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중 가끔은 무서워 지기도 한다.
바이탈(vital) 과 의사. 죽고 사는 의학적 문제를 풀어 내는 해결사. 내과 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을 부르는 의료계 은어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 같이 바이탈 과 의사로서의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부심 만큼이나 할 일도 많다. 출근해 있는 동안은 모든 상황에 1초 스탠바이. 저년차 때는 병원 문 밖을 나서는 것도 금지다. 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원내방송을 못 들으면 초 단위로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과 환자에게 생기는 문제를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라도 그렇다. 병원 안에서 방송이 나오기 전 항상 들리는 스피커 켜지는 소음이 있다. 그 "탁"하는 소리가 들리면 모든 바이탈 과 의사는 정지 동작으로 선다. "71 병동 코드 블루 (원내 심정지 상황 발생)" 가 이어 들린다. 모두는 하던 일을 버려 두고 그 곳으로 달린다. 내과 의사가 된 지도 이제 몇 년, 벌써 백 번은 뛰었다. 나는 아직도 내과 의사가 된 첫 날 당직을 기억한다.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뛰던 초짜 의사의 터질 듯한 설레임.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실로 멋진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하면 그 곳에는 당황한 이들이 있다. 환자는 침대에 누워 간호사 스테이션에 나와 있다. 그를 발견한 것은 아마도 병동을 순회하던 간호사. 자기 담당 환자가 죽은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겠지만, 진정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간호사 서넛이 기도확보와 가슴압박을 시작했고, 온 병동의 사람들이 나와 둘러 싸고 구경하고 있다. 한 간호사가 잘 맞지 않는 산소 마스크를 채우려 애쓴다. 다른 간호사는 가녀린 팔목을 꺾어 환자의 복장뼈를 수직으로 누르고 있다. 몇 분만 더 하면 본인이 먼저 쓰러질 것만 같다. 막 도착한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손 바꿉시다." 간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의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 온다. 그녀는 완전히 탈진했는지 아예 땅에 주저 앉아 버릴 것만 같다.
나는 환자 위로 올라 탄다. 손 바꾸는 그 잠시 동안 환자에게서 굉장한 정적이 느껴진다. 죽은 사람의 모습은 자는 사람과 확연히 다르다. 죽은 사람이 주는 섬뜩한 느낌은 잠시라도 한 번 겪어보면 잊을 수가 없다. 심폐소생술 중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이 맞다.' 생각이 들면 가끔은 무서워 지기도 한다. 내가 내미는 손이 강 저 편까지 뻗어 있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그 시간이 길지는 않다. 자세를 잡으면 바로 압박이 시작된다.
나는 멈춘 심장을 대신 해 몸 전체로 피를 쏴 주고 있다. 동료 하나가 서혜부 동맥에서 맥을 느끼고 있다. 잘 누르고 있으니 아마 느껴질 것이다. 젊은 남자가 압박을 하면 확실히 힘의 차이가 있다. 가끔은 힘이 과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힘의 세기에 매우 집중한다.'10센티미터를 누른다!' 다행히 나는 비슷한 템포로 가슴압박을 시행중이다. 이 누르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심장을 마사지하려면 반드시 복장뼈를 통과해야 한다. 나는 누를 때마다 바득거리는 뼈 소리를 들어야 한다. 복장뼈는 아까부터 부러져 있었다. 어쨌든 이 순간을 넘기지 않으면 환자는 죽는다. 뼈 소리를 그냥 넘길 수 있는 담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가슴압박을 하고 있으면 속속들이 동료들이 도착한다. 내 이마에 맺힌 땀을 본 인턴 하나가 이제 손 바꾸자고 어깨를 두드린다. 내가 바닥을 밟는 즉시 그가 침대위로 튀어 올라간다. 다시 심장이 스스로 뛸 때까지 압박은 멈추지 않고 지속되어야 한다.
"에피네프린 3분마다 슈팅!"
"들어가고 있습니다."
심장이 산소를 전달하는 모터라면, 모터 자체에 산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은 호흡기 계다. 뇌는 산소분압에 매우 중요한 장기다. 잠시라도 산소를 먹지 못하면 뇌사로 갈 수도 있다. 따라서 기도(Airway) 확보는 지속적인 산소공급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환자의 기도확보가 원할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나는 환자의 머리맡으로 미끌어져 움직인다.
