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답은 결국,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논문을 써야 할 시기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미루고 싶은 마음은 늘 굴뚝같다.
때마침 대학원 학우분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논문을 위한 실용적인 가이드라기보다는, 글쓰기 전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쓰다’라는 행위를 use, bitter, put on이라는 세 가지 의미로 풀어내는데, 그중 가장 깊이 공감된 의미는 단연 bitter.
논문은 정말 ‘쓰다’. 쓴맛처럼 남는 고단한 과정.
가장 좋은 질문을 찾아내고, 그 질문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한 줄 한 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그리고 가장 괴로운 건, 내가 던진 그 질문이 과연 ‘좋은 질문’인가?
그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집요하게 스스로를 검열해야 한다는 점이다.
질문이 흐릿하면, 글도 흐릿해지고, 마음도 점점 지쳐간다.
그래서, 논문을 쓴다는 건 어쩌면 단지 지식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끝없는 의심 속에서도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학문은, 참 이상하고도 신비롭다.
내가 하는 말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지라도, 내가 쓰는 논문 한 편이 지금 당장은 주목받지 않더라도, 언젠가 어떤 정책의 밑거름이 되고, 어떤 사회의 변화를 밀어 올리는 조용한 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단 한 편의 논문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 한 줄, 한 문단이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하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취약한 지점은, 개념과 현상, 쟁점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사이의 관계를 읽어내고, 그 미세한 차이를 사유의 언어로 전환하는 능력이다.
아마 그래서, 스스로 ‘좋은 질문’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질문은 사유의 씨앗이고, 좋은 질문은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을 향한 문이기 때문에.
논문이라 하면 읽기엔 번거롭고 쓰기엔 막막한 글이라는 인식이 먼저 든다.
딱딱하고 복잡하며, 감정 없이 메마른 글.
하지만 글쓴이는 말한다.
논문에도 ‘서사’가 있고 그 서사의 ‘흐름’을 따라 써야 한다고.
사유에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엔 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내 논문은 어떤 서사를 품어야 할까.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내가 이 질문을 붙들게 된 이유와 그 이유로부터 확장된 세계를 천천히, 단단하게 엮어가는 이야기.
숫자와 개념, 인용과 분석 사이에도 분명히 흐르고 있을, 내 질문의 작은 서사 하나를 어떻게 하면 놓치지 않고 끝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내 목소리로, 내 속도로, 내 흐름대로, 내 걸음걸이 모양대로 쓰는 것이다.
p177.
초고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내 말로 쓰는 것이다.
어설프게 남의 글투를 흉내 내다보면 결국 짜깁기가 되거나 원치 않게 표절의 경계에 서게 된다.
나의 지도교수님들께서도 늘 강조하신다.
“인용은 반드시 표시하라. 잊지 말라.”
타인의 언어를, 내 생각인 양 빌려 쓰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표절이다.
그래서일까.
남의 말에도 귀 기울이고,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며 경청하는 태도는 글쓰기의 시작이자 윤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너무 어렵다.
논문이라는 이름 아래 글을 써온 시간은 오래되었지만 늘 새롭고, 여전히 두렵다.
질문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일이다.
아마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질문조차 찾지 못했기에 자기 객관화의 자리에조차 닿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고민만 했다. 어떻게 첫 발을 내디뎌야 할까.
그 물음 속에서 맴돌던 나에게 이 책은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독자와 대화하라.” 그 말이 문득, 깊숙이 와닿았다.
이번 논문은 조금 더 발전된 글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조금 더 실용적인 글, 현장과 이어진 살아 있는 글이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혼잣말이 아니라 대화로 글을 써 내려가 보려 한다.
한 줄 한 줄, 진심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