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일상을 어떻게 채워볼까? 다양성은 선택의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노란가방이 제안하는 아트&컬처 버킷리스트 중 관심 가는 아이템이 있다면 ‘나의 버킷리스트’에 추가하여 하나씩 즐기시기를!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스토리텔링과 시각적 표현 능력이 모두 뛰어난 연출가이다. 대본을 읽어보기도 전에 작품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주드 로의 말을 통해 연출가로서 그의 능력을 배우가 얼마나 신뢰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렌티노는 10시간짜리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영 포프’를 제작했다고 한다. 촬영 기간은 무려 2년. 드라마에 등장하는 공간과 의상만 보아도 제작 기간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이곳은 바티칸인가 세트장인가 장면마다 등장하는 완성도 높은 공간은 어떻게 촬영한 것일까? 마치 바티칸에서 촬영한 것 같은 근사한 공간은 ‘재현’한 것이다. 바티칸 내에서 촬영 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에 소렌티노 감독을 위시한 제작팀은 시스티나 성당을 실제 크기로 새로 짓기로 했다고 한다. 시청자들이 진짜 바티칸에 와 있는 것처럼 느끼고, 이야기에 푹 빠져서 극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엄청난 스케일을 시도한 덕분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 호강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장면마다 건축 명작, 회화 명작과 같은 향연이 펼쳐질 수 있었던 데에는 역사를 지닌 고대 도시 로마도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로마 시내와 외곽에 있는 정원과 광장 등에서 촬영한 덕분에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같은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시각적으로 표현한 종교의 힘
가톨릭은 성당 건축을 비롯해 제의에 사용하는 성배·향로·촛대, 사제·추기경·교황의 예복 등 고유의 전통과 미감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신자가 아니어도 가톨릭에 대한 막연한 위엄과 존엄을 느끼게 하는 요소인데, ‘영 포프’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황이 입고 있는 새하얀 의복은 신성함을 더해주고, 예식 때 차려입는 화려한 의상은 예술 그 자체다. 착용하고 있는 십자가 목걸이, 장신구, 신발 등 소품조차도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다. 옷을 입은 태와 딱 떨어지는 라인에서 묻어나는 고급스러운 의상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에서 제작한 것. 교황과 추기경들이 입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핸드메이드 제품으로 제작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영 포프’의 시각적 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자연광도 빼놓을 수 없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활용함으로써 종교적 성스러움을 부각시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탑 앵글 화면도 인상적인데, 드라마틱하면서도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독특한 장치이다.
체리코크제로 마시는 잘 생긴 교황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교황 역할에 주드 로 이외 대체 가능한 배우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백치미가 느껴지는 잘생긴 배우 정도로 치부했던 주드 로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에서 제작한 의상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떡 벌어진 어깨의 멋진 체형에, 새하얀 교황 옷을 입은 그에게 자연광이 비칠 때 살짝 드러나는 다리 선은 섹시하기조차 하다.
교황 비오 13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황과 거리가 있는 캐릭터이다. “당신이 내게서 나를 구원할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전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교황이 이런 파격적인 말을 하다니! 놀란 추기경에게 농담이라며 넘어갔지만 그는 장소 불문하고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고, 아침으로 체리코크제로만 먹는다며 교황청에서 맞은 첫 아침 식사에서 체리코크제로만 찾는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괴팍한 젊은 교황이다. 주드 로는 이런 캐릭터에 공감과 동정과 존엄이 혼재된 독특한 교황의 모습을 아주 잘 만들어 낸다. 극 중에서 “잘 생긴 거 아니까 그만 쳐다보시오”라든가 “예수님보다 내가 더 잘 생겼을 걸”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데 그 말에 동의하게 된다는 것.
국무원장 추기경 안젤로 보이엘로
주드 로 외에 메리 수녀 역의 다이안 키튼 등 여러 배우가 등장하지만 ‘영 포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인물은 이탈리아의 연기파 배우 실비오 오를란도이다. 그가 연기한 바티칸의 국무원장 추기경 안젤로 보이엘로는 교황 비오 13세의 약점을 잡기 위해 계략을 꾸미기도 하지만 남몰래 장애아를 돌보며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연약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또한 속세에 찌든 것 같으면서도 누구보다 교회를 아끼는 인물이기도 하다.
볼에 붙은 부자연스러운 큰 점은 캐릭터를 위해 분장한 것으로 보이엘로(Voiello)라는 이름 또한 이탈리아의 유명한 파스타 브랜드에서 차용한 것이다. 소렌티노 감독은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대중적인 이탈리아 국민 파스타 브랜드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극 중에서 (그리고 실제로도) 이탈리아인으로 축구를 종교처럼 숭배하는 그가 추기경 옷이 아닌 축구복을 입은 모습이 한 번 나오는데 예상치 못한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세련된 위트와 드라마의 환상적인 조합
“사람들은 교황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실제로 깨달은 건 제가 고아를 연기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건 정말 세상에 처해진 자신의 상황을 헤쳐나가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요.” 교황 비오 13세를 연기한 주드 로의 말처럼 ‘영 포프’는 바티칸을 배경으로 하고 교황이 중심인물이지만 가톨릭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종교를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의 고뇌와 슬픔, 트라우마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에 가깝다. 드라마는 내용을 충실히 따라가면 감독의 메타포를 모두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때로 종교적인 내용도 언급되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보기에 이해가 잘되지 않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이해해도 전혀 문제 될 것 없다. 신념과 원칙에 대한 이야기로 무거운 주제를 위트 있게 다루어서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시각적 요소에 집중해서 함께 따라가다 보면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 그냥 흘려보내는 장면 없이 꼼꼼히 두루두루 살펴보게 될 것이다.
‘영 포프’는 HBO(미국), Sky Atlantic(영국), Canal+(프랑스)가 합작하고 드라마 중간중간 이탈리아어도 나오니 미드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영 포프’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시즌2를 기대하게 될 텐데 이에 관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영 포프’의 시즌2는 만들지 않지만 같은 배경을 공유하는 앤솔러지 시리지 ‘뉴 포프’를 현재 제작 중이며 내년 초 방영 예정이라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주드 로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데일리타임즈W 에디터 정지현 dt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