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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장 박원순 Jan 16. 2018

아방, 왜 사람들을 못 생기게 그리나요?

아방에게 물었다 part.1

인터뷰에 앞서,
요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건 시장님이 요즘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그 ‘잘 모른다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청년 창업가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이런 것들도 모르고 시정을 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그 값진 이야기를 여러분과도 나눌까 합니다.




오늘 인터뷰는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이라고 한다. 원래 컨셉 자체가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지만 인터뷰이들의 직업이 점점 더 낯설어진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건 알았는데 왜 화가라는 직업을 두고 굳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낯선 이름을 붙인 것일까? 그럼 디자이너와는 또 어떻게 다른 것인가?


평소 문화예술에 나름 관심이 많다고 느꼈는데 역시나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기회를 맞아 또 하나 새로 알게 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연남동 골목을 꼬불꼬불 돌아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의 스튜디오에 다다른다.


우선 나처럼 아방이 누군지 ‘전혀’ 몰랐던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준비했다.

성명: 아방(신혜원)
직업: 일러스트레이터
소속: 스튜디오 ‘위티앤로맨티’
특징: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바탕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현실세계의 인간들보다 비대칭적이며 불균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언뜻 괴기스러운 느낌도 주지만 동시에 화사한 느낌을 선사한다. 스튜디오 ‘위티앤로맨티’를 운영하며 그림수업도 하면서 기업과의 협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또, 그림과 여행 등 다양한 일상에 대한 감성을 담은 출간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뷰 전에 독특한 그의 작품도 감상해보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해보려 한다.



이름을 왜 아방이라고 지었어요?


박원순: 아방씨?  아방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원순입니다.


아방: 어서오세요. 그냥 ‘아방’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시장님 밖에 많이 추우시죠?


박원순: 겨울은 겨울이네요. 그나저나 제가 인터뷰 전에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아방이란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게 됐어요? 무슨 뜻이에요? 오면서 그게 궁금했어요.


아방: 아, 고등학교 때부터 별명이었어요.


박원순: 의미가 있는 말인가요?


아방: 주위에서 어벙하다고... 부산에서는 어벙하다를 귀엽게 아방하다고 해요.


박원순: 어벙한 거 모르겠는데요?


아방: 저 많이 어벙해요.


오늘도 현장은 웃음으로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좋은 게 있다면 그 어떤 현장보다 웃음이 많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아방, 이 친구 독특한 매력이 있다. 요즘 말로 4차원의 냄새가 난다. 글솜씨가 부족해 그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몰라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박원순: 그럼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해보죠. 시작을 알리는 공식질문입니다. 몰라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방: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입니다.


박원순: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림 그리는 직업이 맞지요?


아방: 네, 맞아요. 지금 보시는 이곳에 그림을 제가 다 그렸어요.


스튜디오를 한번 쓰윽 둘러본다.


박원순: 그럼 화가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요? 뭔가 다른 게 있나요?


아방: 그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서 ‘아는 화가 오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저는 저 스스로를 화가라고 하지 않지만 그 오빠는 남들도, 본인 스스로도 화가라고 부르거든요. 아무래도 저보다 나이도 더 많고, 고민도 더 많이 해봤을 것 같아서!


박원순: 재미있네요. 뭐라고 하던가요?


아방: 그 오빠 말에 따르면 화가는 하나의 주제 의식을 뚜렷하게 잡고 그것을 굉장히 꾸준하게 작업물로 만들어 낸대요. 그리고 그 주제 의식이란 것은 일상에서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인 경우가 많고요. 그런 문제의식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더라고요.


박원순: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렇지 않은가요?


아방: 일러스트레이터는 보통 기업의 작업 의뢰를 받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는 경우가 많죠. 아니면 굿즈 판매와 같이 처음부터 상업적 니즈에 맞게 작업을 하죠.


박원순: 그런데 제가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잠깐만 둘러봐도 아방의 작품들을 보면 본인만이 추구하는 세계가 있는 것 같아요. 개성이 확실한 느낌입니다.


아방: 오~


그의 리액션이 일반 사람들과 확실히 다르긴 하다. 역시 4차원이 맞는 것 같다.


박원순: 회사의 요구에 맞추기는 하지만 그래도 본인만의 스타일을 살리면서 가는 거죠?


