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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Mar 04. 2018

오늘 하루를 '일구는' 사람들 <리틀 포레스트>


우리가 오늘 일군 것은 무엇인가요?
[일구다.] 동사(V)
1. 논밭을 만들기 위하여 땅을 파서 일으키다.   예) 농토를 일구다 / 화전을 일구다.
2. 두더지 따위가 땅을 쑤시어 흙이 솟게 하다.  예) 저것은 두더지가 땅을 일군 흔적입니다.
3. 현상이나 일 따위를 일으키다.


'일구다'의 사전적 정의는 3가지다. 공통적으로 '일으키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땅을 일으키고, 흙을 일으키고, 현상을 일으킨다. 물질적으로는 흙과 관련 있고, 개념적으로는 현상과 관련 있다. 나는 여기서 '일구다'라는 말의 생명력에 관심이 생겼다. 흙을 일군다는 것은, 씨앗을 심기 위한 준비다. 싹을 심고, 작물을 기르고, 마지막에는 일용한 양식으로 활용한다. 즉, 맛있게 먹는다. 아주 작은 씨앗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고향으로 내려와 밭을 일구는 혜원(김태리)



현상에서의 '일구다'는 새로운 일을 발현시켰다는 의미다. 아주 새로운 일을 만들 수도 있고, 현재의 일을 변주할 수도 있다. 전제는, 현재의 문제점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 점이 부정적이라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진전했을 수도 있다. 긍정적이라면 더 확장시켜서 발전할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든, '일구다'를 실현하는 사람이라면 현재의 상황에서 한 발짝 벗어났거나, 벗어나려고 노력 중일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더 이상은 현재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떠남에서 시작한다.



밭을 일구며 새로운 삶을 일구는 모습을 응원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험을 준비하던 혜원.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로 살아가고, 먹는 것은 부실하고. 혜원(김태리)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밭을 일구고, 작물을 심는다. 혜원은 고향에서 4계절을 보내면서 스스로 키운 농작물로 밥을 해 먹는다. 어찌 보면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참으로 소소하다. 그런데 그런 소소함이 좋다. 변화는 사소함에서 오기 때문이다. 밭을 일구고, 새로운 삶을 일구는 혜원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나아가 응원을 하게 된다. 현재의 삶을 떠나는 것, 벗어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놓지 못하는 현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혜원이 떠나서 스스로 밭을 일구고 요리를 하는 모든 일들은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그 모습이다.



도피로 시작해도 괜찮아, 도망이었어도 괜찮아.


어쩌면 도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혜원은 고향으로 도망쳤을 수도 있다. 현실이 지치고 힘드니까,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하여.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혜원은 자신의 삶을 마주한다. 현재의 문제, 현실, 과거로부터 이어온 트라우마까지 모두 다. 혜원의 태도는 점점 변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직접 밭을 일구고, 음식을 하면서 느낀 점을 자신의 삶에도 적용한다. 도망으로 시작했을지라도, 결국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주인인 삶에 대하여.



오늘 하루를 일구는 희망, 또는 이유



밭을 일군다는 것, 그리고 삶을 일군다는 것.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 일군다. 무언가의 터전이 되어 살아간다. 비록 아직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넓고 큰, 밭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과 가능성으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일구는 게 아닐까.




그리고 더, 이 영화를 보면 좋을 이유 & 다량의 스포일러


- '김태리'라는 배우에 대한 매력에 완전히 빠지게 될 것이다. 이 배우를 몰랐던 사람은 팬이 될 것이고, 팬이었던 사람은 회전문을 돌 차례다.

- 아름다운 사람이 2시간 동안 밭을 일구고, 먹방을 하는데 - 그것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 일본판 영화를 본 친구는, 한국판이 훨씬 좋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재의 시대성과 한국적인 감성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것 같다.

- 영상미가 아름답다. 여러모로 아름다운 영화다. 4계절의 변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 멜로가 없다.

- 배우들의 합이 좋다. 진기주는 '미스티'에 나오는 걔?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 코믹한 대사들이 많고, 잘 살렸다. 보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는데, 가끔 신나게 웃기는 부분도 나온다.

- 시사회로 봤지만, 다시 또 볼 의향 1000%. 평온하고, 아름답고, 재미있다.



리틀포레스트. 2018.02.28개봉. 임순례 감독 / 김태리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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