭔데? 정학은 사람 이름 아니냐?”

“뭔 소리야? 학교 못 나오게 하는 거야. 벌 받는 거라고 벌…. 그게 정학이야.”

“그래? 그럼 안 좋은 거네. 정학은 좋고 귀한 건 줄 알았는데….”

“뭐가 좋고 귀해? 아 정말…. 무식해가지고 대화가 안 돼요.”

난 또 퉁명스레 마음과 다르게 입에서 먼저 뱉어지는 독설을 던졌다. 그 순간 잠시나마 낯설고 황망한 할머니의 눈빛이 멈추더니

“저기… 수현아. 그럼 그 정학이라는 거 어떻게 쓰는 지 이 핼미 좀 가르쳐다오.”

“엥? 갑자기 왜? 할머니는 글씨 모르잖아. 여태껏 모르고 살았으면서 이제 와서 왜 알려고? 그것도 그 따위 단어를 왜 알려는 거야? 주책 맞게시리….”

“그래. 네 말이 맞아. 이 핼미가 무식해서 그래. 그러니까 네가 좀 가르쳐줘.”

사실 밥을 먹으며 이미 분은 풀려버렸지만, 계속 냈던 성을 바로 접지 못 하는 그 시절의 이상한 자존심으로 못되게 말을 하고 있는 내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는 할머니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 눈빛에 눌린 나는 슬며시 반찬을 집어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밥 다 먹고 알려줄게. 아, 귀찮게… 영어 단어 100번 쓰기 숙제도 해야 하는데….”

투덜투덜 거리며 남은 밥을 다 먹고는 그래도 아까 성질을 낸 것이 조금은 미안했던 터라 식탁에 앉아 정학이라는 단어를 크게 쓰고 따라 쓰기를 가르쳤다. 처음 글씨를 배우는 할머니는 진지하고 섬세했다. 연필을 잡는 것도 어색하고, 손아귀 힘도 예전 같지 않은 할머니는 비록 삐뚤삐뚤하기는 했어도 있는 힘껏 꾹꾹 눌러가며 ‘정학’이라는 단어 쓰기에 매진했다. 아니, 따라 그리기에 열중했다.

“오! 잘 쓰는데! 좋았어. 이제 할머니 혼자 써봐.”


그렇게 첫 한글을 떼고 나서 며칠 동안 할머니는 ‘정은어떻게쓰느냐, 자기는어떻게쓰느냐, 수꽃은어떻게쓰느냐, 선생은어떻게쓰느냐.’ 며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던 단어들을 가르쳐 달라는 열의를 보였다.

그 때 마다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름의 성의를 보이며 가르쳐줬다. 실은 어린 나이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자부심에 은근히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불붙었던 뒤 늦은 할머니의 한글 사랑은 정말 순식간에 열풍처럼 몰아 치고는 짧게 끝이 났다.


‘백정학…… 할머니의 첫사랑’

침대에 누워 사진을 다시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엄마 말대로 할머니도 여자고, 사랑이 소중한 누군가의 그녀였겠지.



그렇게 할머니의 상을 다 치른 며칠 후,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오랜만에 출근한 회사에서 쌓여 있는 업무 메일과 부재 중의 연락들을 더듬는 일을 시작으로 내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대학 동문회 회장에게서 온 공지 메일을 클릭하는 순간 차근차근 일상으로 녹아 들던 나는 다시 과거로의 순간이동을 했다.

[00기 박민수 동문 님의 결혼식을 알립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은 스크롤을 내리니 동문회장의 수고스러운 인사로 시작해 많은 동문의 참석으로 자리를 빛 내어 달라는 주제 넘는 오지랖으로 마무리 되었다.

한 때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이름을 딱딱한 모니터를 통해 접하는 게 왠지 어색했다.

‘그래, 뭐……’

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기도 하고,

‘축의금을 내야 하나, 얼마를 해야 하나, 누구한테 전달하지?’