아방: 맞아요, 맞아요! 그래서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그 화가 오빠가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있는 것처럼 저도 그런 것이 있거든요. 예리하시군요? (웃음)


박원순: 하이파이브~


아방: 제가 손목을 다쳐서 손바닥 대신 이렇게 주먹으로!


이건 예전에 지코에게 배운 적이 있다. 당황하지 않고 주먹을 살포시 갖다댄다.



아방은 잘 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인가요?


박원순: 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어떻게 다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요. 그런데 아방은 어떻게 이렇게 잘 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됐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색을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다.


아방: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박원순: 네?(당황)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방: 아, 저는 제가 유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박원순: 그래도 지금 경력에 비하면 작품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렸고, 팬들도 있잖아요. 뭣보다 여러 기업으로부터 작업 의뢰도 많이 받는다면서요?


아방: 아... 아! 그건 그렇기는 한데... 음...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급하게 수긍하는 그의 모습에 현장이 또 빵 터진다. 그와의 대화는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재미가 있다. 보통 인터뷰를 하다보면 예상되는 답변이나 분위기가 있는 편인데, 그는 전혀 다르다. 어쩌면 4차원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새삼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진다.



왜 사람들을 못 생기게 그리나요?


박원순: 아방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게 있어요.


아방: 뭔가요?


기대에 찬 눈빛이다.


박원순: 이렇게 보고 있으면 썩 잘 그린 그림은 아니다? (웃음)


살짝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다 이내 익숙하다는 듯 답을 한다.


아방: 제가 그리는 인물들은 불균형적이고 비대칭적인 면들이 많아요.


박원순: 일부러 사람들을 못 생기게 그리는 건가요? 사실 보통 사람들은 잘 생기고 예쁜 것들을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아방의 작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생김새도 좀 이상하고 ‘이게 뭐지?’ 싶다가도 또 보다보면 독특하고 묘한 끌림이 있어요.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죠? 제가 너무 모르고 막말하죠?


아방: 전혀요. 오히려 잘 보셨어요. 사실 자주 듣는 이야기거든요.


박원순: 그럼 왜 이렇게 그리는 건가요?


아방: ‘남들과 달라도 잘 살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표현하는 거예요. 몸은 마르고 얼굴은 갸름하고... 뭐 이런 미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들이 있는데 저는 그걸 부정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선호하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이 기준에서 벗어나도 각자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박원순: 훌륭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네요.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은 특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차별을 하기도 하죠. 그런 차별을 없애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예요.


아방: 역시... 오늘 저랑 통하는 게 좀 있으시네요? (웃음)


참 해맑다. 함께 있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방: 저도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은 없었으면 해요. 제가 그린 세계에서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잘들 살아가거든요. 그들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고, 정작 그리는 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들은 잘 살아가고 있어요. 얼굴은 무표정할지라도 전체적으로 색을 따뜻하게 쓰는 이유도 그들이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거예요.


박원순: 아, 그래서 그랬구나?


아방: 네?


박원순: 말해주기 전부터 뭔가 사람들이 무표정한데 행복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고보니 보라라든지, 핑크라든지 따뜻한 색감들이 많네요. 게다가 거기 담긴 메시지까지 너무 마음에 드네요. 다르다고 소외시키고 심지어 미워하고 차별하고 그러면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거든요.


아방: 시장님은 이해해주실 줄 알았어요, 하이파이브!



어떻게 하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됐어요?


본격적으로 그의 직업에 대해 파헤쳐 보려 한다.


박원순: 아방은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됐어요? 미대를 나왔나요?


아방: 네, 저는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박원순: 그럼 학교를 마치고 바로 일...일러스...레터, 에고 혀가 꼬이네요. 아무튼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을 시작한 건가요?


아방: 아뇨, 사실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디자인 전공하고 디자인 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그렇게 2년을 넘게 다녔는데...


박원순: 때려 치웠군요!


아방: 3년이 되기 전에 회사를 나왔어요.


박원순: 이것도 저랑 비슷하네요. 하이파이브~


오늘 하이파이브만 몇 번을 하는지. 지코한테 배운 주먹치기(?)를 잘 써먹고 있다.


