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처럼 깊이 잠들었다가 아침을 맞았다. 지난 사흘 동안, 좀처럼 숙면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고 누우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상념(想念).
그 녀석은 내 안의 오래된 기억에서 피어난 그림자였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떠다니는 생각의 부스러기들. 붙잡으려 하면 멀어지고, 잊으려 하면 더 선명해졌다. 형체 없는 그림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글자처럼, 그 존재는 늘 희미했다.
상념은 늘 불쑥 찾아왔다. 나에게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저 혼자서 떠들었다. 이야기의 앞뒤는 맞지 않았고, 그 언어는 내 말인데, 이상하게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 말이었다. 굵은 연필심으로 힘주어 눌러 쓴 작은 손글씨처럼, 흔적은 남았지만 뜻은 읽히지 않았다. 게다가 묘한 무게가 있었다. 머리 한쪽을 눌러대는 묵직함. 신경을 쓸수록 그 무게는 더 커져 갔다.
때로는 참다못해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가 문젠데?”
하지만 그 순간, 상념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무게만 남았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냥, 나 여기 있다는 것만 알아줘.’
이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창밖이 희미하게 밝아온다. 밤새 상념과 씨름하다가, 결국 포기한 채 새벽을 맞는 일도 많았다.
어젯밤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우니 또 그 녀석이 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며칠째 이어진 피로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속으로 말했다. ‘그래, 오고 싶으면 와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쫓아내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걸음 물러서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그렇게 두었다. 상념은 잠시 머물다,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몸이 놀랍도록 가벼웠다. 달라진 건 단 하나였다. 이번에는 그를 내쫓지 않았다는 것.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은 내가 오히려 상념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몰아내려는 의지가 오히려 그를 더 단단히 묶어 두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왔구나” 하고 맞아주자 그는 놀란 듯 조용히 물러났다.
어쩌면 상념이란 내 안에 쌓인 욕망의 부스러기, 사소한 후회와 미련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그건 나를 괴롭히려 오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념은 쓸모없는 손님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친구다. 다만 쫓아내지 말고, 억지로 붙잡지도 말고, 그냥 맞아주면 되는 것이다. 오랜 벗을 대하듯이.
언젠가 그가 또 찾아온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왔구나. 잠시 머물다 가거라.”
그 말을 건네면, 새벽 창문으로 부드러운 빛이 스며들고, 내 마음에도 고요가 천천히 번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