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색] 얼룩덜룩, 시선이 만든 빛

by 박웅

일요일 오전,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림자는 길어지고 있었다. 커피 향이 방 안에 퍼질 무렵, 쓰레기통 뚜껑을 열자 봉투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손잡이를 묶어 들고 단지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아침의 공기가 살짝 서늘했다.


수거함 앞에서 봉투를 던져 넣는 순간, 시선이 멈췄다. 쌓인 봉투들 위로 뒤섞인 색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 바나나 껍질, 주황빛 양파껍질, 보랏빛 포도껍질, 거기에 분홍빛 아이스크림 포장지까지 — 지저분하다고 생각할 법한 풍경이 이상하게도 화려했다.


그 순간, 고개를 돌리자 단지의 나무들이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며 낙엽이 흩날렸다. 노랑, 주황, 갈색, 그리고 아직 초록이 남은 잎들. 그것도 어쩐지 얼룩덜룩했다. 그런데 낙엽의 얼룩은 아름답게 느껴지고, 쓰레기봉투의 얼룩은 불편하게 보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같은 색인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색은 선악이 없고, 빛의 파동일 뿐인데. 달라진 건 세상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내 눈이었다.


나무의 얼룩은 ‘자연의 변화’로 읽히고, 쓰레기의 얼룩은 ‘인간의 흔적’으로 읽힌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사물의 성질이 아니라, 내 마음의 해석이었다.


그 생각이 미치자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쩌면 사람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의 거칠음이 못 견딜 만큼 불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그 거칠음 속에도 누군가의 사정과 온도가 숨어 있다. 빛은 언제나 거기 있었고, 내가 그 빛을 어떻게 읽느냐가 다를 뿐이었다.


문득 아우렐리우스의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다.”

그 말이 오늘은 철학이 아니라 실감으로 다가왔다.


돌아오는 길, 쓰레기봉투 위의 얼룩이 햇살을 받아 은근한 색으로 빛났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 마음의 빛이 달라졌다.


그 빛이 하루를 조금 더 다정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전 03화[맛] 꽃게탕, 다시 끓어오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