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별다른 일이 없이 경증의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집안일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 나의 최종학력은 대학원졸이고 석사학위를 갖고 있다. 대학원 말미에 연구 주제를 바꾸는 바람에 급조한 논문은 조건부 통과라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버젓이 주요 도서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 나의 직업은 집안일을 돌보는 집사다. 대부분이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사 노동이고 반복적인 일들이다. 세상이 바뀌어 사회적 가치는 인정받고 있지만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직업에 종사하면서 자부심을 갖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끔씩은 은행이나 마트에 들러 내가 세상과 단절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덤으로 바깥에서 나는 사장님이라는 번듯한 직함도 갖게 된다.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유쾌한 순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임무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비교적 증상이 가벼워서 무거운 부담을 주진 않지만 가끔 짜증을 불러오긴 한다. 지금은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두려워지는 건 사실이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미리 걱정하고 싶지 않아 불안감은 제쳐 두었다.
나의 일상은 평온하다. 이 잔잔함이 얼마나 오래갈지 드문드문 걱정과 불안이 밀려올 때가 있다. 폭풍은 피하고 미풍만 불었으면 좋겠다.
물가가 많이 올라 생활비가 부담스럽다. 그나마 다행으로 현 정부의 감세정책은 적잖이 도움이 된다. 가정 경제를 생각하면 반가운 일이다. 이와는 달리 물론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나라 살림살이는 좀 걱정스러운 것 같다. 세수 부족분이 30조 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조세의 기능이 정부의 재원 조달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 조세 형평을 통한 부의 재분배 기능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정부의 현 조세 정책은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법인세 감세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개인에 대한 감세는 소비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본격적인 감세 정책을 추진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공시가격이나 공정시장가액 비율의 조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감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선거를 앞두고 민생 토론회를 통해 엄청난 재정 투입을 공약했다. 이는 정부의 감세 정책 기조와는 모순적 상황으로 보인다.
그래도 소시민인 나는 각종 세금과 준조세인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보며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