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기초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학점은행제 학교 활동
고등학교 때 우연히 공연기획연출 전공이 있는 학교의 홍보 리플릿을 보았다. 당시에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때에 이 리플릿에 관심이 갔다. 나는 유치원때부터 중학교까지 매번 장기자랑에 나가 친구들 앞에서 춤을 선보였다. 그래서 그 리플릿에 '공연기획연출'이란 단어는 웬지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하였고, 많은 고민 끝에 입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실 관련된 학교는 많았지만 경기도에 거주한 내가 통학할 수 있는 부분에서 그나마 가까운 학교였다. 학교의 수업 과정은 문화예술분야를 다양하게 배울 수 있기에 나의 마음을 혹하게 했다.
-연극
-콘서트
-뮤지컬
-축제
-전시/컨벤션
-홍보마케팅
-영화미학
-엔터테인먼트
등등등
이와 같은 커리큘럼은 누구나 마음이 갈 것이다. 학교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과제하면서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교수님, 선배님들이 진행하는 행사의 실습으로 참여했었다. '락 페스티벌', '슈퍼스타K', '가수 콘서트'등 문화예술향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학생 신분에서 단순한 안내 업무도 즐기면서 참여했었다.
이외에 온라인으로 강의를 수강해야 했는데, 다소 너무 딱딱하고 교과서적인 강의라 음소거하고 강의듣기하여 넘겼던 것 같다.
내가 특이한 학교라 했던 건, 우리 학교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학교 형태가 아니란걸 알고나서이다. 난 왜 이런걸 조사없이 다녔을까.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던 시기였다. 이때 3학년 1학기 때쯤에 부모님께서 학자금 지원이 어려워져 학자금 대출을 알아봤었다.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학자금 대출이 해당되지 않는 학교였고, 나는 엄청난 이자를 지불하며 (월 이자만 10만 원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며 값았다. 그때 학교를 선택한 것에 대한 불만이 컸고, 일반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어학연수도 없는 시스템 등 알게 모르게 학교에 대한 마음이 멀어져 갔었다. 그리고 휴학을 했다.
편입에 대한 생각이 있었지만, 다시 공부한다거나 어딜 꼭 가야 한다거나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때는 취업에 대한 걱정도 없었지만 그냥 사회에서 정한 멋진 학교들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이런 상태로는 편입이 어렵다 생각하고 다시 복학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역시 재밌긴 재밌었다. 복학생이라는 신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후배들은 열심히 했고, 나도 그 분위기와 복학생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섞여 열심히 듣고 과제했다. 한 학기를 앞두고 학교에 대한 배움은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는 생각, 더 이상 대출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빠르게 졸업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학교 졸업증명서는 받지 못했지만 학점은행제 학교였기 때문에 과목 이수만 한다면 평생교육진흥원에서 학사 학위는 취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4년 1학기를 다니고 나는 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학교는 제적 상태로, 학사 학위는 취득한채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사회에서 최종학력증명서를 요구할 때마다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긴 한다.
당시 학교 생활은 나의 20대 생활을 즐겁게 해 주었고, 다방면의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시기에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사건 몇 개를 풀어 스티브잡스가 말한 'Connecting the dots'를 생각해 본다.
○ 협업의 힘을 알다, 4학년 졸업기획작품 'B급 콘셉트의 축제 기획안 발표'
4학년 졸업작품으로 조별 기획안을 작성하여 진로 관계자 및 선배들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 한 학기 동안 진행하는 수업으로 우리는 이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우리 조는 5명이었다. 매 수업 때마다 회의를 진행하고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는 형태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그런데 나는 열의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했던 동생이 있었다. 일단 회의에 꾸준한 참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기획안을 작성했지만 웬걸, 교수님께서 혹평을 하셨고 우리는 발표를 앞두고 2주 전인가 기획안을 전반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5명은 좀 정신을 바짝 차렸던 것 같다.
