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이다. 9월 23일은 가족이나 친구의 생일도 아니고, 아주 평범할 수도 있는 날이지만, 내가 Loveholic의 Blue923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꾸준히 챙기는 일종의 기념일이 되었다. 11년 전의 대학생이던 나는 이 노래를 듣고 내가 당시에 열심히 운영하던 블로그에 감상평을 남겼다. 2024년 버전으로 조금 다듬은 평은 다음과 같다.
3분 53초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는 똑같은 날씨가 반복된다. 한두 방울 떨어지는 기타 소리. 부슬부슬하게 내리는 베이스 소리. 안개비처럼 흩뿌려진 보컬. 그리고 우산이 꺾이고 끝내 앞이 보이지 않는 장대비처럼 벅찬 후렴.
아쉽게도 이 노래의 라이브 버전은 온갖 쓸데없는 영상이 차고 넘치는 Youtube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예전에 Loveholic이 해체하던 때 고별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라이브로 불렀던 영상이 떠돌아다녔는데, 필자가 군대를 다녀온 다음에는 더 이상 그 영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작년에 러브홀릭 보컬이었던 지선 님의 데뷔 20주년 콘서트와 앵콜 콘서트에서 Blue923을 라이브로 불렀다고 하는데 한국을 떠나 있는 나로서는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원곡자가 이 노래를 라이브로 다시 불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예전에 블로그에도 적었지만, 나는 이 노래를 새로운 여행지에 가면 한 번씩은 꼭 들었다. 장소를 들었던 음악과 연결시켜 기억하는 것은 추억을 좀 더 깊이 간직하기 위한 나의 습관 중 하나이다. 때로는 장소와 들었던 음악이 딱 맞아서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남기도하고, 때로는 음악이 귓가에 흘러가고, 장소에 담간 시간도 머릿속에서 그냥 흘러가기도 한다. Blue923은 여러 장소의 기억을 중첩해서 담는 그릇이었다.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노래가 주는 청량하지만 서글프고,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이 있다. 이 노래는 앞으로도 더 많은 낯선 장소들의 추억을 담아낼 그릇이 되지 않을까.
올해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올해 9월 23일이 이 노래를 '학생 신분'으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해 (최소한 당분간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나는 내년 2월에 2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학생 신분에서 드디어 벗어나서 아주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학생이 아닌 존재가 된다. 물론 학계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목표라서 학교를 떠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더 이상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받을 제약도, 특권도 사라지고, 현실을 좀 더 냉혹하게 맞아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내가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그다음 여정을 시작하면 얼마나 삶에서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조금의 여유가 더 생긴다면 기타나 피아노를 다시 배우거나 베이스 기타를 배워서 이 곡을 커버해보고 싶다. 내가 커버하고 싶은 곡이 많았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음악에 관한 열정은 거의 다 식었지만, 그래도 다시 악기를 잡아보는 일을 가끔 꿈꾼다. 잘하거나, 남을 이겨야 한다는 그런 정신적인 압박감 없이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활동이 있어야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는 연구직에서도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애벌레가 번데기 속에 들어간 시간이 고되고 지루하듯이, 나는 돌고 돌아서 다시 탈피를 준비하는 시기를 마주했다. 석사에서 박사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났던 COVID-19 같은 천재지변이 없음에 감사하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계획하고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