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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Dec 30. 2022

자연사 삼겹살


#자연사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가고 싶은데 있어?

자연사박물관!!!


마지막 휴가 중 하루를 조금 떼어줄까 생각하며 슬쩍 물었을 때, 너는 기다렸다는 듯 덥썩 대답했다.


영하 8도의 마지막 목요일, 얼음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버스를 갈아타며 아슬아슬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찾았다. 마음의 고향에서 너는 오랜 벗 매미, 용암, 장수풍뎅이, 듀공을 쓰다듬고 끌어안았다. 그 동안 잘 있었냐고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쫒겨나서도 놀이터의 공룡 친구들에게 인사하며 미끄럼틀을 세 번이나 탔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근처 시장에서 국수를 먹는 거였는데 갑자기 너와 좀더 걷고 싶어 홍제천으로 향했다.


내년 캘린더에는 멋진 사진만 넣어줘

야 어린이들이 좀 망가지는 맛이 있어야지

콧물 사진보고 계속 놀린단 말이야. 그럼 엄마 아빠 망가지는  사진을 넣자

그러려면 네가 사진을 찍어야지. 그러면 우리가 망가지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겠네

그럴까?


꽁꽁 얼은 홍제천 폭폭를 보고 탄성을 부르던 너는 갑자기 사진을 찍어 달라 했다. 그리고는 나보고 거기에 서보라고 했다. 자기가 사진을 찍겠다며.


앞발을 살짝 들어야돼. 표정은 세련되게

이렇게?

다음은 아빠가 하고 싶은 자세 해봐

(어색어색)


사진은 한 컷 빼고 다 흔들렸다.



#삼겹살


오늘 집에 갈 수 있을까?

집에는 갈 수 있어. 오늘일 수도 있고 오늘 조금 넘어서 일수도 있고

에휴 아빠랑은 20살, 아냐 26살까지... 아니아니 16살까지만 같이 가준다

뭐라고? (그렇게 오래면 곤란.. 쿨럭쿨럭)


한참을 걸어 홍제에 도착했다. 고기집이 수두룩했다.


아빠랑 너랑만 고기 먹으면 어떨까?

괜찮아

엄마랑 너랑만 고기 먹으면?

좋지

아빠랑 엄마만 고기 먹으면?

절대 안돼


그렇게 우리는 왕솥뚜껑생삼겹살 집에 들어 갔다.


어린이는 나밖에 없네

ㅋㅋ


너는 삼겹살도 콩나물국도 아닌 김치전에 푹 빠져서는 단 숨에 두 접시를 후루룩. 결국 추가 주문은 못 했다. 그렇게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구슬아이스크림 어때?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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