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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상호 Mar 22. 2018

4화.“노무현 좀 콱 찍어주십쇼!”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유는...











2002년 봄, 다급한 전화 한 통에

나는 제대로 짐 쌀 틈 없이 

강원도로 향하는 차편에 몸을 실었다. 

바로 노무현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일하던 

후배로부터 선거를 도와 달라는 SOS를 받고 

긴 고민 없이 발길을 강원도로 돌렸던것이다.  

또한 강원도는 내 고향 철원이 있는 곳. 

바로 그곳에 노무현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은 

그야말로 전국을 달구고 흥행을 하고 있었다. 

흥행의 핵은 노무현 후보. 지지율 2%에서 시작한

그는 광주 경선에서 승리하며 예기치 못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다가올 강원도 경선이 고비였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이인제 후보가 연고지인 충청도에서 승리를 거두었던지라 

강원도에서 노무현 후보가 연달아 패배한다면 그나마 일던 돌풍이 사그라들 것이 분명했다.  



‘이번에 반드시 이겨야 승기를 잡을 텐데.....’



나는 수첩을 뒤지며 연고가 닿을 만한 고향 철원의 대의원을 모두 메모했다. 

형 친구, 초등학교 동창, 농민회 회원 등.....

그리고 그로부터 2박3일 동안 철원 바닥을 헤매며 

목이 쉬고 발바닥이 닳도록 전화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 설득했다. 



“저를 봐서 이번에 노무현 후보 좀 콱 찍어주십쇼!”     



녹녹지 않았다. 강원도는 전통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지역. 

게다가 당시 철원의  현역국회의원은 이인제 후보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고 이용삼의원이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내가 확보할 수 있었던 대의원수는 겨우 14표였다.     





나 스스로 더 많은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왜 그랬을까. 요즘 세간에 ‘친노’로 알려져 있지 않은 내가 

왜 16년 전, 그렇게 열심히 노무현을 도운 것일까.  


그것은 누구의 부탁 때문도 아닌 바로 노무현, 그 때문이었다.      


내가 노무현을 처음 만난 게 언제였던가. 

사실 노무현에 대한 인상이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는 ‘삐딱했다’.

학생운동을 했던 동료들과 함께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몸을 의자 위에 삐뚜름하니 기대고,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런 겉모습이나 말투와는 별개로 그가 하는 이야기 속에는 기백이 보였다. 

무엇보다, 생각이 같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386들은 6월 항쟁 때 서울을 중심으로 싸웠지만, 

노무현은 부산에서 앞장 서 싸웠다. 

그러니 우리는 ‘동지’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87년 6월 항쟁 동지들입니다. 

그러니 386들이, 나와 힘을 합해서 우리 정치를 한번 뒤집어 엎어봐야 하는 거 아뇨?”



나는 노무현의 정치적 비전을 보고 그를 지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2001년 여름에 그를 내 지역구인 서대문구에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그를 새천년민주당 지역구에서 초청해 강연회를 연 것은 우리 지구당이 처음이었다.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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