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_요즘 세상에 스승이 말이 되냐(25.5.15)
징글징글하다.
부모는 내 자식이 기죽을까 봐 죽을 때까지 용쓰는 사람이다. 자식을 키워보니 그렇다. 돈이 줄줄 새나가도 지금 당장 내 자식의 기를 못 펴주면 부모 어깨가 쳐진다. 이유는 한 가지 이 험한 세상에서 기죽지 말고 살길 바라는 부모 마음이다. 과거 대대로 그 가짜 자존심 세워주느라 우리는 대대로 고생을 사서 했다. 그런데 말이다. 대안학교에 들어와 보니, 천지에 다 똑같은 부모이다. 그것도 과거 대대로의 그 부모가 여기에 있다.
내 자식 혼자 남을까 걱정되어. 내 자식이 밑 보일까 걱정되어. 내 자식이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할까 걱정되어. 내 자식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까 걱정되어. 내 자식이 기죽을까 걱정되어.
<내 자식>
적어도 내 눈에는 엄마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그래 보였다. 내 자식 외에는 별로 남의 자식에는 관심이 없다. 실제로 가족도 그렇다. 심지어 부부로 살아도 시댁만 가도, 친정만 가도 나는 그런 걸 느낀다. 양가는 서로 자기 자식 챙기기 바쁘다.
<자식이니까 예쁘다?>
아니. 난 그렇지 않았다. 미웠다. 솔직히 모성애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 대놓고 말은 못 했지만, 왜 나는 사라지고 엄마로만 존재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납득이 안되니 그냥 버틸 뿐. 즐겁고 행복한 순간보다 스스로 버텨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걸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당연시 여기는 문화는 오히려 더 말을 아껴야 했다.(괜히 말을 꺼냈다가 별 듣고 싶지도 않는 얘길 듣는다) 고군분투는 아이가 큰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란 곳이 생각보다 권위적이고 생각보다 위계질서가 뚜렷하다. 게다가 학교에서 사회를 배운다는데, 이게 사회면 <아이들은 절망을 빨리 배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그 정도로 학교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아이는 엄청난 고군분투 중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인 내 태도가 굉장히 더 중요해지는데, 엄마가 여기서 학교 욕을 하는 순간 아이는 학교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이미 몇 차례 나는 잘못했다) 아이의 생각과 엄마의 생각이 다름에도 <엄마의 실수는 어른인 내가 바른 판단이 가능하다>고 믿는 자만이다. 이때부터 잔소리가 발사된다. 그런데 사실은 아이도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생각보다 아이는 자신의 세계 속의 사람들을 중요시 여긴다.> 학교의 담임선생님, 교과 선생님, 친구. 아빠, 할머니, 동생, 친척들. 이 사람들을 자신의 세계의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므로, 굉장히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관심과 집중이 많은 편인데, 엄마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아도 뉘앙스로도 부정적이면 아이도 눈치챈다.
그래서 말조심. 행동 조심. 인 것이다.
하. 그런데 학교가 사회이다. 이 말이 참 무섭다. 이게 사회면 빨리 절망을 배우겠구나를 생각한 나도 극성이다. 우리나라의 체면 문화, 책임지고 싶지 않아 하는 요즘 시대 문화적 특성, 뚜렷한 위계질서, 집단적인 특성을 보이는 또래문화, 평가와 경쟁 구조 등 정말 아이들이 외로움, 절망을 느낄 요소가 너무 많다.
교직원 중 한 분이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랬다.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곳이 학교><그러니 적당히 해라> <주변 봐가면서 적당히> 미인가 대안학교를 와보니 <말은 공동체공동체> 하는데, 참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러면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으니까 대충 하랴? 내 성격상 그러지도 못한다. 그냥 열심히 한다.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되면 되는 대로. 열심히 하면 떠날 때 후회는 없다. 그런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국 양심이 안다. 착하진 않지만 월급값, 밥값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하. 그런데 오늘 일이 터졌다. 옆의 선생님이 문제다. 어제도 욕먹을까 봐 미리 품의 올려놓고 갔다. 그런데 나한테 계속 눈치를 준다. 가만 보니 이 분은 내가 행정실에 일하지 않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일을 달라고 했을 땐 그것도 자기가 결정 못한다 그러지. 리더 선생님들끼리 날 두고 능력 평가한 얘기(대략 아무것도 못한다_ 있는 사실 그대로를 옆선생님이 말씀하셨을 거다)를 다하지. 나보고 당신이 여기서 뭘 할 수 있겠냐. 계속 그러지. 리더가 판단해서 일을 줘야 하므로 일을 줄 수도 없는 입장(옆 선생님)과 뭘 할 수도 없는 입장(나)이다.
그런 와중에 학교행사가 있었고, 스승의 날 행사로 모두 바빴다.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 상황에 모두가 삐걱거리고 열받는 옆 선생님은 나한테 화풀이한 꼴이었다.(리더들은 여기를 우습게 안다. 너는 일도 못하는데 눈치도 없다. 행사땐 다들 예민해지니까 조용히 다녀라. 누군들 스승의 날 축하 안 받고 싶겠냐. 너는 행사에 미친 것 같다.) 별소리를 다 들었다. 이런 욕을 다 듣고 있으면 현타가 온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무시, 비하, 비난, 멸시, 천대... 그런데 내가 잘 참는 이유는 단련된 것도 있다. (그리고 한편 직장생활을 해보니 전부 다 잇속이 있어서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것 같아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계산 없이 그냥 다니는 사람이 없으므로 내가 그렇게 죄책감을 느낄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참. 학교는 사회의 첫 발판이란다. 참 사회는 생각보다 냉정하고, 잔인하고, 계산적이다. 나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싶지 않아도 내가 널 생각한다는 이유로 알려주는 끔찍한 곳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만 하지 않아도 삶은 대체로 평탄하다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내가 아이에게 무언가 좋은 걸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오판이었다. 그저 나는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생각과 행동을 삼가기만 해도 괜찮은 것이다. 적어도 부모는 그래야 한다.
직원으로서 나의 태도와 행동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잔인했지만 다시 한번 그 말을 되새겨 나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무얼 원하시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만, 다시 한번 열심을 내되 내가 업그레이드되고, 주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오늘까지만. 생각정리 하고. 내일 또 출근이다.
미쳐버릴것 같은 5월 홧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