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일상을 어떻게 채워볼까? 다양성은 선택의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노란가방이 제안하는 아트 버킷리스트 중 관심 가는 아이템이 있다면 ‘나의 버킷리스트’에 추가하여 하나씩 즐기시기를!
이즈음 영화관과 서점은 <작은 아씨들> 물결이다.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기생충>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의상상을 수상하는데 그쳤지만, 세계 영화제 67개 수상 및 178개 노미네이트라는 대기록을 세운 만큼 영화에 대한 완성도는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다. 서점에서는 초판본 표지 리커버본,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양장본 등으로 판매 상위 권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링크 되어 있다.
명작이고, 영화에 대한 평가도 좋으나 소녀감성 취향이 아닌 까닭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터. 내 인생에서 <작은 아씨들>과의 교감은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과 TV 만화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의상상을 수상했으니 당대의 패션 스타일로 시각적 요기를 할 수도 있고,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티모시 샬라메(는 관심이 가긴 했지만)라는 화려한 출연진에도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영화관을 찾는 이들도 많지 않은 그 적막감에 편승한 이유는 단 하나, 감독 그레타 거윅 때문이다.
그레타 거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영화 <프란시스 하>(2014)였다. 무용수로 성공해 뉴욕을 접수하겠다는 꿈을 가진 27살 뉴요커 프란시스. 그러나 현실은 평범한 연습생 신세로 불안정한 청춘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인물이다. 주인공 프란시스와 그녀를 연기한 그레타 거윅 사이에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그 점이 배우 그레타 거윅의 매력이다.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연기가 아닌 것처럼 연기하는 그레타 거윅은 멈블코어(Mumblecore) 영화에 출연하다 유명해진 케이스라고. 2000년대 이후 미국 인디 영화의 한 장르인 멈블코어는 사건 자체보다 대화와 행동에 초점을 두어 인물들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게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수다스러운 우디 앨런의 영화를 떠올리면 될 듯하다.
사실적이면서 독특하고 유쾌한 그녀의 캐릭터는 허세와 허당기가 버무려진 인물 ‘브룩’을 연기한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에서도, 아이는 갖고 싶지만 결혼은 원치 않는 ‘매기’를 연기한 <매기스 플랜>(2017)에서도 그 색을 잃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프란시스 하>의 감독 노아 바움백에 관해 말하자면, 그레타 거윅과 연인 관계로 지난해 2세를 얻으며 변함없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린버그>(2010)에서 감독과 배우로 처음 만났고, 2012년에 <프란시스 하>를 공동 집필했고, 영화를 촬영하기 한 달 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레타 거윅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이들이 사는 뉴욕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 매료돼 있다’고 하니 삶적으로도, 일적으로도 잘 만난 파트너가 아닐까 싶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유력 후보로 봉준호 감독과 경쟁했던 <결혼이야기>(2019, 스칼렛 요한슨·아담 드라이버 주연)를 비롯해 노아 바움백의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없다. 그중에 하나를 추천하자면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은, 숨겨진 보석 같은 넷플릭스 영화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2017>이다. 한때 명성을 얻었으나 지금은 연로한 조각가일 뿐인 아버지의 회고전을 준비하기 위해 재회하는 세 남매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버지 더스틴 호프만에 아담 샌들러, 벤 스틸러, 엠마 톰슨이 남매로 출연한다. 감독이 노아 바움백이고 출연진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코미디적이면서도 뭔가 가슴 찡하게 하는 내용으로 넷플릭스의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발견한 진주 같은 작품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레타 거윅은 자전적 스토리를 영화화 한 <레이디 버드>(2018)로 감독 데뷔를 했다. 이 영화로 여성 감독으로는 역사상 다섯 번째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인정을 받았다. 두 번째 연출작 <작은 아씨들>은 고전 속 여성 캐릭터들을 현대적으로 완벽 구현해냈다는 극찬을 받으며, ‘감독’ 그레타 거윅의 능력을 재차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작은 아씨들>은 상영 시간 135분 내내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책으로 출간된 것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은 녹록지가 않다. 두꺼운 소설책 한 권에서 묘사하는 장면과 이야기 구성을 2시간 남짓의 영상으로 담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 불가피하게 장면과 이야기를 생략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완성도가 떨어져서 책만 한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미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다면, 자칫 구성이 엉성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어린 자매와 성인이 된 자매의 모습을 교차 편집하여 흥미롭게 이야기를 따라가게 한다. 그리고, 조(시얼샤 로넌)와 로리(티모시 샬라메)가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라든지 베스(엘리자 스캔런)가 로렌스 저택으로 피아노를 치러 가는 장면 등 예전에 읽거나 보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느끼며 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 그레타 거윅’처럼 ‘감독 그레타 거윅’ 또한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데일리타임즈W 에디터 정지현 dt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