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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Mar 15. 2018

각자의 위로

여기저기서 품어온 각자의 위로들로 위태로워진 나의 하루를 다독인다.

“저는 요즘 분노와 환멸로 가득 차있어요.”


저녁을 먹으러 가던 길에 조금 침울한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나보다 8살이 어린 친구는 “왜요, 왜. 누가 그랬어요.”하고 받아쳤고, 나는 그 말이 재미있어서 “저기요, 저기.” 하면서 투정 부리듯 어딘가를 가리켰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친구의 말에는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친구는 처음 사귄 거라서 내가 겪은 감정이나 상황을 말해도 되는지 고민이 됐다. 솔직히 말하면 어른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혹시나 남의 험담이나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됐다. 그 짧은 순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걸 보면, 언제쯤 학습된 틀을 깰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데,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어물거렸다.  


“왜 울려고 그래요.”


작게 흘리던 친구의 말에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울컥하는 내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운다’는 말에 주술적 힘이라도 있는 건가. 마음까지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제발 눈물은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괜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럼 친구로 들어주세요.”

“친구로 들어줄게요." 


해가 지는 어두운 길거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식당에 들어가서도 이어졌다. 조용하지만 어수선했던 식당 안, 자주 열렸다가 닫히던 미닫이 문, 누군가 앉거나 일어서는 인기척을 느끼며 쏟아내들 말을 꺼냈다. 어떤 말은 투정이었고, 어떤 말은 하소연에 가까웠다. 횡설수설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나의 어린 친구는 최선을 다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을 해주었다. 오래 묵은 다른 친구들처럼 절대적으로 내 편을 들거나, ‘더 피 보기 전에 빨리 도망쳐’라고 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포용은 아니었고, 더 큰 고민의 시작점을 끌어오기도 했다. 포기하고 도망치려던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아, 이게 20대의 패기인가. 친구의 말을 들으며 씁쓸함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친구가 한 모든 말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힘 있게 말하던 목소리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 중심이 꽉 차 있는 사람. 나는 친구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이미 도망칠 생각을 하고 말한 거라 대안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마음이 좋았다. 


식당을 나올 때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눈가를 달구던 뜨거운 느낌도 사라졌다. 그 친구와 함께 있던 순간,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씩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날씨가 좋다는 사실을 맘껏 느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시간을 함께 해준 친구에게 감사했다.

 





타인으로부터 전달받는 위로의 모양은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아무 말 없이 옆에만 있고, 어떤 이는 쉴 새 없이 말하며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는 맛있는 밥을 사주고, 또 다른 친구는 대신 욕을 해준다.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옆에 있는 사람이 위로를 건넨다. 괜찮으니까 조금 덜 아프라고, 조금 덜 힘들어하라고. 그 마음이 고마워서라도, 여기저기서 품어온 각자의 위로들로 위태로워진 나의 하루를 다독여본다. 이제 정말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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