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서늘했다. 여름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을 앞에 두고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던 중, 전화가 울렸다.
“오빠, 배고프지? 점심, 꽃게 먹을래?”
잠시 망설였다. 이제는 해산물의 비린내가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입맛이 달라졌다는 건, 몸의 시간이 바뀌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내의 말투에 이끌려 식당으로 향했다. 상 위에는 금세 밑반찬들이 차려지고, 이내 커다란 냄비가 놓였다. 붉은 국물 속에서 꽃게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불이 오르자, 국물 가장자리가 끓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작은 기포들이 터질 때마다, 기억도 함께 끓어올랐다.
국물을 한 수저 떠 입에 넣었다. 뜨겁게 혀를 감싸는 그 맛—칼칼하면서도 달큰하고, 그 안에 어머니의 손맛이 스며 있었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알이 꽉 찬 암꽃게를 사 오셨다. 얇게 썬 무와 대파를 듬뿍 넣고, 손끝으로 간을 보며 끓이던 모습. 식탁 위에는 김이 피어오르고, 창문 밖엔 바람이 서늘하게 불었다. 그 냄새가, 그 온도가, 오늘의 식탁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한철에만 맛볼 수 있는 그 국물이 시간의 맛이자 기다림의 맛이라는 걸. 어머니의 꽃게탕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그 계절을 통째로 담은 한 그릇이었다.
이제는 다시 맛볼 수 없는 그 시간을 국물 한 모금이 다시 불러왔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과거가 지금 내 입안에서 다시 끓어오르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에서 노인들이 “옛날 게 제일 맛있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그 말의 온도를 안다. 추억은 입맛을 되살리고, 기억은 오늘의 시간을 데워준다.
이제 나는 음식을 단순히 ‘맛’으로 먹지 않는다. 아내의 배려와 함께, 그 속의 ‘시간’을 먹는다. 추억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살리는 불씨다.
삶도 그런 것 아닐까.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안에서 조용히 끓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지금을 다시 뜨겁게 만든다.
꽃게탕 한 그릇이 내게 알려준 건 단순하다. 오늘을 살리는 힘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언제나 곁에, 다시 끓어오르는 기억 속에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