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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성 Feb 14. 2022

스웨덴 이민법 변경 6개월 후

법은 당연하게도 많은 것을 바꾼다

오래전에 초고를 작성했다가 지운 글이 하나 있다. 2021년 7월 20일 이후 적용된 스웨덴의 이민법(Swedish Aliens Act) 변경이 특히 필자와 같은 비유럽 국가 출신 (엄밀히 말하면 EU 혹은 EEA 회원국이 아닌 국가 출신)의 박사과정 학생, 혹은 연구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단상이었다. 당시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글이 나오진 않았고, 당시 작업했던 글도 이미 손에 없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2022년 2월 11일) SULF(Swedish Association of University Teachers and Researchers)에서 스웨덴 이민청 실무자와 함께 진행한 웨비나에 참여해 오랜만에 이 주제에 관한 논의를 다시 들으며, 그래도 몇 글자 적자는 생각을 했다. 


SULF의 최근 이민법 변경 관련 자료 링크


이 글은 철저하게 박사과정 연구생인 필자의 시선을 담았지만, 이민법 변경은 모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스웨덴에 다른 종류의 거주 허가증으로 체류하는 사람들의 미래도 바꿀 수 있다. 이번 변화는 큰 틀에서는 적용 대상에 예외가 거의 없다. 후술 하겠지만 스웨덴 이민청에서도 "Tempo­rary resi­dence permits are the new norm"이라고 분명히 명시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웨덴 장기체류, 혹은 이민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도 주는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민법 변경이 왜 중요한가? 

이번에 일어난 변화는 박사과정 학생이나 연구자만을 표적으로 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영주권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하는 것이 핵심임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고, 변경 내용을 뜯어보면 이러한 추측이 사실이라고 판단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 스웨덴 이민청은 일부 정보를 영어로 제공하는데, 이민법 변경의 사실관계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아래 링크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다. 


스웨덴 이민청 (Migrationsverket) 링크 바로가기


박사과정 학생, 혹은 일부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를 요약하면 영주권 신청 조건이 까다로워진 부분이다. 영주권 심사 시기를 기준으로, 18개월 이상의, 최소 소득 조건을 만족하는 근로계약서를 증빙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소득 금액보다는 고용 기간이다. 예컨대, 박사 졸업 후 학계에 남는 대부분의 '신규 박사'들이 2021년 당시 마주한 고용 환경*은, 실제 고용 기간이 1년 6개월 이상이더라도, 매년 갱신하는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학계가 아닌 다른 부문으로 가더라도 항상 18개월 이상의 계약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새로운 기준 때문에 최소 4년 동안 학교에 고용되어서 박사과정을 진행한 이들도 영주권 신청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변경 이전보다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확실히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스웨덴 이민청의 심사 절차가 지연되어서 아직까지 작년에 신청한 다수가 결정 통보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 주변에도 최근에 졸업하고 이미 직장을 잡았지만 영주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발이 묶인 경우가 있다). 


이 변화는 비유럽 국가 출신 박사과정 학생에게만 불리한가?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당장 피해를 보는 것은 1) 영주권이 필요하고, 2) 법 변경 이전에는 무난히 영주권을 받을 줄 알았는데 변경 이후 영주권 획득 여부가 불투명해진 지원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결국 영주권을 거부당하고, 다른 방법으로 장기 체류가 어려워 본국, 혹은 제3 국으로 나간다면 이는 두뇌 유출이다. 이것이 스웨덴 사회 전체에게도 손해인 까닭은 스웨덴의 박사 학생 교육&훈련 과정을 안다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스웨덴 박사과정 학생은 대학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으며 공부를 하지만, 학교는 월급 이상의 투자를 한다. 사무실 임대료, 각종 사무기기 제공, 각종 학술 서비스 지원, 여행 경비 지원 등이 포함된다. 


이런 투자는 결국 해당 학생이 박사 이후 전문 연구자로서 소속 대학, 넓게는 스웨덴 학계에게 유리한 실적을 낼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박사 과정은 의무교육도 아니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지도 아니다. 이것은 인적자본에 관한 투자이며, 불확실성을 동반한 투자이다. 박사과정 학생이 박사 졸업 후 스웨덴 밖으로 바로 나가는 메커니즘이 활성화되면 이는 확실하게 투자의 기댓값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주장은 필자가 비유럽 국가 출신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웨덴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언론과 대학이 꾸준히 제기했다. 영문으로 된, 이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된 기사를 하나 공유한다. 


