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체면, 이런 거 사실 다 없어진다.
엄마라는 역할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나. 그런데 학교에 들어와 보니 천지가 엄마다. 나 같은 엄마들. 그저 내 새끼가 밑 보일까. 문제 생길까. 학교에서 혹여 잘 못 챙겨줘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순간순간 이 모든 아이들 등뒤에 버티고 있는 엄마들이 보인다. 내가 긴장이 되는 건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지 못할까 봐> 긴장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엄마가 나의 모습에 책을 잡을까 봐. 혹은 그 엄마가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할까 봐. 돌봄 교실 운영이 맘에 들지 않을까 봐> 등 그저 나의 안위를 위한 걱정과 긴장이었다. 한마디로 늘 눈치가 보였다. 학교 안팎의 모든 부모들에게.
학교의 주요 행사가 생기면 안팎으로 분주하다. 그저 엄마는 그 소식을 들으면 챙기느라 바쁘다. 준비물부터 이 아이가 행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팀워크는 괜찮은지, 선생님의 개입이 어느 정도인지. 그러면 엄마인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기부하는 행사를 크게 여는 학교. 중등과 고등이 각 학년마다 부스를 열어 음식을 만든다. 각 교실에서. 그런데 이미 시작부터 이상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전체 컨트롤을 하시는 선생님이 계시고, 각 부스 담당 선생님들이 계실 텐데... 이건 뭐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일절 나서지 않으니.. 아이들도 멘붕이 오나 보다. 담당선생님께 여쭤봐야 할 내용들을 나에게 물어본다. 이유는 내가 더 잘 알 것 같아서. 직업활동으로 떡볶이를 2년간 만들었으니, 그래 나만큼 전문가도 없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담당선생님과 얘기할 노릇이건만.. 식기도구가 다 있는 이 직업활동 교실을 빌리고, 학년마다 도구를 갖다 쓰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거기까지 괜찮은데, 엄마들도 한몫한다. 고등조차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데, 요리를 대용량으로 해보지 않는 선생님들이 무얼 알아 가르쳐 주며, 가정의 학부모들도 난감할 따름이다. 조용히 옆자리 선생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한테 물어보신다.
교내 교직원 겸 학부모 말.
<5kg 떡이면 몇 인분 정도 나오는 거예요?>
<내가 분말가루를 로켓와우로 시켰는데.. 이게 로켓배송으로 바뀌었어. 혹시 선생님 분말가루를 먼저 갖다 쓰고 다음에 갖다 줘도 될까?>
떡볶이를 직업활동 가게 안에서 하겠다며 묻는 초6.
<선생님, 50인분 떡볶이는 떡이 몇 kg가 필요해요?>
<가게 안에 한번 들어가 봐도 돼요? 만약에 콜팝이랑 이런 거 하려면 이거 써도 돼요?>
행사 시 필요한 음식을 미리 만들어보겠다는 고등학생.
<선생님 부스 때문에 그러는데.. 이것 좀 가져다 쓰고 돌려드려도 돼요?>
마지막 라스트는 학부모.
<내일 그 가게에서 아이가 뭘 만든다는데.. 걱정이 되어서요. 불을 사용하는데... 한번 가봐 주시겠어요?>
참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인맥 총동원을 하여 자기들도 나름 지금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나 보다. 이런 아이와 학부모, 선생님을 몇 명을 만나고 있는 건지.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호구>란 이런 것을 얘기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주 내가 편하다 못해 아랫사람이다. 학교의 맨 아랫사람. (꼬인 마음 맞다.)
엄마라서 뭐든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영 불편하다. 선생님이라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겠지만 그것도 불편했다.(해결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물어보는지 한편 이해도 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걔네도 그냥 나를 호구로 봤나. 싶기도 했다)
참. 어른이나 애나 문제가 발등에 떨어지니 어쩔 수 없어 보였다. 급한 것이다. 문제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직업활동 가게를 내 것이라는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며 이런 꼰대 같은 마음을 갖는 게 아니었다. 관리의 개념으로 나는 지켜왔는데.. 자꾸 선을 넘더니 물건이 관리가 되지 않자 열이 받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호구로 보나 싶을 정도로.
초6의 질문을 시작으로 고등학생, 교직원, 학부모까지...
이게 이렇게 할 일인가. 회의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학부모는 내가 끊어냈어야 했는데,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인척 하며 네네 거렸다. 그러면 담당선생님은 뭐가 되냐. 하.
참 나도 <지켜야 할 선> 이 어렵다. 그런데 말이다. 걱정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무엇이든지 가한 것은 아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질문이 있으면 선생님께 하고, 준비가 안되면 선생님께 혼나야 하는 거고, 나서지 않는 선생님이라면 그 또한 맞춰야 할 것인데.. 아이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고, 학교의 처사가 너무했다고, 모든 걸 완벽하게 세팅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너무 헛되지 않은가?
아이는 도대체 무얼 보고 배울까?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그렇게 규모가 큰 행사를 하면서도 모두가 헤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고민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어른인 나조차도 쉬운 길을 늘 택하다 보니, 아이들도 보고 배우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떤 교육을 바랐을까? 참... 거창한 목표와 달리 우리의 모습은 너무 비루하다. 나에게 아이부터 어른까지 동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참 신기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은 모두들 동일하고, 쉽게 손 뻗어 해결하려는 마음도 동일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우리 모두 <나> 중심의 이기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행사의 본질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현재 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중요한 건 뒷전으로 무르고, 당장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아마 다들 괜찮은 척 하지만, 모두가 괜찮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할 수 있다. 그들의 모든 질문은 걱정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사람들은 사실 본질이 아니라 현상의 일어나는 일처리를 하는데만 급급했다. 이건 단연코 행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교육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