박원순: 저는 검사를 했었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검사 일이라는 게 사람 잡아 넣는 일인데 도무지 적성에 맞질 않는 거예요. 사람들이 좋은 직업인데 왜 그만두냐고 말렸었어요. 아방의 직장은 괜찮은 곳인데 그만 둔 건가요?


아방: 그냥 직장이죠. 세상에 괜찮은 직장이 어디 있겠어요. (쓴웃음)


박원순: 그럼 뭔가 야심이 있어서 나온 건가요?


아방: 야심이라기보다는 직장에 있으면 사장님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잖아요. 내 시간을 투자해서 그 일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거잖아요. 결국 내 소중한 시간을 파는 것인데 그게 어느 순간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월급이 아무리 좋아도요.


박원순: 그래도 퇴사라는 게 쉽지 않은데,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따로 있었어요?


아방: 그때가 제가 스물다섯 정도였는데요. 주변 언니들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대체로 서른 전후의 선배들이었는데 그분들에게 “지금 회사를 관두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데, 이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괜찮을까요?”라고 물었는데...


박원순: 물었더니?


아방: 열의 아홉은 응원을 해주더라고요. 제 나이면 뭐든 할 수 있을 때라며. 그래도 저보다 인생을 더 산 사람들이 모두 말해주니 한번 믿어보자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회사를 관두고 나와서 프리랜서가 됐답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여느 직장인들의 퇴사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화를 봐선 분명 그에겐 뭔가 독특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아무튼 그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이 인터뷰어의 사명 아니겠는가? 퇴사 이후의 생활에 대해 파헤쳐 봐야겠다.



퇴사하고 바로 유명 작가가 됐나요?


박원순: 나와서는 바로 승승장구 했죠? 그림이 이렇게 개성 넘치는데!


아방: 전혀요... 사실 엄청 힘들었어요. 퇴사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깊은 고민 없이 퇴사부터 하는 것은 무조건 말리고 싶어요.


박원순: 의외네요?


아방: 사실 저는 퇴사 전까지 그림을 제대로 완성해본 적이 없었어요.


박원순: 디자인 전공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미대의 일부잖아요.


아방: 일부이긴 한데 굉장히 달라요.


박원순: 아 맞다! 드로잉을 직접 할 필요는 없는 거죠?


아방: 네, 맞아요. 디자인과는 툴을 쓰죠. 그전까지 낙서만 해봤지 완성품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땐 정말 대책 없이 나왔던 것 같아요.


박원순: 그래서 무얼 먼저 했나요?


아방: 막상 나왔지만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의미로 그림을 완성해보는 일부터 했어요. 몇 달 동안 그림만 그렸어요.


박원순: 생활은요? 그림만 그리면 돈을 못 벌잖아요.


아방: 벌어둔 걸 까먹고 있었죠. 그리고 몇 달 지나니까 그림이 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시뮬레이션을 했어요.


박원순: 시뮬레이션이 뭔가요?


아방: 그림을 가지고 상품을 가상으로 만들어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 캐릭터를 포토샵으로 스마트폰 케이스에 합성해 보기도 하고, 책 표지에 올려보기 했어요.


박원순: 일종의 카탈로그 같은 걸 만들어 본 건가요?


아방: 네 맞아요! 그래서 그 이미지를 큰 기대 없이 쇼핑몰 몇 군데 보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큰 일이 났어요.


박원순: 반응이 좋은데 왜 큰 일이 났어요? 돈 벌 일만 남은 거 아닌가?


아방: 쇼핑몰에서 실제 제품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상품이 없잖아요! 제품을 직접 만들진 않고 시뮬레이션만 했으니까요.


박원순: 아이고, 참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어요?


아방: 그때부터 부랴부랴 공장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해서 겨우겨우 만들어 냈어요. 그때 처음 만든 게 스마트폰 케이스예요.


박원순: 한번 볼 수 있어요?


아방: 예쁘죠? 이 디자인은 이제 비매품이에요.


박원순: 독특하고 예쁘네요. 나도 하나 갖고 싶네. 이런 걸 만들어서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을 제안하고 돈을 벌 수 있군요. 이런 시장이 있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부쩍 많이 느낀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다는 사실을.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로 사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는 상당히 만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남들에게 이러한 삶을 적극적으로 추천할까?




<아방에게 물었다 part.2>는 1월 23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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