하는 고민들까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을 해 보며 괜스레 마우스로 이름을 클릭해 드래그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스멀스멀 돋아나는 발(發) 해지는 기억이든, 바래진 추억이든 그 끄트머리를 잡고 있던 순간 오랜만의 출근이니 커피 한 잔 마시자는 후배의 메신저에 나는 다시 빠르게 내가 있는 지금이 현재이고, 얼마 전 할머니 상을 마치고 밀린 업무를 위해 회사에 나와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배의 커피 유혹에 “콜! 내가 쏜다. 가자!”라고 답을 한 후 벌떡 일어났다.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앞 파티션에 앉아 계신 부장님이 쳐다본다. 일부러 활짝 웃으며 짐짓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없는 동안 일 처리 해 주시느라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제가 모닝커피 한 잔씩 쏘겠습니다.”

아무래도 적절한 타이밍이다. 커피가 땡긴다. 기왕이면 혀가 데일 정도로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가볍게 더블샷쯤을 추가해서 마셔줘야겠다.



“힘드냐?”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할머니는 나를 쳐다 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아니지, 쳐다보지 않은 게 아니라 할머니의 일상적인 시선은 그저 땅이었지.

“음… 글쎄…. 이게 힘든 건가? 모르겠어. 귀찮아. 그냥…. 친구들이 보자 해도 귀찮고, 회식도 귀찮고, 그냥 내 일 하는 거 말고는 다 귀찮은 느낌이야. 이게 힘들어서 그런 거야? 할머니?”

“글쎄다. 사람마다 속 병은 다 다르니까, 나도 모르겄다. 어떤 놈은 울어야 풀리기도 하고, 어떤 놈은 술을 처먹어야 풀리기도 하고, 대거리를 해대야 성이 풀리는 놈도 있으니까 다 다르지. 그런데 그 중에 젤루 나쁜 놈이 뭔지 알아?”

내 대답을 기다리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아주 잠깐 말의 쉼표를 두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입을 꾹 다무는 거야. 속 병을 속으로 앓는 게 제일 질긴 거라고…. 그러니까 속으로 끙끙대지 말고 니 맴이 하고 싶은 것만 해. 열이 뻗치면 소리 지르고, 욕도 하고, 미친년 마냥 낄낄 웃기도 하고, 그 뭐냐? 너 좋아하는 거 노상 쭉쭉 빨고 다니는 아이스카펜지 뭔지 그런 거라도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래야 나숴. 그게 제일 빨리 나숫는 길이야.”

마치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랩 마냥 속사포로 속 말을 전하시는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서야 요 며칠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구나. 그런 나의 모습이 할머니 눈에 맺히고, 마음에 얹혔구나.’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싶어 짐짓 밝은 척 운을 뗐다.

“오! 우리 할머니 심리 상담사해도 되겠어. 하고 싶은 것만 해라…. 하고 싶은 것만…. 오! 우리 할무 말이 정답이네. 그런데 할머니, 사실 나 뭘 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어. 그냥 할 게 없어서 가만히 있고, 할 말이 없어서 입 다무는 거야. 그러고 있다 보니깐 내가 속이 상한 건지, 원망스러운 건지, 답답한지, 어쩐지도 모르겠어.”

할머니의 말을 되씹으며 툭툭 발로 보도블록 사이에 돋은 잡초를 차던 나는 할머니에게 되물었다. 사실은 뭐라도 해서 갑작스레 느껴지는 어색한 이 공기의 흐름을 바꿔놔야지 싶었다. 마침 바닥에 떨어져있던 근처 번화가의 ‘드림 나이트, 여성 공짜, 기본 안주 서비스’ 라는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었어? 그냥 하고 싶은 거 말고 꿈 같은 것 말이야.”

“할미 꿈? 그런 게 뭐 있나? 그냥 사느라 바빴지 뭐…. 우리 땐 그런 거 없어. 그것도 너처럼 똑똑하고 뭘 배운 게 있어야 하고 싶은 것도 생기지.”