Sweden’s new migration act will send international talent elsewhere


필자가 일하는 학교 홈페이지에도 이와 관련된 의견이 올라오곤 한다. 한국은 아니지만 다른 비유럽 국가에서 온 박사과정 학생이 쓴 글이다. 


International researchers worried about changes in the Aliens Act


내 생각이 바뀌었는가? 

2020년 박사과정을 시작한 이후로 쭉 나는 현재로서는 스웨덴 시민권을 취득할 생각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대한민국 시민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주권이 있으면 많은 것이 조금 더 편리해질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다면 당연히 마다하지 않을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영주권은 박사 공부 후에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나아가 박사 졸업 후 스웨덴 안에서 다음 진로를 정할 때 핸디캡으로 작용할 불안요소까지 되었다. 그리고 이주(migration)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이러한 제도 변화가 이것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기우일 수 있겠지만, 나는 스웨덴이 서서히 문을 닫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앞으로 스웨덴 학계에 굳이 남을 것인지, 그러고자 한다면, 혹은 그렇지 않고자 않다면 어떤 노력을 기울어야 할지 셈이 복잡했다. 셈이 너무 복잡해서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도 했다. 스웨덴어 공부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한 것도 그중 하나다. 만약 현 상황을 비관하고, 스웨덴 밖에서 다음 진로를 정할 것을 확실히 한다면, 스웨덴어 공부는 필요 없다. 그런데 항상 '만약'이라는 것이 있고, 스웨덴 내부에서의 취업을 위해서는 스웨덴어의 중요성이 앞으로 커질 것을 예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결국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과, 예측 가능한 스웨덴어 중요성의 증대가 박사 시작 1년 만에 스웨덴어 수업으로 나를 이끌었고, 지금도 느리지만 꾸준히 수업을 따라가고 있다. 이것이 좋은 보험이 될지 이따금씩 회의하면서도.  


하지만 나에게 미래 계획을 묻는다면 (그리고 솔직하게 답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라면) 나는 스웨덴에 남는 것이 필수가 아니며,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주저 없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 자체로 불합리한 선택은 아니다. 스웨덴에서 석사 박사를 하며 7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으면,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전혀 나쁠 것이 없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나의 이런 국제 이주를 막을 무언가가 눈앞에 없다. 하지만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 속내가 다르다. 내 결정이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떠밀려나기 전에 알아서 나가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마치며

법은 당연하게도 많은 것을 바꾼다. 경제사(Economic History) 연구자들이 이주에 관해 연구하는 내용은 대부분 이런 법 혹은 제도의 변화와 그로 인한 이주 패턴의 변화를 추적하는 일이다. 필자처럼 이주민 적응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통시적으로 보지는 않더라도 각 변화가 이주자에게, 그리고 해당 국가의 시민들에게 미친 영향을 좀 더 깊이 파고든다. 둘의 접근 방법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 다음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법이나 제도는 당연하게도 많은 것을 바꾸지만, 그 변화가 항상 의도했던 방향은 아니다. 


최근 이민법 변경도 스웨덴에서 체계적으로 많은 비용을 투자한 연구 인력을 퇴출하려는 기괴한 저의를 담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런 결과가 실제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기 어렵다. 이민법 변경 이후 박사 학위를 받은 비유럽 국가 학생이 얼마나 되고,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추적하는 건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필자가 어디선가 운 좋게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을 할 경우 진행해 볼만한 연구 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며칠 전 웨비나에 4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했고, 간단한 사전 설문에서 과반수가 이번 이민법 변경이 스웨덴 체류 의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스웨덴에 실망한 분노한 소수일까? 혹은 비유럽 국가 출신 박사과정 학생을 대표하는 표본일까? 두고 볼 문제이다. 물론 필자는 두고 볼 문제가 아니고 당장 닥친 현실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남은 기간 내 연구는 어느 분야, 어느 나라에서 더 잘 '팔리는' 연구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을 멈출 수 없다.


*이후 여러 스웨덴 대학에서는 박사 후 과정 계약서를 2년 이상으로 보장해줌으로써 인력 손실을 막는 방향으로의 관행 개정이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다. 필자 소속 학과에서도 관련 내용을 안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앞으로도 이어질지 100% 장담하긴 어렵다. 그리고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박사 졸업 후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학교에 고용되는 신규 박사는 많지 않다. 졸업 시기와 채용 시기 사이에 간극이 클 수 있고, 채용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Krzysztof Hepn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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