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마주본다는 것

독립심에 관하여

by 우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이 녀석이 먼저 그랬는데 왜 나한테...?'라는 생각을 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억울함은 어쩌면 본능적인 감정일지 모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평함과 형평성을 가르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간다. 어떤 아이는 규칙을 거스르며 자유를 배우고, 또 다른 아이는 그로 인해 억울함을 통해 불공정함을 체험한다. 본능적인 감정은 결국,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낸다. 나의 긴 이야기는 이런 아주 작은, 시시콜콜한 어린 시절의 장난 같은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독립심이 강한 아이였다. 독립심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살아가려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릴 적의 나는 독립심이라는 녀석을 이렇게 생각했다. '남에게 의지하고 싶어도 참는 마음' 그래, 나는 이른 시기에 참는 법을 똑똑히 배웠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는 비수들이 몇 개가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첫 번째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 TV를 가까이하던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맨 뒷자리의 조용한 학생이었고, 어릴 때는 시력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금방 떨어지는지 안경을 껴도 시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져서 날이 갈수록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때가 안경을 교체해야 하는 시기였던 것일 테지.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는 글자들이 점점 흐릿해질 무렵, 우리는 알림장이라는 것을 썼다. 요즘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께 전달할 내용들을 메모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이를테면 챙겨와야 할 준비물을 적거나 가정통신문에 대한 전달 사항 등을 적는 것이다. 나는 내향적인 아이였다. 선생님께서 불러주시는 알림장 내용들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다시 물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빼먹고 알림장을 써서 집에 가져가곤 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발생하니 집에서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그날따라 언성을 높이며 나를 질책했다.

"너는 이런 것도 하나 전달 못 해?"

"손 들어서 선생님께 다시 알려달라고 물어보거나 옆에 친구에게 알려달라고 해!"

"애가 왜이렇게 전달을 못 하는 거야." 하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 당시의 나는 한심하다는 말의 존재를 몰랐다만.)


그 이후로 나는 알림장 쓰는 시간이 무서워졌다. 그저 두려웠다. '또 내용을 빼먹으면 어떡하지?, '못 들으면 어떡하지?' 처음으로 불안함이라는 걸 배웠다. <꾸중>만 들었을 때는 혼날까 봐 불안하기만 했지만, <질책>을 듣고 난 뒤에는 알림장에 내용을 빼먹으면 안 된다는 공포와 불안함과 동시에 들었고 이내 실수하게 되는 날에는 내 탓을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 순간부터 스스로를 질책하는 아이가 되었다. 부모의 말 한마디에 자존감 낮은 아이가 되어버리고 마는 첫 시발점이라는 말이다.


불호령 한 번에 초등학생 1학년이었던 나는 그보다 더 작아졌고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 당시 어렸던 나의 시점에서는 친구보다는 가족만이 나의 세상이었다. 나의 세상은 온통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껴버린 것이다. 나의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이후로 나는 덩그러니 남겨진 미아로 살게 되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가끔 상장을 타오거나 성적을 잘 받아오면 엄마가 칭찬을 해주곤 한다. 그러나 그런 반응들은 대체로 그녀의 기분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어린 나의 눈에는 이렇게 비쳤다.


: 여기서 딜레마에 빠진다.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람으로 표현했는데 어쩐지 그녀를 탓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드는 와중 딱 한 한가지 생각만이 명확하다.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를 성인과 비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는 갓 태어난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배우고 교육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배움이 부족했던 작은 짐승이었던 것뿐이다. 난 그녀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그 자체에 대한 꾸밈없는 서술이다.


자신의 기분이 좋으면 호응을 잘해주고 기분이 나쁘면 건성이거나 무시. 실제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어릴 적 나의 눈에 엄마는 그저 맞춰줘야 할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난 그녀의 반응을 기대할 수 없었고,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시시각각 변할 그녀의 기분을 내가 알 리가 만무했으니 맞춰줄 수도 없었다. 내 세상에게 기대를 저버린 후부터 나에게 자랑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생기거나 해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기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방방 뛰며 자랑해봤자 돌아오는 건 삭막함일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분명 내가 상처받을 것이 뻔하니까. 가끔 보여주는 정말 기뻐해 주는 듯한 모습을 봐도 마음속에 울림이 없었다. 일관되지 않은 반응에 내 눈빛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장단에 맞춰줬어야 했던 걸까? 나는 맞추지 않기로, 맞출 일을 만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첫 결핍이자 회피의 시작이다. 그렇다. 나는 회피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부모로부터 타인에 대한 기대감을 잃고 성취감과 칭찬, 공감, 사랑 그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


사람들로부터 내 이야기에 관한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상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상관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그런 것이기에 받아들였다. 받아들이기 위해서 난 인정했다. 내가 마음이 정말 여리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 누군가는 나에게 '그래도 엄마한테 더 부딪혀봤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할 수 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본능적인 감정들이 그 순간순간을 만들었고, 그 찰나가 모여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다. 본질은 임기응변에 거역할 수 없다. 나는 유약한 내 모습을 그 자체로 온전히 인정하며 내 안의 정답을 그렇게 내렸다.


나의 글은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이고 어쩌면 편협한 이기적인 내용일지도 모른다. 흐릿한 어릴 적 기억을 붙들고 열심히 그날의 아픔을 회상할 때면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이 탐탁지 않지만 그 또한 거스를 수가 없다. 난 스스로를 연민하길 원해서 우는 게 아니다. 그저 본질/본능을 거역할 수 없기에 흐르는 눈물인 것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나를 두고 자기연민이 심한 사람이라며 폭력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돼버리는 것이다. 회피형 애착유형에는 자기연민이 심하다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기에 나는 잠시 그것을 해명하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하려는 긴 얘기에 회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지만 애착 유형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은 내가 느낀 결핍과 회피가 '참는 것'과 엮여버리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일찍이 나는 독립심을 남에게 의지하고 싶어도 참는 마음이라고 인식했다고 했다. 결핍이나 회피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나는 예민한 성격임에도 잘 참는 착한 아이였다. 말도 정말 잘 듣고 인사도 정말 잘하고 주위 어른들이 나를 정말 예뻐했었다. 나는 그런 예의와 규범을 사랑했다. 규칙을 지키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잘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핍이 생기고 회피 성향을 가지게 된 이후로 이전의 좋아하던 일들을 모두 상실했다. 인사도, 규칙에도 흥미가 가셨다. 잘못된 부분까지 참기 시작했다. 어린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이 있다.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 나를 위해 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미아가 됐다. 직언하자면 나는 스스로를 질책만 할 줄 아는 머저리가 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찐따가 되기 쉬운 인간이 돼버린 것이다. 나는 내가 싫은 것들까지 감내하고 꾹 참고 견뎌내며 살게 됐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아무런 표현을 할 줄 모르게 됐다. 감정의 언어를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지고 스스로도 감정을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사실 나는 원래부터 그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내 안에서 도태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잔인하지만 난 감정을 죽여버리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걸 인정하는 것이 내 회피에 대한 핍박이다.


그렇게 나는 감정을 죽이고 어딘가 일그러진 독립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됐다. 정작 나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독립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정말로 웃긴 일이다. 사람은 급하면 급할수록 진짜 의미에 대한 감각은 잃어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어버리는 것에 대해 신봉하며 저도 모르게 그걸 따르기도 하는 것이다. 잘못됐다는 걸 눈치챌 여유가 그만큼 없던 것이겠지. 나에겐 그런 일그러진 독립심이 내 고통을 해명해줄 유일한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나만이 나를 위로해본다.

keyword
팔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