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휴가를 내고 대학동기 결혼식을 못가서 축의금을 주려고 만나러 간다. 관계라는 게 쌍방이고, 얘는 나를 어찌 생각할란지 모르지만, 나는 얘가 20대 시절 참 마음을 편히 나눌 수 있었던 친구였다. 폭이 넓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대학 찐친정도였다고 난 생각한다.
3월에 결혼해야 했을 친구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식이 미뤄졌다. 연락이 오겠거니 했더만 당최 연락이 없다. 그래서 먼저 연락했다. 낄낄거리며 전화받더니 결혼했단다. 그런데 화가 안났다. 애엄마에 시엄마까지 있는 내가 당연히 못올거라 생각했단다. 그동안 늘 가족때문에 친구를 여유롭게 못 만났으니 그 애 생각이 당연하다.
난 또 가족에게 직장에 휴가 냈단 말을 안하고 5시 30분에 나왔다. 오전 내내 카페에 앉아 책을 봤다. 책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지하철 역에 몸을 실으며 혼자 생각하기를, 갑자기 나는 왜 ~다움에 늘 속고 살까? 생각이 든다. 엄마다움, 뭐 여자다움, 심지어 크리스천 다움. 온갖 ~다움을 생각하며 옷도 고르고 행동거지도 바르게 하고, 혼자 턱하니 숨이 꽉 막힌다. 이 생각의 끝은 당연히 아이에게까지 향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아이다움을 강요했나?
어머님의 대화 속에서도 똑똑한 아이를 얘기하실때마다 그 아이를 부정하며 아이답지 않아서 싫다는 내색을 했다. 어이가 없다. 이제 생각해보니.
<~ 다움>이라는 것이 나에게만 적용되고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면 좋겠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걸로 발전된 것이 없다. 오히려 반항심만 생기고 내가 나를 자꾸 멈칫거리게 만든다. <~다움이 중요하지 않구나>를 그제야 깨닫는다. 참 어리석게 살았다. 그냥 살면 될것을.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버려서 뭉탱이 속에 나를 가두고 나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른채 그냥 살았다. 그냥 사는 것도 쉽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나쁘지 않지만, 만족감을 얻기는 어렵다. 이런 생각이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살았는지를 알게 해줘서 고맙다.
~답게 살지 말아야겠다. 너무 힘들때 그냥 쉬고 나는 내 갈길 간다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친구는 결혼식을 잘 치뤘고. 이제 1달정도 된 신부의 얼굴은 해맑았다. 다행이다. 행복해보여서. 야무지게 잘 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