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둥맘 Feb 27. 2022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추천 도서 목록에서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주문을 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다정한 것보다는 이기적이고 개인중심적이어야 살아남는 거 아니었나? 궁금해졌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읽어 내려갔다. 책은 예상과 달리 두꺼운 과학 도서였다. 진화론에 기반을 둔 학자가 쓴 책이었다.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나의 예상은 다정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쓴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들어하노라!’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이 쓴 ‘다정가(多情歌)’의 한 구절처럼 다정한 사람들은 정이 많은 탓에, 정을 헤프게 여기저기 주고 다닌 탓에 밤잠 못 이루면서 마음 고생도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않는 일도 정이 많은 탓에 자처해서 사서 고생을 하는 일도 많다. 남의 고통과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돕다가 내가 손해나는 일도 많다. 가만히 있어도 코 베어가는 요즘 같은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좀 아둔해보이고 바보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뒤떨어져보이는 다정한 사람이 살아남는다고?  

   

다정한 사람이 훨씬 진화된 인간이다!

이 책에서는 다정한 사람이 훨씬 진화된 인간이라고 한다. 지금의 인간(호모 사피엔스)이 다정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고대의 네안데르탈인보다 지금의 우리가 훨씬 다정하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에 비해 공격적이고 경쟁적이었다. 뇌가 더 크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서 협력을 잘 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 종 무리를 이길 수 있었다. 우리 종은 갈수록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협력하면서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혁신하고 또 그것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3 담임선생님이 학교 신문에 쓰신 글이 아직도 생각난다. ‘조금 손해 보고 살아라!’ 너무 자기 것만 챙기고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조금 지고 살라는 내용이었던 같다. 그 때는 선생님의 진정한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살면서 자꾸만 생각나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려운 사정을 부탁해오면 내 자리를 양보하면서 두 팔을 걷어부치면서 도와주었다. 크고 작은 모임의 총무 자리도 선뜻 맡아 남들이 하기 꺼려하는 살림살이를 살기도 했다. 오십 평생을 이렇게 살다보니 어느 순간 회의가 들 때가 있었다. 내가 베푼 호의는 금새 잊어버리고 자신의 셈법만 찾는 사람에게 상처받아 분한 마음을 어쩌지 못할 때도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당하고 사는 거지?’ 나 자신이 너무 바보같고 한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것을 살뜰하게 챙기면서 자신의 갈 길을 앞만 보고 꿋꿋하게 잘 가는 듯했다. 나만 정이 많아 이러저리 치이면서 이용 당하는 것만 같았다. 더 약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나의 살아온 방식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런 순간에 만난 이 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간과 가장 비슷하게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보노보(침팬지의 일종)는 낯선 보노보를 보면 공격하는 대신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준다고 한다. 새끼를 키우는 암컷끼리 서로 유대하면서 도와주며 살고 새끼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공격하는 수컷은 가차없이 집단으로 공격한다. 새끼를 잘 돌보고 다정한 수컷에게만 호의를 가지고 짝짓기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개체는 다정한 성향으로 진화되어 나간다. 나의 바보스럽고 어리숙한 다정함이 결국은 진화의 산물이었다니! 나는 진화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 어느 말보다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능력보다는 다정함!

‘적자생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화론은 생존투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만이 살아남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현실도 적자생존의 축소판이다. 남을 밟고 제압해야지만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는다. 학교에서 내신 성적을 딸 때도 그렇고, 취업전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항상 남보다 더 나은 성적을 받는 방법을 가리키고 또 배운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배운다.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그러나 진화인류학자가 밝혀낸 사실은 다르다.     


다른 개체들을 짓밟고 경쟁에서 이긴 가장 잘 적응한 개체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서로에게 다정하고 협력하는 개체들이 함께 살아남는 것이었다. 뛰어난 혼자보다는 평범하지만 다정한 우리가 더 강했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함께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페이스북같은 요즘 잘 나가는 외국 기업에서는 인재를 채용할 때 블라인드 형식으로 뽑는다고 한다. 그 사람의 학력과 경력보다는 얼마나 팀원들과 협력을 잘 하는지에 중점을 둔다. 혼자만 잘난 독불장군은 철저하게 걸러내는 인사시스템이다. ‘하나보다는 여럿의 생각이 더 옳다!’ 는 말이 있다. 집단지성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요즘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는 뛰어난 개인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너무 위험요소가 많다. 여럿이 함께 협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변수들을 함께 고려하고 더 멋진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제는 혼자만 똑똑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이다.     


학교에서도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교사 혼자보다는 함께 공동으로 연구할 때 교육은 더 발전된다고 보고 있다. 각자의 교실에 고립되어 있던 교사들을 이끌어내어 함께 연구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장, 교감의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이 교장 임용 연수의 추천도서였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이제는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욱 중요한 화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한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살펴 다정해져야 한다. 친하게 지내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는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달팽이 밥 좀 주면 안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