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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얼른 Sep 06. 2022

뭐하세요?

직업 정체성에 대하여

"What do you do for a living?"


얼마 전 시작한 영어회화학원에서 물었다.

음 글쎄... 잠시 고민하다 "I don't have a job now"라고 답했다. 그 후로 주저리주저리 원래 일을 했는데 지금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 쉬고 있고 등등의 사족을 덧붙였다. 그제야 마음이 좀 편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뭐라 말해야 할지 애매하다. '자기'를 '소개'할 때 직업이 거의 8할이라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전 지금 백수입니다!"라고 편하게 말하고는 싶은데 뭔가 분위기가 쎄 헤질 것 같고, 적당한 단어이면서도 민망하지 않은 그런 게 무엇일지 꽤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퇴사를 하고 아주 잠깐은 학교에서 일부 강의를 했고 그곳에선 선생님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렇다고 나 자신을 선생님이라 말하기도 좀 민망했다. 10 to 7을 출근하여 일했던 직장 경험 때문인지, 그만큼의 시간을 일하는데 쏟지 않으면 직업이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다. 정식 교사도 아니었고, 선생님을 하려고 퇴사를 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지금 누굴 가르칠 때인가 라는 등등의 생각이 겹쳐 그 마저도 지금은 그만둔 상태다.


비슷한 시기, 운이 좋게 창작지원사업에 나의 작품이 선정되어 일주일에   정도 작가님이라고 리고 있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니 기분은 좋았지만,  역시도 어디 가서  스스로를 작가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이제  아이템 하나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입봉을 하지 못한 작가(지망생) 일뿐이니깐.


그래서 직업으로서의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되었다. 회사원 혹은 콘텐츠 기획자(콘텐츠 PD)라는 명확하고 민망하지 않은 나의 직업 정체성을 뒤로하고, 난 이제 어떤 사람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참 애매할 뿐이었다. 무엇 하나 규정짓고 설명하기엔 난감함의 연속이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언제까지 괜찮을까?라는 연쇄적인 고민들도 생겨났다.


그런데 진짜 신기하게, 그 사이 나는 주변인들로부터 "글을 쓰면 작가예요."라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나온 말들이라 더 신기했다.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하는 것도 있었겠지만, 그들도 그런 정체성 고민을 해왔구나 했다. 어느 이유가 크든 반가운 마음이었다. 의자에 앉아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쓰고, 고치고, 쓰기 위해 공부하고, 조사하고, 누군갈 만나고, 다시 쓰고 하는 일들을 하는 순간 그게 작가라는 말이었다. 누구나 작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글을 쓰기 위해 저만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꼭 입봉을 해야만, 돈을 남들만큼 벌어야만 작가로 인정되는 건 아닌가 보다. 물론 여러 방면에서 더 정체성을 굳힐 수 있겠지만.


어느 감독님께서 최근에,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도 말고 특히 친구의 글을 경계하느라 힘 빼지 말고 대신 기성작가들의 작품은 꼭 질투하고 경계하라고 했다. 내가 비교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짚어준 말이었다. 작가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말과 맥락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나는 작가인가? 글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이 더 나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은데, 이게 직업이 될 수 있나 싶다. 작가와 지망생 사이... 그 어딘가에 내 정체성이 존재한다.

나에겐 아직 모든 게 어색한 시기인 것 같다. 그래서 굳이 어느 하나 규정짓기 않고 판단을 유보했다. 애매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그 쯤하고, 나는 오늘 할 만큼의 고민과 몇 글자라도 글의 진도를 나가기로 했다. 괜히 취하고 싶지도 않고, 오만하고 싶지도 않는 자기 방어일 수도 있겠다.


하루하루 조금씩, 착실하게. 그 이상은 느슨하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직업 정체성과 가치를 더 확실히 규정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덤덤히 겸손한 자세로 나의 직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 불안한 마음은 늘 자주 들었지만, 이것저것 손대지 않고 중요한 것만 남기며 한 발짝씩 가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인들 덕분이었다. 그들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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