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이나 단독주택에서 살아본 적은 없는데, 우리 집엔 장독대가 항상 있었다. 동네 사람 누군가 우리 집을 찾는다면 '12층 장독대 있는 집'이라고 알려주기도 했었다. 겨울이면 우리 집 앞 복도엔 김치, 동치미 가득한 장독 네 개쯤이 줄지어 있었다. 집 안 베란다엔 계절 상관없이 된장, 간장, 고추장을 품고 있는 장독은 자리를 뺀 적이 없다.
복도 끝에서부터 진한 냄새가 퍼졌다. 사춘기의 고민으로 뒤엉킨 머릿속을 안고 터덜터덜 하교한다. 굳이 냄새를 따라가지 않아도, 복도 끝에서도 느껴지는 그 냄새의 근원은 늘 우리 집이었다. 불쾌하게 진한 그 냄새가, 복잡한 나의 머릿속을 더 울렁거리게 했었다.
"할머니, 냄새 복도 끝까지 너무 심하게 나."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동네방네 내 목청 자랑하듯 할머니한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것이 나의 귀가 인사였던 때가 있었다. 휴식을 위해 고요함을 기대하며 들어간 내 방이 부엌보다 고릿했다. 할머니가 빳빳하게 다림질해 놓은 나의 교복 셔츠에서도 정성스럽게 간장 냄새가 난다. 사실 말이 간장 냄새이지, 간장을 달이며 나는 냄새는 청국장을 뜨는 냄새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 냄새가 하도 지독해서 집안 구석구석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몇 주는 지나야 그 냄새가 빠진다. 고약한 냄새에 휘말려 할머니에게 악을 쓰느라, 내가 평생 놓치고 후회하는 건 할머니의 그 간장 레시피였다. 고모들도 최근까지 할머니 간장을 타다 먹을 정도였는데, 나는 그런 간장을 사치스럽게 먹고 자랐다. 철부지였던 내겐 그저 고약한 냄새나는 그 간장 담그는 일을, 무엇보다 만들기에 힘이 드는 일을 할머니가 하지 않았으면 여러모로 좋겠다는 짧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할머니, 어떡해. 내 교복에 냄새가 다 배었잖아. 교복에서 완전 간장 냄새 나. 이걸 학교에 이제 어떻게 입고 가."
"시끄랍다 잉. 머시라 한가 하나도 안 들리네. 아이고 되다. 밥은 먹었냐? 학원 가야재? 얼릉 와서 밥이나 먹어라 잉."
내 말은 할머니 귀에 들어가긴 하는지 그냥 고릿한 간장 냄새에 희석되어 버리는 건지. 내 목청은 무색하게 할머니의 하소연 섞인 잔소리가 그 작은 부엌을 장악했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무슨 불만을 토로하건 할머니의 반응은 늘 한결같음을 평생의 경험으로 알면서도, 이런 뚱딴지같은 할머니 반응에 나는 매 번 화가 나서 팔짝팔짝 뛴다. 매 번 악을 쓰며 지지 않는 나도 참 대단하고, 번번이 그런 나의 악씀을 무색하게 만드는 우리 할머니는 한수 위인 듯하다.
연중행사가 간장 달이는 게 하나라면 다행이련만, 다양한 연중행사는 매일 있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만드는 건 필수라 행사라고 쳐줄 수 없고, 채수와 건어물 육수를 달이는 것, 겨울이면 할머니 방의 요 밑에 청국장을 띄우는 것, 생선을 사다가 젓갈 담그는 날까지 너무 많아서 쉬이 꼽을 수 없다. 할머니는 심지어는 주둥이가 있는 약탕기로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을 위해 갖은 한약도 달였다. 우리 가족 먹거리에 온 정성을 쏟느라 바쁜 할머니와는 별개로 어린 나는 별의별 고약한 냄새를 온몸으로 거부하기 바빴다.
할머니가 했던, 누가 했던, 음식이라면 몽땅 거부하던 짧았던 나의 입맛은 할머니의 유일한 걱정이었던 때가 있었다. 조금 커서는 밥을 조금 먹긴 해도, 비릿하거나 꼬릿한 냄새에 대고 고래고래 악만 쓰기 시작했었다. 그 철부지는 이제 할머니 음식을 본능적으로 그리워하는 어떤 어른이 되어버렸다. 까다로워진 입맛에 맞춰 보겠다고, 할머니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어 보겠다며 별별 시도를 해 보지만 자꾸 좌절한다.
내가 조금 더 영리했다면, 할머니 음식을 삼시세끼 먹을 수 있을 때, 레시피를 매일매일 기록해 두었을 것이고, 또 내가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할머니가 사랑으로 덮은 나의 왜곡을 걷어내고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한참 뒤늦은 후회를 한다.
나는 할머니가 철석같이 믿는 만큼 썩 명석하지는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