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라고 한다.
오랜만에 2분 지각을 했다. 항상 20분은 일찍 사무실에 도착하는데 자취하니까 분리수거도 해야 하고 군것질을 줄이려고 모닝루틴에 계란 3알 프라이 해서 먹는 걸 추가하니 시간이 빠듯했다. 겨우 도착해서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출근한 게 어디냐]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차이 중엔 퇴사율이 있다. 내 옆자리에 있던 사람은 한 달이 못되어 퇴사해서 공석이 되었는데 그 자리를 보면서 그래도 또 일 년 쉬지 않고 일하고 출근한 게 어디냐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한 사람보다 버틴 사람이 이긴다는 문구를 봤다. 그래서 나에게 잘 버티고 있다고 칭찬해 줄 만큼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너도 그렇다. 그러니 너 자신을 의심하지 말고 잘하고 있다고 잘 버티고 오늘 하루 살아 내는 게 어디냐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난 오늘 집에 꽃게 3킬로가 와서 매우 들뜬상태예요. 갑각류를 워낙 좋아하는데 심지어 제철 꽂게라니 너무 기대가 되는 부분이야. 가을은 숫꽃게가 제철이고 봄은 암꽃게가 제철이야. 제철을 두 번이나 주는 꽃게는 진짜 삶의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머릿속에 쓰레기 버리는 부분까지 최적화를 해놓은 극 J랍니다.)
지난주에 로또에 당첨되면 담주까지만 회사 다니고 싱가포르 가서 놀 생각을 했지만 당첨되지 않아서 아직은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민수도 잘 버텨냈다고 칭찬해 줘요. 내가 자존감이 떨어져 밥값을 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좌절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해준 고마운 이야기였는데 오늘 갑자기 떠올라서 기분이 좋았어요. 넌 존재 자체가 밥값이라고 밥값을 할지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나 살아있고 오늘도 숨 쉬고 있는 게 어디냐 지금은 살아내고 버티는 것만으로 잘한 거라고 말해주신 직잭이모의 말을 지금 너에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살다가 언제가 자존감이 떨어진 날 다시금 이 문구를 보면서 힘냈으면 좋겠어요.
배고프고 피곤해서 예민한 재연아, 잘 챙겨 먹어요. 최근에 대도서관의 사망소식을 보고 내가 자다가 죽게 되면 어떻게 하냐 생각해 봤어요. 이틀 동안 연락이 안 되면 우리 집 비번을 아는 친구가 와서 내가 죽었는지 확인해 주기로 했는데, 인생이 참 덧없고 건강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같은 몸무게인걸 보니 나도 글러먹었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래도 더 불어나지 않고 버틴 게 어디야.라는 생각을 해요. 모든 잘 안될 땐 그래도 내가 버틴 게 어디야 라는 생각을 해봐요.
- 저녁에 누웠다가 서늘한 날씨에 에어컨을 끈 저녁이었다. 절기상 백로가 저번주 일요일이었는데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는데 신기하게 그게 맞아떨어지면서 서늘한 날씨에 야장에서 친한 친구와 편하게 소주한잔 하고 싶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