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세종문화회관으로 뮤지컬을 보러 갔다 왔다. 둘째가 몇 달 전 뮤지컬을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을 해왔다. 나는 좋다고 하였고 막내도 같이 데려가자고 했다. 토요일 뮤지컬을 보러 가기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는 폭설이 내린다고 연일 보도를 해댔다. 어릴 때는 눈을 좋아했지만 이제 할줌마가 되어 가는 시점에서는 눈이 온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 어떡하지? 둘째에게 눈이 온다고 하니 예매를 취소하자고 했다. 그러나 막상 취소가 안된다는 허탈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년이 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겪다 보니 이제는 어디 가는 것이 귀찮고 두렵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둘째와 막내를 데리고 세종문화회관으로의 긴 여정을 떠났다. 생각보다 버스 여행은 재미있었다. 버스도 금방금방 왔고 깨끗하고 따뜻한 버스를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세종문화회관 주위를 배회하다 자그만 카페를 발견했다. 에그타르트와 모과차를 주문했는데 예상 밖의 맛집이었다. 가격도 아주 착했다. 모과차는 수제 모과차라 컵 안에 얇게 저민 모과들이 가득했다. 주변의 냉장고 안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 안에 정갈하게 담아놓은 각종 수제 차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생강차, 레몬차, 모과차 등등! 카페의 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서 에그타르트를 포장해갔다. 작지만 알찬 가게였다. 예상치 않게 이런 맛집을 발견하는 것! 이런 것이 삶의 소소한 기쁨이 아닐까?
드디어 뮤지컬을 보러 세종문화회관 별관 안으로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했다. 코로나 예방접종 확인을 받고 체온을 재고 손 소독을 하고 나니 통과를 인증하는 스티커를 받았다. 그리고 또 큐알코드로 좌석 등록을 하고 나서야 겨우 홀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세명이 나란히 앉고 한 칸은 비워놓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세 명은 다 따로 앉아야만 했다. 일찍 예매를 해서 앞자리에서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장장 세 시간 가까이 되는 공연이었다.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배우들이 노래하고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가성비 짱이라고 좋아했지만 나는 별 차이를 못 느꼈다. '작은 아씨들' 소설을 뮤지컬 화한 것이라 배우들이 모두 내가 좋아하는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그렇지만 줄거리를 다 이미 영화나 소설에서 봐버려서 그런지 1막 중간에는 나도 모르게 깜박 졸았다.
1막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 막내는 흥분했다.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그런데~~ 막내가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너무 집에만 있어서 문화생활을 못해서 그런가? 둘째와 나는 그런 막내를 불쌍해했다. 막내의 자리가 약간 구석이라 중간 자리인 내 자리와 바꿔서 앉기로 했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막내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계속 관련 배우들을 검색하고 유튜브에서 영상도 찾아보고... 잠도 안 자고 새벽까지 흥분해있었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자신의 진로를 뮤지컬 배우로 바꿔버렸다. 열심히 공부해서 경찰이 된다더니 갑자기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뮤지컬 배우가 된다니~~ 경찰이 되면 범죄자들만 만나야 되고 얼마나 삶이 고되고 힘들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배우가 되면 노래하고 관객 만나고 얼마나 행복하겠냐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막내의 말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행복이다!라고 평소에 생각해왔지만 막상 딸이 뮤지컬 배우가 된다고 하니 썩 내키지가 않았다.
막내는 연기학원을 검색해 상담까지 받고 왔다. 한 달 수강료가 영어, 수학학원보다 더 비쌌다. 이걸 빌미로 큰애와 막내는 싸우기까지 했다. 큰애는 엄마 고만 고생시키고 공부나 하라는 거였고. 막내는 내가 행복하게 살겠다는데 왜 난리냐는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침묵! 연기 영화과를 다니는 아들을 두고 한탄하던 동기가 생각난다. 그때는 남의 일이었는데 막상 내 딸이 뮤지컬 배우가 된다고 하니 왜 이렇게 마음이 헛헛할까? 막내가 또 다른 계기로 진로를 다른 걸로 바꾸기를 빌어본다. 외교관이나 약사 이런 걸로 바꾸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