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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Apr 08. 2018

당신도 누군가의 손님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짧은 순간, 말 한마디에 최고와 최악이 결정된다.


"지난주 목요일에 차장님이 예약해서 같이 갔었는데 괜찮더라고. 요즘 핫플이래."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주말 오전. 친구들과 익선동에서 만났다. 우리는 H가 말한 태국 음식점 S로 갔다. 야자수와 작은 분수도 있어서 SNS에서 인기가 많다고 했다. 대기를 오래 해야 한다는 말에 머뭇거렸지만, 궁금하니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역시나, 오픈 시간에 맞춰 가게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번호만 40번을 넘어갔다.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에 두 줄로 서있어서 그 사이를 지나다니기도 힘들었다. 가게로 들어가는 투명한 유리문을 경계로 세계가 나뉜 느낌이었다.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    


대기번호를 적고 근처 한옥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플레와 동백꽃 커피를 마시다가 1시간 반쯤 지나고 다시 태국 음식점으로 갔다. 그때도 우리 앞에 4팀 정도 남았고, 대기번호는 여전히 40번 대였다. 20분쯤 더 기다리자 대기 명단 1번이 됐다. 그런데 계속 자리가 안 났다. 잠시 후, 직원이 곤란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왔다. 


"지금 2인 석만 5개가 남았는데 테이블이 다 떨어져 있어서요. 따로 앉으시겠어요?" 

"테이블 두 개 못 붙이나요?"

"네, 그리고 사장님이 주말에는 테이블 재배치를 못하게 하셔서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지금 4인석 테이블이 계속 안 나거든요. 뒤에 분들도 다 같이 기다리셔야 해요." 


직원이 말했다. 어떻게 하지? 우리는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점심 마감까지 20분가량 남았다. 우리가 계속 4인 테이블을 기다린다면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못 들어갈 수도 있었다. 나와 친구들이 어떻게 할지 의견을 나누다가 ‘이러다 계속 못 들어가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짜증 난 말투에 괜히 조급해졌다. 우리의 선택에 뒷사람들의 운명이 걸린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했지만, 기다린 시간도 아깝고 지금 이 시간은 어디든 만석이라 갈 수 있는데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따로 앉겠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우릴 곤란하게 만들었잖아. 


자리에 앉았지만 모두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직원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당신들이 포기하면 뒤에 다섯 테이블 더 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 할래요?’라고 우리에게 모든 부담을 떠 안겼다. 문제가 생겼으니 자리를 만들어줄 방법을 제안해주기 대신에 마치 ‘우리가 원하는 자리를 얻을 때까지 기다린다면 뒷사람들은 못 들어간다. 나머지 사람들이 밥을 못 먹는다면 너희 탓이다.’는 개인의 문제로 방향을 틀었다. 시스템의 비효율적인 운영에 대한 책임을 고객에게 전가한 것이다. 


이런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자리를 안 된다고만 한한걸까? 상황에 맞게 룰을 바꿀 생각은 왜 못한 걸까? 사람들이 매일 몰려들었으니, 가게 입장에서는 굳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불편함마저 하나의 허들로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기다렸을 테니까. 진짜, 이럴 불편함과 불쾌함을 감수할 정도로 오고 싶은 곳이야? 꿍얼거리며 물이나 마셨다. 불평불만 하기엔, 나도 이미 '그런 곳'이 궁금하다며 온 사람이니까. 

 



우리가 앉은 테이블 사이에는 기둥이 있었다. 그 사이에 달려있는 흰 천을 걷으니까 얼굴은 볼 수 있었다. 일단은 이렇게라도 같이 먹는 기분은 내자, 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앉은 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옆에 있던 4인용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어났다.  


"우리 저 자리로 옮겨달라고 하자."


D가 테이블을 치우는 직원에게 걸어갔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남자였다.


"저희 자리 좀"

"이거 다 치우고 옮겨드릴게요. 예? "


D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남자가 D를 내려다보며 윽박질렀기 때문이다. 화를 억누르며 윽박지르던 직원은 공포스러웠다. D는 당황했는지 우리가 앉은자리로 돌아왔다. 나와 H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손님을 위협하는 직원이라니, 그것도 내 친구에게. 만약 D가 그보다 덩치가 큰 남자였어도 이렇게 대했을까? 


주말, 점심시간. 이렇게 복작거리는 가게에서 일하면 정신이 없을 것이다. 잠깐 쉴 시간도 없이 손님들이 몰려오고, 누군가는 왜 자기 명단에서 지워졌냐며 항의했을 것이고, 접시도 깨졌을 테고, 테이블은 이상하게 나가고. 그런데 왜 그 감정을 왜 타인에게 배출하는 것인가?      


그의 태도는 종업원과 고객의 관계가 아니었다. 힘의 우위에 있는 자가 약자에게 대하는 지배자적 자세였다. 하지만 우리는 겁먹은 손님이었고, 가만히 눈치만 봤다. 그냥 나가고 싶었지만, 기다린 시간도 아깝고 배도 고파서 그냥 조용히 있다가 나가자는 무언의 합의였다. 음식은 그저 그랬다. 누가 간다고 하면 말릴 곳이 하나 생겼다.      




가게를 나와서 카페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제야 분노를 터트렸다. 나는 아까 직원에게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이 한마디를 못한 게 너무나 화가 났다. 잘못한 점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비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H는 “뭐 그런 데 감정을 소비해. 그냥 다시는 안 오면 되는 거니까 넘겨.”라고 말했다.  


맛집이라는 이유로 방문자가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당연한 게 아니다. 손님들은 불편함을 겪으면서까지 이곳을 재방문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한다. 대체재를 찾는 순간 매력도는 떨어진다. 오늘처럼 최악의 서비스를 경험하면 다시는 가지 않을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음식점과 맛집은 계속 생겨나니까. 앞으로도 익선동 태국 식당 S의 대기명단이 길지 모르겠지만, 일단 미래의 손님 3명은 잃었다.    

 

가장 좋은 서비스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관계로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관계는 상대적이며 서로의 위치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관계로 다시 만날 지 모르기 때문에, 감정선에 휘둘리기 보다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행과 행동을 사용해야한다. 마주하는 그 짧은 순간, 어쩌다 내뱉은 말 한마디에 최고와 최악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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