“에이,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던 게 있었을 거 아냐. 할머니, 기억나? 나 옛날엔 미스코리아 된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막 할머니 보자기 목에 둘러메고 국기봉 들고 마루 걸어 다니고 그랬잖아. 엄마한테 왕관 사달라고 조르다가 혼나고…. 그런데 그게 마음 먹는다고 다 되는 건 아니더라고…. 헤헤. 그래서 그냥 공부를 열심히 했지. 중학생이 됐는데 거울 속의 나를 보니까, ‘아, 원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겠구나.’하고 깨달았거든. 흐흐흐. 그래도 나 일찍이 정신 잘 차렸지? 할머니!”

옛 이야기를 꺼내며 오랜만에 웃는 나를 보고 할머니도 함께 피식거리며 맞장구를 쳐줬다.

“그려, 그것만 있었어? 너가 어릴 때 좀 엉뚱했어? 너 다섯 살 때 쯤인가, 유치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까 그 쯤이었나, 하루는 잠 안 온다고 졸라대서 콩쥐팥쥐 얘기해줬더니 다음 날 느이 엄마랑 지후 어멈이랑 김장 실컷 담그고 있는데 너 없어졌다고 난리 나서 느이 엄마랑 나랑 놀라서 맨발로 온 동네를 다 뒤졌잖어. 집에 돌아와 보니까 깜빡 없어진 너는 잠들어 있고 느이 아빠는 뭔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알고 봤더니 우리가 너 찾으러 온 사방을 다 뒤지는 사이에 퇴근하고 온 김서방이 김장독 묻는다고 뒷마당 갔다가 독 안에서 너가 잠들어 있더라며 느이 엄마한테 되려

‘추운데 애가 왜 거기서 자고 있냐고, 이 여편네가 정신이 있네. 없네.’

하면서 따졌잖어. 그래도 너 찾아서 다행이라고 다들 안도 했지. 정작 너 찾느라고 그 때 배추 절여둔 게 너무 절어서 그 해 김장 완전 다 망쳐버리고….”

“아, 맞다. 그런 일도 있었지. 참!”

“그니까 말여, 다음 날 일어 나더니 너가 뭐랬는 줄 알어?”

“내가 뭐라고 그랬지? 항아리에 들어갔던 건 기억나. 할머니, 그런데 자고 나니 내 방이었다. 이런 기억 정도까지는 나는데…. 내가 뭐라 그랬더라? 할머니.”

“참 내, 내가 기가 막혀서 여태껏도 생각이 난다. 눈을 똘망똘망 뜨고는 ‘엄마, 콩쥐는 잔치에 갔어?’ 라고 엉뚱맞은 소리를 해댔다니깐”

“아, 기억 났다. 맞아 맞아. 할머니, 엄마랑 할머니랑 작은 엄마랑 김장 한다고 나 나가서 놀라고 해서 심술 나서 나왔는데, 항아리 뚜껑이 열려 있길래. 구경해보려다가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얼마나 큰 항아리인 거야? 아무리 내가 작았대도 다섯 살 아이가 들어갈 정도였으니…. 낑낑 거리며 기어 올라가서 들어갔어. 전 날 할머니가 해 준 두꺼비 얘기가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아. 맞네, 내가 그런 애였네.”

“그래, 넌 그렇게 늘 엉뚱하고 호기심도 많았어. 혼자 자라 그런지 가끔 보면 싹퉁머리도 좀 없어. 그런 애니까 너는…. 원래대로 싹퉁바가지마냥 화나면 할머니한테 짜증 내고 엄마한테 삐쭉 거리고 그래. 아빠한테 땡깡도 피우고…. 지금처럼 복날에 풀죽 한 그릇 못 얻어 먹은 강아지 마냥 축축 처져 있지 말고….”