"인투베이션 (Intubation: 기관삽관) 합시다!"
내가 말할 때 즈음 세트 준비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역시 숙련된 인력과 일하는 것이 좋다. 나는 내가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돌아가는 프로들의 이 자동능(自動能)을 사랑한다. 이들은 모든 곁가지를 알아서 준비해 준다. 전문가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여하튼 그 동안 나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누운 환자의 목을 뒤로 꺾어 젖혀 자세를 잡는다. 후두경에 손바닥 길이의 쇠뭉치를 철컥 걸어 잠근다. 블레이드(Blade: 칼날)라 불리우는 이 쇠뭉치 끝으로 빛이 나와 어두운 목구멍 안을 비춘다. 나는 쇠뭉치로 후두덮개를 찾아내 걷어 올릴 것이다. 후두덮개가 열리면 숨길을 볼 수 있다. 그 안으로 관이 들어가야 이 사람이 산다.
나는 블레이드를 부드러운 목구멍 안쪽에 갖다 붙여 조심스럽게 올린다. 자칫 잘못하다간 이를 부러뜨릴 수 있다. 벌써 수 십 번 한 술기지만 실패할까 두려워진다. 매번 성공해도 항상 두렵다. 기도가 확보되지 않은 환자는 지금도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한 번 실패 후 맞는 두 번째 시도는 환자가 남은 생을 식물인간으로 살 확률을 10% 증가시킬 수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렇다. 두렵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후두의 해부학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주눅들 필요 없다. 나는 블레이드를 위로 당겨 후두덮개를 찾아내고야 만다. 나는 속으로 '좋았어!'를 외친다. 기도가 보인다.
그 때, 환자의 몸이 거세게 흔들린다. 가슴팍을 압박하는 선수의 교체다. 새로 압박하는 인턴은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큰 키의 거구였다. 그가 압박을 시작하면서 나는 걸었던 후두덮개를 놓쳐 버렸다. 나는 실패를 빨리 받아들이고 다시 시도해야 했다. 이런 난장판에서 자기 일을 방해받았다고 감정이 요동쳐서는 안 된다. 그 누구를 비난해서도 안 된다. 다시 하면 된다. 그 것만이 중요하다.
다행히 후두덮개의 위치를 금세 찾아냈다. 기도가 열리니 녹색 가래가 꿀렁꿀렁 흐르고 있다. 나는 이따 주치의에게 흡인성폐렴 가능성을 얘기해 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기도를 주시한다. 간호사에게 한 손으로 튜브를 달라는 손짓을 하자 내 손에 튜브가 닿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튜브를 쥐고 기도 안으로 밀어 넣는다.
"좋았어, 돌아 왔네."
내가 기도삽관을 하고 있는 사이, 사타구니의 동맥을 짚고 있던 선배 내과 레지던트가 ROSC(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자발순환회복)을 선언한다. 심장이 이제는 알아서 뛴다는 의미다. 압박하던 인턴이 환자에게서 떨어진다. 나는 청진기를 꺼내 폐 하부의 소리를 듣는다. 앰뷰백 수축에 맞춰 공기가 잘 흐르고 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맥을 짚는 레지던트에게 미소 지어준다.
"튜브고정. 여기도 잘 들어갔습니다."
처음 환자를 발견한 간호사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중환자실 내려 가는 엘레베이터가 대기중이라고 복도 끝에서 이송요원이 소리친다. 우리는 쇠로 된 바퀴침대 프레임을 잡고 엘레베이터를 향해 달린다. 무기력하게 누운 환자가 복도를 빠르게 미끌어져 간다.
환자는 지금 살아났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강한 각오의 냄새가 복도를 가득 메운다. 환자에게는 지금이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순간임이 확실하다. 그에게 주어진 생이 몇 시간일지 몇 년 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의 영역은 내 관심 밖이다. 능력 밖의 일은 전혀 궁금하지도 않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그를 건져내야 한다. 늪에서 꺼내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것만이 중요하다. 나는 바이탈 잡는 의사니까. 나는 내과의사니까.
<Photo by: Laurent B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