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AC 인터뷰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사회학과 인구학 유닛 (Stockholm University Demography Unit, SUDA)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김우성이다. 2018년부터 2020년 6월까지 룬드대학교 경제사학부 인구경제학 과정 석사 과정을 공부했고, 2020년 9월부터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박사 논문은 스웨덴의 이주민 2세대의 학력/전공 - 직업 간 미스매치 (본인의 학력 혹은 전공과 현 직장에서 요구하는 학력 수준 혹은 분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영어로는 education-occupation mismatch, 혹은 간단히 educational mismatch나 skill mismatch 등의 표현으로 부른다)가 이주민 2세대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쓰고 있으며,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의 최근 출산율 감소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2017년 1월부터 한 학기 동안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간 것이 아무래도 석사 유학 장소를 고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웨덴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주한스웨덴대사관의 '스터디인스웨덴코리아' 서포터스 활동을 하면서 스웨덴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고, 스웨덴이 내가 관심 있는 인구학 분야 연구자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데이터를 구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학부 때 경제학을 공부해서 인구학을 공부할 수 있는 스톡홀름대학교와 룬드대학교 중 인구경제학 쪽을 지원했다.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길을 찾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길을 고민하면서 해외에 사는 사람이다.
나는 상급 과정으로 진학한 경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교과 과정을 충실히 따라가고, 아카데믹 라이팅과 논문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연구 주제와 문제의식을 박사 과정 학생 선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북유럽 대학원의 특성을 감안하면, 학교 밖에서의 경험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어떻게 연관될지 이따금씩이라도 고민했던 시간들 역시 고민이 되었다. 그 연구문제 중 가장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프로포절을 냈고, 운 좋게도 지금도 그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다.
지원할 대학을 찾는 일이었다. 어느 대학에 내가 원하는 전공을 공부할 수 있는 학과, 혹은 연구소가 있는지 그 리스트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유럽은 영미권에 비해 한국인 출신 사회과학 연구자의 수가 적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존에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아서 처음 정보 수집 단계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다행히도 그 결과가 좋았지만, 시작할 때는 조금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혹시 중요한 학교 혹은 연구 기관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다.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1학년을 마치고 한 번 있었는데, 여름 방학 동안에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시 학기가 시작해서 바쁘다는 핑계로 결국 하지 못했다. 스웨덴어를 잘하지 못해도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이었고, 난민을 돕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나에게 더 큰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주민이 난민은 아니지만 난민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 이민자이므로). 오히려 1학년 시작할 즈음에 기회를 잡았다면 꾸준히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기분을 느끼고, 그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새로움은 즐거움보다는 두려움이나 걱정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재미도 크고, 그렇게 새롭게 마련한 삶의 터전 속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나의 모습이 열매를 맺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스웨덴은 터미널이다. 내가 처음으로 밟은 스웨덴 땅은 공항 터미널이고, 마지막으로 밟을 스웨덴 땅도 터미널이 될 것이다. 한때는 이곳에서 쭉 살아가는 삶을 그렸지만, 지금은 여기서의 삶은 그대로 충실하게 살아가면서도, 학위 과정을 마친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궁극적으로는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 남은 삶을 보내겠다고 마음을 정했고, 여기서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이곳은 정주할 수 없고, 다음 목적지를 기다리는 공항 터미널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공항 터미널에서 스치는 사람들은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만, 여기서 만난 인연들은 좀 더 오래 보고 싶다. 나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추억 속 소중한 얼굴이 많다.
커버 이미지: 2018년 8월, 처음으로 스웨덴 룬드에 들어왔을 때 빈 방에 짐만 놓고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더 넓은 집에 살고, 가구와 가전제품도 제법 생겼지만, 마지막 나가는 날은 아마 저 정도로 짐을 싸서 돌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