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호, 역사상 ‘마지막 국가모독죄인’이 되다
형사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너 이름이 뭐야?”
“우상혼데요.”
“뭐 우상호? 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인데.....연세대 학생회장 우상호?”“예.”
나를 취조 하던 형사가 깜짝 놀랐다.
“뭐? 니가 진짜 우상호야?
너...무릎 그만 꿇고 일어나서
저~기 의자에 편히 앉아. 응?”
소가 뒷걸음질을 치다 쥐를 잡았다고, 그냥 거리 시위하러 나온 ‘운동권 학생’인 줄 알고 잡아온 놈이 ‘거물급’인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라는 거다!
뜻밖의 수확에 포상을 받을 기대에 찬 형사가 갑자기 나를 곱게 대우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하튼 나는 ‘정체’가 밝혀지자 곧장 장안동에 위치한 대공분실로 이송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죄명’이었다.
6.29 선언으로 인해 나에게 떨어졌던 집시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관련 수배가 해제되었기에,
나를 잡아 가둘 마땅한 죄목이 없었다. 경찰과 검찰에서는 골머리를 썩일 수밖에. 대통령 선거 전까지
가둬 두고는 싶은데 무슨 죄목으로 가두어야 할까.
그러다 그들이 찾아낸 게 바로 ‘국가모독죄’라는 죄목이었다.
내가 언제 어떻게 ‘국가를 모독했는지’,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랬다.
나는 6월 항쟁을 이끈 학생운동권 중에서도
언론의 주목을 특히 많이 받았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부의장이라는
직책도 있었지만, 한열이가 쓰러진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연세대학교에
늘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중 <뉴욕타임스> 니콜라스 크리스토퍼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이 빌미가 되었다.
다음은 크리스토퍼 기자와의 일문 일답 중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기자: 학생으로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
나: 폭력은 상황에 따라 정당화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나치에 대한 폭력은 정당한 것이었다.
기자: 현 정부가 진정으로 나치와 같은가?
나: (중략) 우리는 군사 파시즘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한국의 파시즘은 히틀러의 나치즘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옳다구나, 이놈이 감히 우리 정부를 나치에 비교했겠다! 이건 국가모독죄다!!
이들은 이렇게 해서 나를 국가모독죄로 서대문 서에 수감 시켰다.
이 죄목으로 검거된 사람은 나 이전에도 서너 명 밖에 안되고,
내가 수감 되어 있던 중 형법에서 삭제되었으니
나는 우리 역사상 ‘마지막 국가모독죄인’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렇게 해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나는 수감생활 중 또 다른 기록을 남기게 되었는데, '
바로 한꺼번에 ‘최초’와 ‘최후’ 타이틀을 거머쥔 옥중 2관왕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