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일상을 어떻게 채워볼까? 다양성은 선택의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더 없이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노란가방이 제안하는 아트&컬처 버킷리스트 중 관심가는 아이템이 있다면 ‘나의 버킷리스트’에 추가하여 하나씩 즐기시기를!
알고 지내던 외국인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다 치자. 현지인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 볼 만한 곳을 추천한다면 혹은 가이드를 자처해 그와 함께 서울 시내 투어를 한다면 어디를 소개하고 싶은가. 저마다 각기 다른 곳을 떠올릴 테지만, 그곳이 어디든 공통점은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싶은 장소라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외국인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명소이다.
건축물과 내부의 공간적 미감이 조화를 이룬 이곳은 지난해 6월 개관했다. 명칭에서 예측할 수 있듯 국내에 천주교가 도입되던 시기 박해를 받은 역사를 소개하고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곳으로 조성되었다. 그렇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꼭 한 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국내의 뛰어난 건축 공간 탐방 차원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에 대한 사색에 잠기기에도 제격으로 새해를 맞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새로운 계획과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공간과 현대 조각 작품의 어우러짐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서소문역사공원 아래 자리한 ‘지중(地中) 박물관’이다. 입구에서 마주하게 되는 붉은 벽돌 외관이 주는 근대적 고풍스러움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실내로 들어서더라도 첫 느낌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대리석이 아닌 마루로 된 바닥은 소박한 분위기를, 천정은 나무 격자를 덧대어 층고를 낮게 연출했지만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포근한 분위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옻·칠·나전-그 천년의 가교’전이 열린 기획전시실과 박선기 작가의 숯 설치 작업. / 사진=정지현 기자
숯 조각을 반원 형태로 만들어 매단 박선기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는 곳곳에 예술 작품이 놓여 있다. 장소 특성상 가톨릭 관련 작품도 많지만, 현대적으로 혹은 한국적으로 표현하여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하 2층에 있는 기획전시실에서는 ‘옻·칠·나전-그 천년의 가교’전이 지난달 29일까지 석 달간 열렸다. 현재 하늘길에서는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좁은 문으로(Through the Narrow Gate)’라는 주제의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곳
지하 3층에는 ‘콘솔레이션 홀(Consolation Hall)’이 있다. 철제 메시 패널로 둘러싸인 사각의 열린 공간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주위를 에워싼 4면의 스크린에서는 환상적인 색감의 스테인드글라스, 정선의 ‘금강전도’, 물방울이 시멘트 벽에 떨어지고 스며드는 모습을 담은 벽 영상 등이 순차적으로 상영된다. 전체적으로 조도가 낮지만 가운데에 위쪽부터 연결된 사각기둥에서는 밝은 빛이 새어 나온다. 빛의 출처는 바로 자연광! 지상까지 연결된 사각기둥을 통해 콘솔레이션 홀 한쪽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지며, 홀의 명칭처럼 위로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콘솔레이션 홀을 나와 맞은 쪽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면 하늘광장이 나온다. 높은 벽으로 외부를 차단한 이곳에서 보이는 것은 하늘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주변의 고층 빌딩뿐. 광장에는 이환권 작가의 ‘영웅’과 순교자를 상징하는 정현 작가의 ‘서 있는 사람들’이 놓여 있다. 벽으로 둘러싼 광장, 조각품, 하늘이 전부인 이곳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대표적인 포토존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 광장을 비추는 빛의 방향이 시시각각 바뀌어 매 순간 다른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역사와 더불어 우리 역사를 알 수 있는 곳
인조대리석 아치와 십자형 기둥의 규칙적인 반복을 통해 ‘축성된 공간’으로서 박물관이 가지는 특별함을 드러내는 상설 전시실은 1,2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도입되던 시기 온갖 박해와 고초를 겪어낸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와 서소문 주변의 역사, 성리학 질서가 무너지고 동학 같은 새로운 시대정신이 등장한 19세기 조선의 상황 등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월요일과 설날, 추석 당일 휴무이다.
데일리타임즈W 에디터 정지현 dt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