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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작성자는 결코 오탈자를 발견할 수 없다.

부하직원은 쓴 보고서에서 오탈자를 발견하면 부하직원과 나의 관계, 그리고 보고서의 수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평소 신뢰가 깊고 꼼꼼한 부하직원이 수준 높은 보고서를 가져왔는데 오탈자 몇 개 있다면 “여기 오탈자만 고쳐서 끝내자”고 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하지만 늘 말썽피우고 보고도 제대로 못하고 눈에 찍힐 행동만 하는 부하직원이 형편없는 보고서를 가져왔는데 오탈자를 하나 발견하면 “이거 이 따위로 할 거야!”며 역정이 난다.


그런데 결벽증이라 할 정도로 꼼꼼한 부하직원이 쓴 보고서도 자세히 보면 오탈자가 꼭 있다. 검토자가 보기엔 이런 것도 제대로 못 보냐 싶고, 보고하러 오기 전에 한번이라도 읽어보면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도 든다. 거기다가 마침 검토자가 발견해서 바로 잡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꼭 검토자가 상사에게 보고할 때 미처 못 본 오탈자가 보인다. 보고 중에 상사가 알아차릴까 싶어 얼른 다음 장으로 넘긴 적이 적지 않다. 그런데 분명 상사는 오탈자를 봤다. 봤음에도 별 얘기 안 하는 것은 나와 상사의 관계가 원만하거나 보고서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다행인 경우는 드물다. 


다시 말해 보고서 작성자와 검토자는 결코 오탈자를 100% 찾아낼 수 없다. 첫째 이유는 사람은 쓰인 대로 읽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기 때문이다. 다음의 문단을 읽어보자.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망창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혹시 위 문단에서 내용을 잘 이해하고 별로 잘못된 점을 발견 못했더라도 이상할 필요가 없다. 보고서 작성자는 처음부터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썼을 뿐이고 읽고 싶은 대로 읽었을 뿐이다. 그러니 자기가 쓴 보고서에 오탈자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리 읽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검토자는 보고서 작성자와 다른 생각으로 읽기 때문에, 또는,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오탈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간혹 부하직원이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로 “저 팀장은 이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보고서 오탈자만 찾는다. 어지간히 할 일 없나 보다”고 불평해도 개의치 말자. 어차피 검토자는 나보다 더 모르는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검토자가 그 분야를 잘 알면 잘 알수록 부하직원이 쓴 보고서에서 오탈자를 발견할 확률이 줄어든다. 나 역시 읽고 싶은 대로 읽기 때문이다.


오탈자를 찾아내기 어려운 둘째 이유는 보고서 작성은 항상 늦고 검토할 시간은 모자라고 보고 시간은 다가오니 작성자는 마음이 급하고 검토자는 빨리 달라고 다그치면서 둘 다 터널 시야에 갇히기 때문이다. 


터널 시야란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끝 밝은 곳만 주시하고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이다. 경마에서 말의 눈 좌우를 가려서 말이 다른 데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하여 더 빨리 달리게 하는 것이 터널 시야를 응용한 경우다. 당장 발등에 불이 나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주변을 살피기 어렵다. 급한 불부터 끄다보니 보고서 곳곳에 남은 오탈자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오탈자가 얼마 있는지도 모르는 보고서를 들고 상사에게 보고하러 가고 싶지는 않다. 부하직원이 스스로 오탈자를 찾아내서 바로잡게 하고, 검토자가 오탈자를 정확히 찾아내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보고서의 글을 단어가 아니라 한 글자씩 짚어보면서 읽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도 많이 들고 끈기도 무척이나 필요하다. 그래서 쉬운 방법은 자동 맞춤법 검사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로 검색하면 무료로 한글 맞춤법을 검사할 수 있는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비록 한글 맞춤법 검사기가 모든 오탈자를 찾아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탈자의 수를 줄일 수는 있다.


그 다음은 보고서 내용과 관련된 분야를 전혀 모르는 제3자에게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보고서든 그 주제와 관련한 전문 단어나 표현이 있기 마련인데 작성자나 검토자는 이미 그런 단어나 표현에 익숙해서 오탈자가 있어도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제3자는 그런 단어나 표현을 잘 모르기 때문에 무슨 단어이고 무슨 뜻인지 의심한다. 그의 의심을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탈자를 대폭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사에게 보고할 때 어려운 단어나 전문 용어를 더 쉽게 설명하거나 다른 쉬운 단어로 바꾸는 기회가 된다.


김철수. 2016.12.1. 

vitaminq42@gmail.com


<팀장을 위한 보고서 검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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