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한 건 갑오징어뿐 아니라 꼬막도 좋아했어
이 나이에도 나는 모르는 것을 배웁니다.
날씨가 춥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잘 쓰지 않았던 모자를 꺼내어 썼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싶을 정도로 머리가 추우면 더 춥게 느껴진다. 목에 손수건이나 스카프라도 두르지 않으면 목이 간질간질하고 잔기침을 자주 한다.
친정에 가는 길에 운전하며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곧 도착하니까 5분 후에 주차장에서 만나자는 말에 여동생은 푹 고아놓은 사골을 부모님께 가져다 드린다고 했다.
'우리 마트에 들러 장을 좀 볼까'라는 내 말에
‘언니! 뭐 살 건데’라고 동생이 물었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뭘 좋아하실까’ 물으며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내 마음은 자주 뵙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간 날 때면 마트에서 장을 봐드리거나 한 번씩 모시고 나가 식사를 하는 편이었다.
반면 부모님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여동생은 자주 부모님 드실 반찬을 해다 드리거나 좋아하는 것을 사다 드린다. 나보다 부모님에 대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한결 편하게 장을 볼 수 있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홍어, 소고기 살까 '라는 말에 여동생이 꼬막을 집으며 “엄마는 이것 좋아하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 엄마가 꼬막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우리 부모님이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우리 큰 딸”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 들어가자 아버지가 다가와 안아주셨다. 엄마도 작은 체구로 힘껏 팔 벌려 나를 꼭 안아주셨다.
시장 봐 온 것을 본 부모님은
“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 이것들 가져다 너네 아이들 갖다 줘라, 우리는 그것 아니라도 먹을 것 많다”라며 큰 아들이 감자도 박스로 갖다 놓았고, 큰 며느리가 사다 놓은 추어탕이며 다른 반찬들 이 냉장고에 많이 있고, 막내며느리가 보낸 과일도 상자로 있다고 보여주셨다.
“엄마! 멀쩡한 큰 딸은 여태껏 엄마가 꼬막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네”는 말을 들으며
'우리 큰 딸이 서울에 취직한 후 집에 올 때면 늦게 와도 시장에 들러 엄마가 좋아한다고 갑오징어를 사 오고는 했지’라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우리 자식들은 엄마 아빠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챙겨주는 것이 참 고맙다”라고 말하실 때 아빠도 ’ 그래, 참 그러네 ‘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꼬막을 삶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고 물이 끓을 때를 기다렸다. 엄마가 와서는 “물이 완전히 끓기 전에 꼬막을 넣고 한쪽 방향으로 저어야 한다”라고 알려주셨다.
내가 잘하지 못하고 헤맬 때 엄마가 오셔서 꼬막을 저어가며 삶았다.
나는 둥근 스텐 볼에 꼬막을 담으며 “껍질은 내가 벗길게”라고 식탁에 앉아 꼬막 껍데기를 벗기고 여동생은 주방에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손톱으로 꼬막을 벌려보아도 숟가락으로 납작한 쪽을 두들겨 보아도 꼬막 껍데기는 잘 벗겨지지 않고 손만 아팠다.
“꼬막 껍데기 어떻게 해야 잘 벗겨져”라는 말에 동생이 “수저로 꼬막 꽁지를 벗기면 모양도 예쁘게 잘 벗겨져”라고 알려주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는
'꼬막이 작아도 살이 통통하니 맛있다'라고 하셨다. 아빠도 맛있게 드시며 ‘그러니까 맛있네’라며 ‘꼬막도 맛있고, 딸들하고 먹으니 더 맛있네’라는 말에 자주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한참 저녁을 먹는 중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 난 체를 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꼬막을 삶는 법도 껍질을 까는 방법도 모르면서...
‘왜! 우리 딸 잘났지’, “어떻게 다 안다냐, 그래서 세상은 혼자서 못 사는 것 아니겠냐. 서로 알려주고 배우기도 하고 도와주며 살아가는 것이지”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예전에도 많이 들었던 말이지만 오늘처럼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꼬막 하나를 삶고 껍질 벗기는 방법만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고 있는데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