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여름, 그러나 그늘에 머문 어떤 이야기들.
곧 여름이다.
그래서인지, 가볍고 빠르게 읽히는 책이 당겼다.
청량하고, 반짝이는, 여름 햇살 아래의 파도처럼 출렁이는 감정을 기대했다.
어떤 여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원했던 그런 여름과는 달랐다.
가볍지 않았고, 청량하지도 않았으며, 반짝이는 대신 조용히 가라앉는 무언가였다.
그래서였을까.
모든 챕터가 마음에 박혔고, 한 문장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이라는, 이름조차 독특한 상을 받은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은-
제목만큼은 여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겨울처럼 서늘하고 아렸다.
푸르른 계절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 책은 오히려 상실과 부재, 그 차가운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찬란한 여름, 그러나 그 그늘에 머물러 버린 어떤 이야기처럼.
목차는 아래와 같다.
입동,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이야기.
노찬성과 에반, 반려동물을 잃은 이야기
건너편, 연인과 이별을 겪는 이야기
침묵의 미래, 생명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
풍경의 쓸모, 더블폴트
가리는 손, 예를 잃어버린 이야기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삶이 삶에 뛰어든 이야기
사실 제일 읽고나서 긴 여운이 남았던 건
입동, 노찬성과 에반, 그리고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 가요 이다.
페이지를 덮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 이야기들은 마음 구석을 두드렸다.
문장의 여운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물던 감정들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입동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놓은 국화 같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 하는 것 처럼 보여졌다.
사고로, 목숨과도 같던 자녀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말한다.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안타까움과 상실속에서 겨우 숨만쉬며 버티고 있는사람들에게 이웃은 말한다.
이제는 그만 울어라고. 비슷한 사건과 사고가 참 많이 일어난다.
우리는 정말로 안타까워하다가도 이내..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같이 힘들어해야해?
근데 거기있던 그애가 잘못아니야?
보상금도 받았으면 이젠 그만할때 되지 않았어?
목숨값 받았으면 이젠 그냥 살아도 되잖아. 꼭 기억해야해?
그러나 없던일이 될 수 없다.
당신이 좀 슬퍼해주고 울어줬다고해서 "그만 울어라"라고 말할 자격도 당연히 없다.
그저 살아내고 있는 사람에겐 당신들과 우리는 그저 바깥일 뿐이니까-
#노찬성과 에반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서였을까, 이 이야기는 유독 더 가슴 깊이 와닿았다.
노찬성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 그리고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그 크디큰 상실은
도무지 아이의 몫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다.
그래서였을까. 읽는 내내 노찬성에게 자꾸만 미안해졌다.
어른으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누군가로서 미안했고,
에반에게도… 그저 너무나 미안했다.
끝내 무너지는 이 작은 세계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독자로서, 조용히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할머니, 용서가 뭐야? 이스박스 캐리어 옆에서 흙장난을 치던 찬성이 물었다.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할머니는 대답 대신 볼우물이 깊게 패게 담배를 빨았다.
담배 연기가 질 나쁜 소문처럼 순식간에 폐 속을 장악해 나가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 소문의 최초 유포자인 양 약간의 죄책감과 즐거움을 갖고서였다.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찬성이 채근하자 할머니는 깡마른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바닥에 톡톡 털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가리는 손
오랜만에, 뼛속까지 섬뜩하고 소름이 끼쳤다.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이라는 이중의 편견 속에서도 재이에게만큼은 부족함 없이 살아가게 하려 애써온 엄마. 사랑과 헌신, 교육과 희생으로 아이를 품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재이라는 아이가 노인이 폭행당해 사망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재이는 폭행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 그저, ‘목격자’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보기만’ 했던 것일까? 엄마는 CCTV 속 한 장면에서 이유를 마주한다.
화면 속, 누군가가 폭행당하는 그 참혹한 순간에 웃음을 애써 가리는 듯 손을 올린 재이의 모습.
그 손짓 하나가, 엄마의 모든 세계를 무너뜨렸다.
그 순간,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충격이었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었다.
내가 귀하게 키운 아이. 차별받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무수한 편견을 가로막으며 정성껏 키운 아이.
나를 지우며 아이를 앞세웠고, 그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기보다 약한 존재가 짓밟히는 광경을 보고 입가의 웃음을 감추려 손을 들었다면—
과연 그 순간, 엄마가 느낀 감정을 상실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건 충격이었고, 슬픔이었으며, 무너짐이 통째로 쏟아졌을 것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에든버러에서 시간은 더이상 쌀뜨물처럼 흐르지 않았다. 화살처럼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것은 창처럼 세로로 박혀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나는 어떤 시간이 내 안에 통째로 들어온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고통스럽게 감각해야 한다는 것도. 피부 위 허물이 새살처럼 계속 돋아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그건 마치 '죽음' 위에서, 다른건 몰라도 '죽음'만은 계속 피어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한 부부가 있었다.
진심으로 사랑했고, 서로를 지탱해주던 존재였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교사인 남편은 그의 제자를 살리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끝내 그 제자와 함께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왜 그순간 아내인 '나'를 생각 하지 않았던 건지. 그의 이타적인 선택은 애틋함보다 먼저, 분노와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것이 죽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을 향한 진심 어린 '삶의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삶'이 스스로 뛰어든 것이라고.
이 서사는 마치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이라면, 그 순간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희생이라는 단어에 결코 머물지 않는다.
사랑, 분노, 슬픔, 이해, 수용. 그 모든 감정을 거쳐 마침내 이해하고도 여전히 아플 수 밖에 없는 마음에 닿이는 듯 하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아팠다.
활자에 새겨진 말들이, 내 현실 속 어딘가에서 언뜻 지나쳤던 감정들을 조용히 끄집어낸다.
애써 외면하며 지나쳐왔던 불편한 감정들-
그것들을 책 속에서 마주하자, 더없이 불편하고 더없이 진실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과연 그 삶을 이겨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겨낸 것이 아니라 그저 어쩔 수 없이, 또 하루를 살아낸 것뿐이다.
그래서일까.
창밖은 여름인데, 소설 속 계절은 겨울이다.
그 시차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픈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은 아직 얼어 있는데, 세상은 봄이지나 이제는 여름이라며.
그들에게 다시 걷고, 웃고, 살아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