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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Mar 04. 2018

나를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공감과 성찰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힘든 점을 꼽자면단연 작가와 화자의 분리다


글을 쓰는 사람과 글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 둘은 엄연히 다른 세계에 산다. 작가는 소설 바깥쪽에, 화자는 소설 안을 살아간다. 놀랍게도 이런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왜 그럴까? 소설을 쓰기 전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신'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내가 만들고, 내 뜻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다. 작가는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환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작가가 ‘지구’라는 별을 만들었다고 하자. 작가는 ‘지구’에 실재하면 안 되고, 늘 바깥쪽에 있어야 한다. ‘지구’를 살아가는 것은 작가가 만든 세계 속 캐릭터다. 작가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답답하게 행동해도 끼어들면 안 된다. 스스로가 알아서 고난을 극복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게끔 놔두어야 한다. 외부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내부로 개입하는 순간, 질서와 규칙이 깨지고 혼란을 초래한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어려움


어려운 일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 그리고 소설 속 캐릭터가 돼야 하는 사람이 전부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쓰는 이야기 속에 11개의 캐릭터가 존재한다면, 작가는 글을 쓰는 자신을 포함하여 12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수십 개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캐릭터의 입장에서 그 삶과 환경을 이해하려 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이 만들었을지언정, 캐릭터는 결국 타인이다. 타인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내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순간, 캐릭터는 단편적으로 변하고 이야기는 흥미를 잃는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와 캐릭터가 살아가는 세계를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그 사람의 입으로 말해야 한다. 이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을 내보이면 안 된다. 나를 잠시 접어두고. 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질문해야 한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왜 그럴까? 이 사람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무엇이 이 사람을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지?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큰 거지?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말을 하게끔 놔둔 사람들은 누구지? 이 사람이 지금의 이 사람이 되게끔 만든 과거의 사건은 무엇이지? 등등. 질문은 끝없이 쏟아진다. 단편적인 해답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다. 현재의 상황은 작은 일부일 뿐이다.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근본적인 뿌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물론 질문의 답은 내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다. 캐릭터에 이입한 자기 자신이다. 완전히 몰입해있는 특정한 상황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캐릭터가 자신의 삶을 살게 해 주는 작가의 의무자 역할이다.


이쯤에서 걱정이 하나 생긴다. 이렇게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나 자신은 사라지는 게 아닐까? 오히려 그 반대다. 캐릭터에게 몰입할수록 신기한 현상이 생기는데, 바로 자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수많은 타인에 대해 질문하고, 그 탄생 배경을 연구하다 보니 그 눈이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런 질문을 하고 답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비판할 수 있게 된다. 타인에 대해 생각할수록 자기 객관화가 더 쉬워진다. 





자기 객관화와 자기비판의 중요성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 객관화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희소함을 느꼈다. 타인의 단점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신도 똑같은 점을 가지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남의 단점을 캐치하기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사실, 남을 비난하던 부분을 나 자신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충격적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회피하고만 싶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그렇다고 우리의 삶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다는 점이다. 인간의 성향은 절대 단편적이지 않다.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융합 작용의 합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대해 단적으로 정의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서 자기비판이 더 중요하다. 나 자신을 쪼개고 나누면 분명 도려내야 하는 부분, 바꿔야 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큰 노력이라 생각한다. 단점이든 장점이든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중요하다. 알아야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장은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어느 때보다 성찰과 공감이 필요한 요즘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시대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들은 더 이상 숨겨지지 않고,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야 ‘그때는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겹게 목소리를 낸 사람들에게 “그때는 왜 가만히 있다가 이제 이야기하느냐?”라고 질타하는 말을 접할 때마다 암담하다. 절대적인 공감능력의 실패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과거에는 진리라 여겨졌던 일들은 더 이상 옳지 않다. 사회 구성원들은 아는 것이 많아졌고, 더 이상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기감과 의아함을 느낀다면, 그때부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혹시나 방관하지 않았는지, 남의 일이라 치부하고 무시하지 않았는지. 괴롭겠지만 자신에 대해 먼지 비판하고 질문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붉어진 모든 문제들은 어쩌면 아직 내게 오지 않았을 뿐, 언제든지 내 일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내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느끼는 아찔함과 두려움, 분노,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공감과 성찰은 모두 내 안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귀찮다고, 또는 어렵다고 회피하지 말고 자주, 또 꼼꼼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봐주길 바란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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