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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자 Jun 19. 2022

그놈의 밥밥밥

그놈의 고기고기고기



결혼 n년차가 되어도 여전히 어렵고 어색한 것들이 있다. 제사와 명절, 어른들의 생신.

싫다기보다는 ‘어색함’이 가장 크고 약간의 ‘불편함’도 가미된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친정 행사는 행사 전에 이모저모 나의 의견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기도 하고 내가 주도해도 큰 이견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댁 행사의 경우, 나름대로 매우 고심해서 코스를 짜거나 식사 장소 등을 제안해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대부분이다. 아마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이겠지만, 여행 코스나 장소를 짜는 일보다는 주로 식사 메뉴를 정하는 데에서 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 엄마도 밥 챙기는데서는 어디 빠지지 않는 분이신데, 시댁의 경우는 다른 의미로 더하다.

그건 바로 메뉴 선정에 있어서인데, 어떤 날 어떤 메뉴를 먹든 꼭 ‘밥’이 있어야 하는 메뉴일 것. ‘고기’가 있으면 더 좋다.(거의 필수)

이것이 시댁의 유일한 메뉴 선정 기준이다.





(밥은 매일 먹는 것 아닌가…)

꼭 특별한 날까지 밥을 고집해야 하면 메뉴 자체가 특별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때때마다 무얼 먹을지 쉬이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로선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더 더워지기 전 가끔 서늘한 날이 너무 반갑고 좋아 가까운 고궁이나 시내 나들이를 하고 테라스 자리에서 식사도 하고 가볍게 맥주 한 잔도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제안드렸더니 돌아오는 대답.

“밥이 아니잖아.”

이틀 정도 아이가 잠든 후 어디가 좋을까 하며 열심히 밥집이며 이동 코스며 잠깐 들를 카페까지 이용자 리뷰들도 꼼꼼히 읽으며 알아봤는데 그 한마디에 힘이 탁 풀렸다.

허허.

이건 처음부터 내 영역이 아니었던 것 같네.

“자기야, 나름 열심히 알아봤는데 취향부터가 달라서 내가 알아보는 게 의미가 없어 보여. 나보다는 자기가 부모님 취향 잘 아니까 자기가 정해봐.”

고궁을 특히 좋아하는 나는, 얼마 전에도 다녀오면서 너무 좋다면서 아버님 생신에 함께 오면 좋겠다 했더니 남편도 흔쾌히 좋은 생각이라 했었는데, 두 분은 별로 셨나 보다.

조금 서운했지만 취향이 다른 건 존중해야지.

다만 다양한 메뉴를 마다하고 모든 기준이 “밥”인 부분은 매우 아쉽다. 그럴 거면 그냥 이걸로 먹자 하시면 될 텐데 알아보라고 하시곤 그러시니.. 참 난감하다.

곧 만날 날이 다가오는데 이번엔 어떻게 될까?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장소보다는 젊은이들이 많은 곳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남편도 매번 한정식 코스나 고깃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는지 새로운 곳에 가보자고 말씀드려서 만나는 장소. 비록 잠깐의 선선한 날이 지나고 다시 무더워져서 고즈넉한 산책이 아니라 약간의 훈련같이 느껴지더라도 새로운 장소에서 느끼는 낯선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길. 때로는 맨날 먹던 것, 가던 곳이 아니어도 꽤나 괜찮다는 것을 느끼시길. 그래서 일상의 즐거움을 조금 더 함께 공유하게 되길 바라본다.


-그놈의 밥 탈출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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