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을 소개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글쓰기
박사 학위에 한 발짝 다가갈수록 과연 나는 겸손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멍청해지는 것일까?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가 모르는 것은 더더욱 많다는 것을 자각하고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점점 내가 지금 하는 연구의 주제와 목적이 무엇인지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내가 정말로 멍청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학술적 글쓰기에서 내가 바라던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가끔 나는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내 일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했다. 학교에서 일하는 연구자 동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학술적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은 찾기 어렵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인데, 어떻게 하면 그나마 덜 고통스럽고, 덜 피곤하게 할지 그 방법을 찾고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두 편의 강연 영상을 보고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강연 1편: LEADERSHIP LAB: The Craft of Writing Effectively
강연 2편: LEADERSHIP LAB: Writing Beyond the Academy
그동안 어떻게 논문을 잘 쓸까 고민했던 방향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두 강연을 아우르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독자가 꼭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시스템 밖에서 연구자가 마주하는 독자는 (그리고 사실 학교 시스템 안에서도 극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읽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글에만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가치 있는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연자가 일하는 시카고대학교 (University of Chicago)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대학교의 대학원생과 교직원들도 이 간단한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에 글쓰기로 고통받는다고 한다.
두 편의 영상을 모두 보고, 나의 글쓰기를 돌이켜보니 (국문과 영문으로 했던 글쓰기 모두), 나도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 즉 돈을 받고 나의 글을 읽고, 글에 드러난 나의 지식을 평가하거나, 내 글의 형식적 측면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읽는 글쓰기를 벗어나는 글쓰기를 했던 경험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학교 밖에서 시도했던 대부분의 글쓰기 역시 독자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학교 안에서 하는 글쓰기'를 스타일만 조금 바꾸어서 그대로 시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글이 지루한 이유가 주제가 너무 전문적이거나 독자의 인내심이 부족해서 글이 재미있어지기 이전에 읽기를 그만둔다는 지극히 글쓴이 중심적인 사고방식 역시 극복하지 못했다. 말로는 '내가 가진 지식을 판다' 혹은 '내 연구를 판다'는 표현을 하는데 거부감이 없었지만 정말로 내가 가진 것을 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이 영상을 본 다음에 나의 학술적 글쓰기 실력은, 특히 영문 학술적 글쓰기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당장 올해 안에 써야 하는 논문 초고들과 박사 수업에서 작성해야 하는 과제들에 한 단어도 더 보태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가짐은 확실히 바뀌었다. 강연자의 때로는 도발적인 질문들은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당신이 멍청해서, 혹은 자질이 부족해서 학술적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복잡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학교 울타리 밖 독자와 제대로 소통하는 법은 학위 과정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학술적 글쓰기가 답답한 벽으로 느껴진다고 주장한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비판이다.
아마 내가 제출해야 하는 여러 편의 원고들을 내기 전까지 계속 방황하고 적잖이 스트레스도 받겠지만, 그래도 좀 더 든든한 기분으로 여정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처럼 학술적 글쓰기에 무엇인지 형언하기는 어려워도 답답한 벽을 느낀 독자라면 2시간 반 정도 버리는 셈 치고 이 영상을 쭉 봐도 좋을 것 같다. 석사 과정을 학과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학술적 글쓰기 지원 센터까지 있는 곳에서 공부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지금보다 더욱 글쓰기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 강연의 메시지를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좀 더 나은 글쓰기를 했거나, 더 많은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Etienne Girarde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