나는 당시 기획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서 힘들어했었다. 그런데 회의에 참여를 잘 못했던 동생이 알케이(닉네임)언니와 어느새 쿵작이 맞더니, 축제에 'B급 콘셉트'를 부여하는 의견을 냈다. 으응? 이게 뭐지?! 나라면 이런 형태의 축제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나는 교과서적인 사람이랄까. 좀 뻔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인데, 이 동생은 평소 B급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알케이언니는 동생과 키득키득 웃으면서 "이거 어때?"라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때 이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이들의 의견을 잘 정리하여 얼른 기획안을 끝내고 싶었다. 알케이 언니가 문화예술트렌드 용어인 '스낵컬처'등의 정제된 단어를 사용했고, 콘셉트도 정리해서 내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디어들을 좀 더 탄탄하게 해 줄 근거들을 찾고 논리적인 기획안이 되도록 흐름을 정리하고 디자인을 강화했다. 이때 교수님의 피드백으로 점차 논리성을 가지며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기획안의 형태로 발전되어 나갔다.
발표회 당일, PPT 완성도를 높이느라 발표 연습을 못했었다. 그래서 리허설 때 버벅거리기 일쑤. 그때 부교수님께서 발표하기 전에 간단한 일상 이야기 같은 걸 이야기하고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주셨다. 그래서 옳다거니- 교수님의 말씀을 따라 본격 발표 때는 가볍게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 나중에 내가 발표에 자신감이 붙어 또랑또랑 발표했다는 말을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기획안은 업계 분들과 학우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현장 반응이 좋았고, 끝나고 나서 선배가 다가와 'B급 축제'에 대한 의견을 전해주시기도 하셨다.
이때의 경험은 우리가 흔히 싫어하는 '조별과제'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즉 나는 함께하는 힘의 시너지를 배울 수 있었다. 평소 말이 없었던 동생의 아이디어는 우리 기획안에 주제가 되었고, 학생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업계 관계자들에게 신선함을 주었다. 이때 개별로 장점이 있고, 각자의 아이디어를 합쳐나가는 것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경험을 했었다. 그래서 팀 활동 때 활동이 적은 팀원이 있더라도 참여를 독려하고 의견을 경청하려고 했다.
문화예술업계에서는 협업 활동이 많다. 대학생활의 마침표를 잘 찍었던 이 활동을 통해 협업의 시너지를 실감하였다. 그리고 현업에 와서 주민들과 회의하며 축제를 만들 때 이때의 경험이 연장선이 되어 회의를 즐기면서 할 수 있었고 회의 매개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했다. 최근에는 협업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퍼실리테이션 공부를 하고 있다. 더불어 교수님의 피드백.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점차 기획안이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그 논문과 같은 논리구조를 체감하고 있다.
역시 실습과 연계될 때 공부 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당시 함께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자 노력했던 학우들에게 고맙다.
○ 대학생이라면 도전해 봐야지, '한신영상광고제' 참여
대학생활 때 공모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러다가 복학한 3학년 때 아마 네이버 카페 '아웃캠퍼스'와 같은 곳에서 '광고, 청춘을 힐링하다'는 주제로 대학생 기획서 공모전을 발견했다. 매일 공연, 축제 기획서를 쓰고 있었고 주제가 현재의 나에게 와닿는 내용이라 이건 내 거다 싶었다. 그리고 참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몇몇 학우들과 기획서를 준비했다.
이때 무임승차자가 있어서 이걸 해야 하나 고민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후배 한 명이 나와 끝까지 참여해 주어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제출하였었다. 당시 자료조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했고, 논리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근거자료를 어떻게든 나의 주장에 맞추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 발표 멘트를 정리한 자료를 보니, 도입부에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노래를 불렀고 "공모전, 학점, 아르바이트, 해외여행, 스펙, 취업... 우리는 무수히 많은 고민들을 안고 있습니다."라고 시작하였다. 나는 나의 아르바이트, 연애 생활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하며 발표를 하였고 주변에서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주제는 "말해주세요, 들려주세요."로
1) 강연+공연과 2) 또래 상담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공연은 늘 즐겨 듣던 아티스트들을 배치하고, 또래상담프로그램은 책 <모모>에서 영감을 받아 대학생들의 고민을 해소해 주는 내용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참 괜찮은 기획이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발표를 마치고 다른 팀의 제안을 들었다. 외부는 우리 팀밖에 없었고, 한신대 학생 2팀 그리고 한 팀은 기권했었다. 한신대학교 학생들은 PPT 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히 높았다. 우린 정말 그냥 일단 내보기나 하자는 맘으로 어렵게 내었는데, 이들은 완성도가 좋았다. 카피나 아이디어들도 신선한 부분들이 있었다. 이때 지방대학교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너무 똑똑하고, 열정적인 학생들의 기획안과 발표에 우리의 기획안이 부끄럽기도 했고 반성하기도 했다. 그래서 수상은 기대도 안 했었다.
