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by 우동

푸른 밤의 새벽 네시,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다섯 시 반에 알람을 맞췄지만 타지에서의 설렘에 좀이 쑤셔 몸을 일으켰다. 무심한 듯 윗옷을 걸치고 산책을 나간다. 제주도는 바람이 많고, 돌이 많으며,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三多島)라고도 하는데, 그중 파도를 품은 바람이 소리를 지르며 제일 먼저 인사를 걸어왔다. 별들은 잠시 얼굴을 비추는 듯하더니 금세 부끄러운 듯 구름 뒤에 숨는다. 칠흑 같은 거리에는 편의점의 불빛만이 유일한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밤바다를 보면 물귀신에 홀린 듯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던데,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바다가 마치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나를 빨아들일 것만 같다. 시선을 돌린다. 돌담길을 거닐며 여유를 즐기다 보니, 슬슬 밤이 잠을 깨는 기색을 보이고 삼삼오오 인기척이 적막을 깨뜨린다. 나도 대열에 합류한다.




아직은 잠이 덜 깬 밤하늘에 보호색을 띤 듯 검은색 버킷햇을 쓰고 검은색 후드티를 입은 커플이 초입부터 허들링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헤어밴드를 하고 팔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는 슬리브리스와 대퇴부까지 보이는 3부 반바지를 입은 러너는 아침 운동을 나온 듯 천천히 뛰고 있다. 다 큰 딸이 아빠랑 손을 잡고 깔깔 수다를 떨며 걷고 있다. 그들 가족의 화목한 모습에 나까지 정겨움에 사무친다. 남녀 둘둘 짝을 지은 대학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올라가다 말고 계단에 멈춰서 있다. 여자들은 먼저 가라 선창 하고, 남자들은 같이 가자 후창 한다. 결국 함께 천천히 올라간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여자는 루이비통 점프수트를 입고 굽이 높은 앵클부츠를 신고 있다. 강한 눈 화장도 한몫한다. 뭔가 큰손 느낌이 물씬 풍긴다. 스님들도 두 분 보인다. 그들과 자연의 조화가 왠지 익숙한 듯 자연스러워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또 다양한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산 중턱을 넘으니 심장은 점점 고동치고 숨소리는 사포로 긁은 듯 거칠어진다. 비록 182m의 낮은 봉우리이지만 나그네의 윗옷을 벗기기에는 충분하다. 결국 팔을 드러낸다. 봉우리에 도착하니 인산인해를 이루고 도떼기시장처럼 여기저기서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다. 전세라도 낸 듯 세 발로 땅을 디딘 렌즈들이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나침반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자리를 잡았지만 하늘이 우울한 듯 낯빛을 띠고 있다. 걱정은 불안으로 바뀌고 금세 확신으로 바뀌지만 일말의 희망이 나의 엉덩이를 무겁게 한다. 오매불망 내 님은 새색시가 홍조를 띠는 듯하더니 다시 구름 뒤에 숨는다. 그리고 그는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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