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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상호 Mar 28. 2018

6화. 하느님, 노무현을 도와주세요

노무현 후보는 알아주었다. 국민들이 기울였던 노력과 진심을


대선이 진행되는 동안 ‘후단협’을 중심으로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을 흔드는 이들이 많아졌다. 

노무현은 그런 그들에게 몹시 서운해했다. 


당이 노 후보의 선거운동에 주춤거리자 만들어진 게 국민참여운동본부였다. 

정동영, 추미애, 임종석 의원 등과 배우 문성근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적극 나섰다. 

나는 상임 부본부장을 맡았다.      


우리는 발로 뛰었다. 노무현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돼지 저금통을 팔러 다녔다. 

밑으로부터 팬덤이 형성되었다. 정치권보다 국민이 더 적극적으로 노무현을 지지했다. 

하지만 선거 당일까지도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치열한 박빙이 이어졌다.


개표 초기에 엎치락 뒤치락하는 스코어를 보며 나는 초조한 마음에 기도를 시작했다. 


“하느님, 제발 노후보가 당선되게 해주세요. 

이번에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말 열심히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두 번, 정말 진심을 다해 기도를 했다.

그 하나가 87년 여름 이한열의 소생을 기원하며 올린 기도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하느님은 얼치기 신자의 첫 번째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셨지만 

두 번째 기도는 들어주셨다.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겨우 2.3% 포인트 차이로 젖히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후 기도 말씀을 지키기 위해 2개월 정도 열심히 교회를 나갔지만, 

그 이후 한 달에 두 번 정도로 소홀해졌다. 하느님 정말 죄송합니다. 




노무현 후보는 알아주었다. 국민참여운동본부가,

그리고 노사모를 비롯한 그를 지지한 국민들이 기울였던 노력과 진심을.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그날 밤, 

그는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당 사무실이 아닌 국민참여운동본부에 먼저 들러 당선의 기쁨을 나누었다. 


당선이 확정되자 그동안 노 후보의 선거운동에 기여하기는커녕 

국민참여운동본부의 위치도 모르던 국회의원들이 눈도장을 찍으려고 본부로 달려왔다. 

이렇게 달려온 이들은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당선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동안 정작 나는 밀려든 사람들 때문에 사무실로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복도에 서 있어야 했다. 


‘국회의원들이란 이런 사람들이구나.’     

원외 위원장이었던 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살갑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그리고 대선 과정에서 

아무리 다른 사람이 대세로 떠올라도 그를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뛰었지만, 

지구당 중 처음으로 그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어주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로부터 고맙다는 말 한번 들은 적 없다. 


그러나 나는 나와 가치관과 정치적 전망을 같이하는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9년 5월, 나는 그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아야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세 달 뒤 또 한번 통곡을 하게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문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두 대통령을 연달아 보내며, 

나는 그해 심신이 모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렸다. 

내 평생 그렇게 울어볼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를 울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내가 김 대통령을 처음 뵌 것은 1987년 뜨겁던 그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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