그런데 웬걸, 장려상을 주셨다. 먼 곳에서 온 외부학교 팀이기도 하고 한 팀만 안 주자니, 대회를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하기 위해 그렇게 선택하신 것 같았다. 얼떨결에 받은 첫 공모전 수상이었지만 기분은 좋았었다. 기획안이 논리성이 떨 떨어지고 디자인도 제대로 못하고 제출했는데.. 포기할까 생각 많이 했지만 '그냥' 어떻게든 냈다. 당시 강교수님께서 PPT 수정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화로 주셨을 때, 기대하시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좀 웃기지만, '자신 없더라도, 망할 것 같더라도 하기로 한 건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이 생겼다. 그리고 그때 기획안을 들여다보면 꽤 맞는 근거들과 좋은 아이디어들이었음을, 기획한 것이 꽤 괜찮았음을 30대가 된 지금의 관점에서 칭찬하게 된다.
○ 뮤지컬 수업인데, 인생 10년 PLAN
뮤지컬 시간 초반에 교수님께서 10년 PLAN 과제를 내주셨다. 그때가 21세로 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뮤지컬 기획 과정을 알려주셨는데, 이와 연계된 과제로 우리의 인생 10년 계획을 예산과 함께 세워오라고 하셨다. 이 흥미로운 과제는 무엇이란 가! 예산은 막막했지만 생각하고 설계해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자격증 취득, 대학원 비용 등 할 수 있는 선에서 예산을 적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썼었다.
이때 내가 가진 자원을 파악하고 SWOT분석을 한 후, SMART 기법으로 계획을 세워야 된다고 하셨다.
- SWOT 분석
Strength(강점), Weakness(약점), Opportunity(기회), Threat(위협)을 알고 이에 따른 전략을 세우는 것
- SMART 기법
Specific(구체적), Measurable(측정가능한), Achievable(달성 가능한), Relevant(관련된), Time-Specific(목표달성시기)
나는 이때 세웠던 계획 덕분인지, 우연인지 어쨌든 생각과 행동은 그 방향을 향해 있었던 것 같다. 희망하던 회사에 계약직으로 근무해 봤고, 영어회화를 잘하고 싶어 1년 동안 영어학원 다니면서 원 없이 공부도 해서 축제 때 외국인에게 안내하면서 잘한다는 소리도 들어서 뿌듯했었다. 또, 문화예술교육을 일을 통해 알아가면서 소외계층을 위한 행사를 한다는 계획들도 어찌 됐든 했었다. 그때 적어두었던 것중에 예술경영대학원 석사 학위는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여 보류하였다. 그 외 이루지 못한 건 결혼, 화술실력 늘리기, 북한학 공부하기와 같은 것들이 있다.
지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생각하는 대로 산다'를 실현은 해오고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문화예술 일을 계속 하고 있고, 내 나름의 이 분야에 대한 가치판단, 의견 제안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교수님과는 오랫동안 수업을 하진 않았지만, 이러한 과제를 20대 막 시작한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고 미래를 그려봐 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 과제는 내가 롤모델로 추후에 삼았던 작가 김수영님의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에 나온 '꿈의 목록'과 유사한 형태였다. 나중에 좀 더 구체적으로 나만의 꿈의 목록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요즘 잊고 지냈다. 다시한번 들여다 봐야지. 역시나 자기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건 중요하다. 더 자주 들여다보고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면 좋았을 걸! 20때에는 현실에 치여 살기 바뻤어~~~~~ㅎㅎ
한편, 내가 문화예술분야 일의 가치를 느끼며,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한 수업을 통해서 얻는다. 과목명은 생각나지 않지만, 교수님께서 '나라에서 문화예술로 소외계층들이 즐겁게 살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다는 것. 그게 서울문화재단의 사업이었다. 평소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런 사례를 들으니 내가 갈 길이 보였었다.
나의 특이한 학교는 사회적 위치에서는 컴플렉스였지만, 나에게는 문화예술의 다양한 모습을 알려주고 관련 경험을 해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 중간에 그만둘까 고민도 있었지만 잘 마무리했고 덕분에 관련 길을 걸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