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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성 May 12. 2021

AC 인터뷰 9: 나에게 스웨덴은 고치이다

김서륭 님 인터뷰

별다른 문제없이 흘러가는 일상도 끊어가야 할 때가 있다. 단조롭고 반복적일지라도, 일상의 속도는 빠르고, 이를 따라가고자 쏟는 에너지는 무시할 수 없다. 여행자는 당연히 여행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종착점이 어디인지 묻는 것이 일상을 소화하느라 지친 심신에 부담이라고 느껴진다. 만약 그렇다면, 그 순간이 잠시 멈추어 서서 삶의 궤적을 되돌아볼 기회일지도 모른다. 5월의 9번째 AC 인터뷰는 이러한 고민 끝에, 한국에서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내가 앞으로 추구할 디자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 이야기를 담았다. 

 

-<스웨덴유학 그리고 삶> 독자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다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콘스트팍(Konstfack)에서 Individual Study Plan in Design 석사 프로그램을 전공한 김서륭이다. 현재는 한국에서 개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콘스트팍의 디자인 프로그램은 주기적으로 교수진이 바뀌고, 그에 따라서 프로그램에서 중점적으로 배우는 내용이 달라지지만, 내가 공부할 때에는 다양한 분야에 열린 느낌이었다. 산업 디자인 프로그램보다 디자인의 정의와 본질, 디자인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에 관한 심층적인 탐구를 강조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스웨덴 석사 유학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6년 이상 운영하면서 당시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정말 하고 싶었던 방향과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방향성과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느끼는 시기가 찾아왔다. 유학 가기 이른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한국 디자인 업계에서 잠시 떠나 디자인이 구현되는 상황과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다른 나라, 특히 북유럽 지역의 디자인 생태계가 어떤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유학을 고민할 당시 한국에 북유럽의 가구 브랜드 등이 많이 진출하던 것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내 질문을 위해서는 디자인에서 ‘산업’을 빼고 디자인에 관해 좀 더 원론적인, 혹은 인문학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적합하다고 생각해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유럽의 몇몇 학교에 더 관심을 두었고, 대학생 때 여행을 다녀와 좋은 인상으로 남았고, 영어로 수업 진행이 가능했던 스웨덴을, 그중에서 내가 관심 있게 보고 있던 많은 디자이너가 공부했었던 콘스트팍을 선택했다. 


-스웨덴에 오기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스웨덴의 오기 전 나는 나를 잘 몰랐던 나였다. 뭘 하고 싶은 지 몰랐던 디자이너 혹은 창작자였다. 


-석사 유학 과정에서 취업에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활동 한 가지만 골라본다면?


디자인 전공의 경우 학교에 100%로 고용된 교수는 1명이고 나머지 교수들은 개인 스튜디오를 열었거나 연구소에서 일하며 교수를 겸업하는 현업 종사자들이었다. 따라서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계속해서 업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연결고리를 많이 만들어주었다. 선생님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오는 자연스러운 관계 확장이 많았다. 


또한, 5월 중순경에 열리는 졸업 전시에 전교생이 참여하고, 2주 남짓 열리는 전시회에 7만에서 8만 명이 방문한다. 나의 졸업작품을 알리고, 이것이 다른 전시로 이어지는 좋은 기회이다. 아울러 졸업을 앞두고 관심 있는 진로별로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진로 상담을 해주는데, 입학 전 커리어, 석사 프로그램을 하면서 수행한 여러 활동을 토대로 가능한 진로에 관해 좋은 조언을 해 주는 자리였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조언을 들어서 이후 커리어를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취업을 위해 자신의 노력이 가장 필요했던 분야는? 


적극적으로 만나고, 교류하는 것이 이 분야에서도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졸업 전시, 네트워킹, 진로 상담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에 따라 얻어가는 것이 다르다. 콘스트팍에서 자부하는 각종 워크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디자인 전공은 상대적으로 각종 재료를 손으로 직접 다루어 볼 기회가 적을 수 있는데,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고, 물성에 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다시 석사 과정을 시작하는 첫 학기로 돌아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은? 


간단하게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더 많이 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폭넓게 읽고, 고민하고, 공부한 상태로 입학한 친구들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석사 프로그램 처음 1년 동안은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 더 많았고, 2년 차에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내가 원래 관심 있었던 주제를 새롭게 접근하면서 졸업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적 배경, 관심 분야에 관한 배경지식이 중요하게 작용함을 느꼈다. 또한, 나무나 금속을 다루고 가공하는 기본기를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열심히 석사 과정을 했지만, 기록으로 남긴 것이 많지 않아 아쉽다. 자신을 위한 기록이든, 남과 공유할 무언가이든 남기면서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예비 유학생이나 유학생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졸업 후 1년 반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니, 콘스트팍의 해당 석사 프로그램은 나에게 딱 맞는 선택이었다. 유학을 목표로 하는 독자 여러분의 희망 프로그램도 이렇게 알맞은 선택이었으면 좋겠다. 디자인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콘스트팍의 디자인 프로그램은 취업에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취업은 확실히 산업디자인 프로그램이 잘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을 철저히 한 다음 맞는 곳을 찾아가면 좋겠다.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려고 굳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석사 프로그램을 하는 것보다는 본인이 품고 있는 ‘건강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스웨덴은 OOO이다"라는 문장을 완성해본다면? 


나에게 스웨덴은 고치이다. 애벌레는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어 몸을 완전히 재구성한 후 나비가 된다. 스웨덴에서 유학하기 전 나는 자신을 잘 몰랐다.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는 것은 치명적이고, 그 때문에 일을 하며 휘둘렸다. 2년의 석사과정 동안 고치 속에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나를 녹여내고 재구성하는 시간을 보냈고, 지금의 “나”라는 형태가 생겨났다. 


커버 이미지: 김서륭 님의 작품 사진 (출처: 김서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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