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날.
거울 속의 내가 나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날.
그날이 오늘이다.
데스크의 승인을 받아 기사를 올렸다.
생각보다 빠른 피드백과 승인에 다른 이들보다 빠른 기사가 온라인에 송고됐다.
덕분에 조회수도 빠르게 올라갔다.
"탑스타의 사생활, A양의 정체."
조회수만큼 기사에 댓글들이 달렸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댓글은 아니다.
기사에 대한 평도 아니다.
오로지 조회수.
사람들의 관심을 위한 엘로우페이퍼, 공명심과 정의는 중요치 않다.
돈이 최고다.
하루는 역 앞에 돈을 구걸하는 이가 있었다.
지저분한 옷차림에 나이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진 않았다.
궁금했다.
정말 돈이 될까?
취재랍시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뜸 그는 돈을 달란다.
인터뷰에 공짜가 어딨 냐며.
잠시 고민이 들었다.
'이걸로 뽑아낼 게 없는데 내 돈을 투자할 필요는 없지.'
하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내 팔을 붙잡고 말했다.
"콘텐츠 만들어줄게."
그는 평범한 아니 대단한 사람이었다.
행색은 비록 초라하고 술주정뱅이로 보일 수 있었지만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로웠다.
"돈은 돈을 불러, 그걸 지금 이 상황으로 충분히 증명하고 있고."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그의 얘기를 듣고 보니 가능한 얘기였다.
그는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었다.
확실한 마케팅 기법과 운영방식을 컨설팅해 주고 수수료는 받는 프랜차이즈.
가장 좋은 상권을 분석해서 그에 맞는 적절한 문구와 방식을 택했다.
미쳤다.
돈의 흐름을 이렇게 이해하다니.
나는 그에게 촬영 허락을 요청했지만 그는 허락지 않았고 기사에도 실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언급했다.
즉, 엠바고를 요청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당신이 버는 그 푼돈 이상으로 나도 푼돈을 모으고 모아 목돈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당신들처럼 구걸하지 않는다.
난 관심으로 돈을 번다.
그 관심으로 인해 이슈가 된다 하면 난 사회적 공헌과 돈을 함께 취할 수 있다.
그게 당신의 사생활일지라도.
난생처음으로 연애부 기사를 쓰다가 잠행르포를 쓴다고 말했다.
데스크에서는 쓸데없는 짓이라더니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꽤 괜찮은 콘텐츠라고 진행해 보라고 했다.
데스크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니 그도 돈 냄새를 맡은 것 같다.
난 망원렌즈와 카메라를 챙기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밤새 같은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 도착했다.
바닥에 쿠션매트를 깔고 그 위에 신문지와 박스를 덮었다.
누워도 될 만큼 평평히 깔고는 물이 조금 남은 페트병과 라면 국물이 잔잔히 담긴 컵라면을 머리맡에 두었다.
소주병은 조금 멀찍이 두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돈 주머니에 동전 몇 개를 올려놓고는 누웠다.
새벽 5시 15분이 지나자 한 두 사람이 지나간다.
시간이 갈수록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한 두 사람이 동전을 던지듯 두고 간다.
걔 중에 나이 지긋한 분이 지폐를 던져놓고 간다.
그는 그가 지남과 동시에 지폐를 바로 잡아 챙긴다.
인기척에 반응하는 듯싶었다.
7시가 넘어서자 다들 바쁘다.
그는 이제야 입을 여는 듯하다.
"대통령만 잘 뽑았어도 내가 이렇게 망하진 않았지. 정책도 무능, 머리도 무능, 가족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죽지 못해 삽니다. 정말."
그는 악다구니를 하듯 같은 말을 지껄이다싶히 했다.
직장인들 중에 가다 돌아와 힘내라고 말하며 돈을 주고 사는 사람도 보였다.
아주 드물었지만.
그리고 의외로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이 돈을 주었다.
"나라가 망했다, 미래가 망했어."
그의 막무가내 외침에 지긋한 노신사는 나무막대기로 호령하며 그를 나무랐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약자의 이미지가 상승하며 이를 지켜보던 이들의 동정은 커졌다.
"섭외한 건가?"
이젠 그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그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 다시 누웠다.
아무 말 없이 잠만 잤다.
그런데도 돈을 두고 가는 사람이 꽤 있었다.
아줌마들.
그가 써놓은 글이 짠했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동전을 꺼내주었다.
가끔 지폐도 나왔다.
저녁이 되자 그는 안내문구에 힘을 달라는 내용으로 바꿔 두었다.
연인들이 지나가면 콕 집어 도와달라 말했다.
그냥 가는 연인들도 많았지만 뭔가 보여주는 남자들도 많았다.
돈 천 원이 아닌 만원도 나왔다.
그는 유튜브의 BJ와 같이 큰 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12시가 넘자 사람들의 발길을 끊겼다.
건정한 사내 둘이 그의 앞으로 왔다.
같이 어디론가 가고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을 더 찾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역에서 그를 보았다.
앞서 본 건장한 사내들과 커피숍에서 얘길 나누는 그.
커피를 사서 지나며 그들의 얘기를 엿들을 양으로 지나갔지만 별다른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진짜 거지는 아닌 듯했다.
그가 내게 말한 것처럼.
나는 애초에 그와의 약속을 지킬 생각은 없었지만 이젠 더 재미난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노숙자를 대상으로 돈을 버는 플랫폼 회사.
"노숙자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제목 하나로 이미 데스크에서는 함박웃음이다.
기사의 내용은 그들은 다 거짓된 삶이고 동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들은 솎고 있다. 가 주된 내용이었다.
조회수는 엄청났고 이슈가 되며 노숙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달라짐을 후속 취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올해의 기자상을 탔고 엄청난 조회수와 댓글로 소위 대박이 났다.
그는 사라졌고 노숙자들은 죽어나갔다.
내 탓은 아니다.
그들은 원래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다.
동정으로 연명하는 것 초차 사회적 낭비이니 죽는 게 마땅했다.
쌀만 축내는 버러지들.
내 기사에 많은 댓글이 그러했고 노숙자들의 죽음에도 늘 따라붙었다.
난 거리의 기자가 되어 그들을 삶을 취재했다.
그들이 죽어도 내게 돈이 되었고 그들이 사라져도 내겐 돈이 되었다.
그들이 생겨나도 내게 돈이 되었고 그들이 다쳐도 내겐 돈이 되었다.
난 나와 같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그들로 인해 돈을 벌었다.
난 어떻게 사진을 찍고 어떤 단어를 선택했을 때 조회수가 높아지고 돈이 되는 지를 알려주었으며 그로 인해 수수료를 챙겼다.
난 어느새 그가 되어 있었다.
돈이 돈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그 언론의 노숙자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