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인식] 공황의 순간, 수용이 건넨 평온

by 박웅

업무를 마치고 귀가길에 올랐다. 국도를 달리던 차 안, 해는 이미 져 있었고 길가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차창 너머로 불빛이 물결처럼 지나갔다. 평소와 다름없는 길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심장이 요동치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몸을 꽉 움켜쥐었다. 핸들을 붙잡은 손끝이 차가워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가까스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켜 봤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온몸이 낯선 공포에 잠식됐다. 살면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선명했던 적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처형이 근무 중인 병원에서 구급차가 올 수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 때 잠시 안도했지만, 구급차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끝나는 걸까.”


응급실의 밝은 조명, 차가운 금속의 냄새. 검사 결과는 이상 없다는 한마디였다.

“공황 발작입니다. 심장은 멀쩡해요.”

몸은 멀쩡했다. 그러나 그 말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몸이 멀쩡한데, 왜 이렇게 아픈가. 그날 이후 나는 그 질문을 안고 살아야 했다.


며칠 뒤, 같은 증상이 또 왔다. 사우나 안이었다. 열기 속에서 숨이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그때마다 같았다.

“도망쳐야 해.”

결국 상담을 받았다. 심리상담사는 색채로 된 그림들을 보여주며 물었다.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비나 도형 몇 개를 제외하곤, 아무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상담사는 말했다.

“시선이 굳어 있는 거예요. 너무 오래 자신을 몰아붙이셨네요.”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그제야 알았다.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 멈출 수 없던 조급함이 결국 몸을 통해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그날 눈물이 불쑥 흘러내렸다. 억눌러 왔던 감정이 몸을 통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이후 공황을 다루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심장이 요동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경험하며, 그 감각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연습이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근육을 긴장시켰다가 풀며 몸이 다시 안전하다는 사실을 ‘이론이 아닌 감각으로’ 배웠다.


“공황은 당신을 죽게 하지 않습니다.”

그 단순한 말이 그때는 진실처럼 다가왔다. 불안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였다.

그 후로 나는 달라졌다. 불안이 오면 이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심장이 빨라졌구나. 무섭구나. 그래도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잦아든다. 공황도, 예기불안도 내 삶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나이테가 하나 더해진다는 건 이런 과정을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두려움을 억누르려 했다. 이제는 두려움과 함께 걷는다. 불안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이제야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함께 숨 쉬는 지금, 삶은 느리지만 한결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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