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라 Jul 13. 2018

7월 고3,
네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

어느 고3담임의 일기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이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나는 누군가에게 유용한 정보를 준다거나 누군지 모를 독자를 의식하며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검색창에 ‘고3’만 입력해도 내 글이 바로 보이니 오히려 솔직해지지 못하고 움츠러들거나 스스로를 검열했던 것도 같다. 고3으로서의 입시상담을 위해 이 글을 검색했을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이곳은 한 고3담임의 넋두리 공간이다. 더불어 수많은 아이들의 든든한 꽃받침이 되고자 하는 한 선생의 거울이기도 하다. 너무 오래 자신을 비추지 않으면 못난 모습으로 살아갈 것 같아 이렇게 성찰하고 아이들에게 잘못을 고하기도 하는 공간인 것이다. 모든 고3담임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한 개인이 겪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넘어져도 괜찮아. 조금 쉬었다 가도 돼.

  기말고사가 끝났다. 대부분 수시로 대학을 가는 아이들에게 정말 내신이 끝난 것이다. 또다시 아이들은 등급이 찍힐 것이다. 누구는 올랐지만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떨어졌다. 친구를 밀쳐야만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그만큼 공부에 쏟은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많은 거야. 그 정도도 노력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지마’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6등급을 받은 라은이도 5등급을 받은 민수도 모두 밤11시까지 매일 남아 열심히 했는데...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방과후, 야자도 안하는 수빈이도 4등급이 나오는데....  하지만 이런 반례들에도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고 북돋운다.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들의 상실감과 좌절을 어루만져야 한다. 무릎 꿇고 넘어지는 모습들을 보며 뚜벅뚜벅 걸어가 손을 잡아 일으켜주어야 한다.     


그래도 모두에게는 어딘가 갈 대학들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어른을 맞이할 것이고, 저마다의 삶의 문을 열 것이다. ‘나’의 모습으로 스스로 우뚝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대학’이라 이름 붙여도 좋다. 고3담임은 인생이라는 대회에 출전하기 전 마지막 훈련을 함께하는 코치 같기도 하다. 나의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만났을 때 쉽게 무너지지 않고 행복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그 강인함을 만드는 훈련이 지금의 이 수능 공부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깔깔거리고 웃는 쉬는 시간의 농담들, 나는 널 믿고 있다는 눈빛과 미소, 때로 야자를 도망가서 다음날 아침부터 혼나지만 다시 다잡는 그 마음의 조각들일지도 모른다.     


  요즘 야자시간마다 칠판에 글귀를 하나씩 적어둔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기적은 간절히 바라는 만큼 일어난다’ 따위의 격언들이다. 이러한 말들은 그만큼 마음이 얇아지고 기댈 곳이 필요할수록 와닿는 법이다. 나도 수험생활 무렵 이러한 단어와 문장들에서 힘을 얻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오글거린다고, 다른 반 아이들이 놀린다고 아우성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추천까지 한다. 아무쪼록 내가 아이들의 충전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곧 졸업앨범을 찍는다. 추억은 박제되고 우리는 그곳에서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가장 뜨거운 여름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다. 창밖에는 어느새 익숙한 어둠이 가득하다. 보이지 않아도 저 너머에 별들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2018.07.13.


   




작가의 이전글 나는 깊은 잠을 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