그랬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의 계집애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꿈 꿔보는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었더랬다.(물론 가끔은 두꺼비가 되고 싶기도 했나보다.) 다행히 나는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꼭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걸 유년시절에 깨달을 정도의 영리함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공부를 선택했고, 외동딸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누리며 자라진 못 했어도 반듯하고 성실하신 부모님 덕에 남들만큼의 뒷바라지는 받을 수 있었고 그 덕에 무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비록 미스코리아가 될 재간은 아니었으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은 되었기에 대학 시절을 지내며 몇 번의 연애도 했고, 원하던 중견기업에의 취업과 함께 곁에 있던 그 사람이 자연스레 내 짝이려니 하고 살았다.

대학교 캠퍼스커플이었던 그 사람 역시 크게 모자람은 없었으나 군대와 어학연수, 몇 번의 취업재수 등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는 어쩌면 먼저 사회에 한 발 내디뎌 승승장구하는 듯하게 보이는 내가 버거웠으리라. 결국 그 사람은 나보다 조금 늦게 사회 진출을 했고,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위해 자연스레 각자의 시간이 더 중요해졌다. 나는 나대로 수많은 경쟁 상대들 사이에서 승진을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고, 그런 내 아등바등이 그 사람에게는 배부른 투정으로 들렸겠지. 그리고 사회 선배랍시고 독려하는 나에게서 작든 크든 자멸감도 느꼈겠지. 나는 내 사람이 나이 많은 신입 사원이라는 이유로 기죽지 말라고 내 급여의 절반 이상을 그 사람의 의상과 사회활동비에 투자 했다.

어느 날, 그 사람의 직장 후배라는 순하고 어린 여자의 입을 통해 그 사람이 이런 나를 힘들어 한다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나에겐 그게 내 사랑이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내 사랑의 시작도 끝에도 내가 없었다. 매일 같이 강의실 책상에 음료수를 갖다 놓던 그 사람의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우리가 되었고, 진행형인 줄 알았던 내 사랑은 생전 처음 보는 순한 눈망울의 여자아이를 통해 끝이 났다.


“어쨌든 그래서 할머니는 꿈이 뭐였는데?”

“핼미는 꿈이랄 것 까지는 없고, 그냥 너른 풀밭에 빤-듯하게 누워서 하늘 구경 좀 실컷 해 봤으면 좋겠어. 그렇게 누워서 해 뜨는 것도 보고, 구름 지나가는 것도 보고, 해 지는 것도 보고…. 마냥 마냥”

“에이, 너무 시시하다. 그게 무슨 꿈이야.”

그딴 게 무슨 꿈이냐며 또 생각 없이 할머니의 꿈을 무시하듯 툭 던지고 보니 허리를 펴지 못 하는 할머니에게는 해 보고 싶은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차!’싶었다. 이렇게 제 멋대로 남의 말을 무시할 때면 어김없이 외동딸 본새가 나온다.

“그래,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하늘을 본 적이 없겠구나. 그런데 할머니, 막상 봐도 별 것도 없어. 그 하늘이 그 하늘이야. 만날….”

왠지 미안해져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하늘이 별 것 아닌 거란 듯이 말하고 있는 내게

“아니야, 할미도 본 적 있어. 파랗고 넓은 하늘!”

“응?”

자랑할만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처럼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옛날에 말이다. 이 핼미에게 똑같은 걸 묻던 분이 있었어.

‘곱단아, 네 소원이 뭐냐?’ 하고…….

그래서 지금처럼 똑같이 대답했지. 그랬더니 어느 날 우물을 긷고 있는데 그 분이 오시더라고, 그러더니 명경을 하나 떡 하니 내밀면서 하는 말이

‘여기 봐라. 이렇게 하늘이 있다. 하늘이 보고 싶거들랑 이걸로 봐라. 그리고 네가 늘 함께하는 우물에도 하늘이 비치고, 냇가에도 하늘이 비치지 않니. 그러니까, 남들보다 넌 더 많이 하늘을 보고 사는 게야. 다른 사람들은 정작 하늘 한 번 올려다 보지 않고 하루가 지나기도 한단다. 그러니까 네 처지를 슬퍼하지 말거라.’

라고 말해 주셨지.”

그럴듯한 작업멘트 같은 얘기를 전해주는 할머니의 표정이 달떠 있었다. 처음 보는 할머니의 여자 같은 표정이 어색하고 오글거려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어쨌든 할머니! 내가 꼭 할머니 편하게 하늘 볼 수 있게 할머니 번쩍 들어올려 안아줄 손녀사위 만들어줄게. 그러니까 할머니도 괜히 나 때문에 맴쓰지 말어. 그리고 그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야 해. 알겠지? 우리 할무!”

“그랴, 꼭 그래야지. 그리고 울지 말어. 세상 일이 울어서 해결 될 일이면 나는 백 번도 더 울었을 거다. 그리고 울고 싶으면 소리 내서 엉엉 울어. 그래야 속이 풀리지.

그러니까 너도 네 맘이 시키는 것만 해. 화나면 화 내고, 속으로 삭이고 있지만 말고….”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집에 와서도 내내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그런 나를 보면서 엄마 아빠는 괜스레 눈치를 보았다. 묻고 싶어도 묻지 못 하는 눈치였고, 그냥 놔두는 것이 고집 세고 자존심 센 딸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셨으리라.

괜한 자존심에 가족에게도 내색하고 싶지 않던 내 이별에 왠지 모를 억울함이 들 때면 가끔 방에서 숨죽여 울고는 했다. 내 방과 떨어져있던 할머니는 밤이면 찬찬히 기어 나와 내 방 문 앞을 서성이며 손녀딸의 슬픔을 또 애끓어 하셨겠지.

중학시절 쌩 하니 들어가 잠그어버린 문 밖의 작아진 할머니처럼…….

생각해보니 어쩌다 그 날의 대화는 그렇게 의외의 방향으로 흘렀고, 그 외에 소소한 얘기들로 더 이어졌던 것 같다.



부재로 인해 밀린 업무 처리 때문에 빠르게는 지나갔지만 유독 피곤했던 하루가 가고, 퇴근 후 마당에 들어서다 구석에 검은 재가 된 할머니의 유품을 보았다. 평상에 가방을 던져두고 쭈그리고 앉아 마당 흙으로 살포시 남은 재를 덮다 검게 그을려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낡은 거울을 발견했다. 재를 털어내고 그나마 덜 그을린 멀쩡한 면으로 비쳐보니 거울 속 내 표정이 지쳐있다.

‘하루 종일 내 표정이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멋쩍어 거울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말이 떠올라 거울로 하늘을 비쳐보았다. 그을려서 검은 건지, 밤하늘이 검은 건지 거울은 그저 검게 빛났다.

‘그 분이 할머니께 하늘을 선물하셨구나.’

하며 손에 쥔 그 거울을 들고 마당 평상에 모로 누웠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평상에 이렇게 잘 누워 계셨다. 회사에 갔다 오는 나를 불러 앉히고 낮에 노인정에서 있었던 얘기도 해주시고, 저녁 먹은 게 소화가 잘 안 된다며 등을 두드려 달라 시기도 하고…….

그렇게 할머니와 있던 추억을 더듬다 눈을 들어보니 담장과 담장 너머의 가로등, 그리고 일정 부분의 하늘이 보였다.

‘아, 할머니는 늘 이렇게 반쪽 하늘만 보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똑바로 누워 내 위로 펼쳐진 하늘을 쳐다봤다.


언제나 있는 하늘이고, 늘 보던 모습인데도 오늘따라 유난히 검다 못해 짙푸른 느낌의 하늘이 신기했다. 주택단지 어디서나 들릴 법한 주변 소음이 오히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딘가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우리 집 마당이라는 안도감을 줬다. 아직은 여름이랍시고 낮 동안의 작열하는 태양이 달궈낸 대지를 가을이 오고 있다고 알려주려는지 선선한 바람이 식혀주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언젠가 할머니와 함께 찍은 셀카사진을 찾아 평상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그 낡은 거울도…….

그렇게 한참을 할머니와 나는 빤-듯하게 누워 같이 하늘을 바라 보았다.


참으로 별 것도 아닌 그 하늘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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