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3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고 답답했다. 아이들이 모두 등원하고 나면 조금 잔잔해지겠지 했지만 이상하게 더 요동쳤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책 한 권을 들고 동네 책방으로 나섰다. 밖은 비가 왔었는지 축축했고 구름은 아직도 더 내릴 비가 남았는지 우중충하게 남은 비를 뿌릴준비를 하는 듯했다. 책방으로 가는 길은 시원했고 내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바람이 더 세게 소리를 내었다. 책방 사장님은 언제나 웃는 얼굴로 "잘 오셨어요"라는 말은 안 했지만 미소로 그렇게 인사해 주었다. 오늘은 작은 창문 앞에 앉아 책을 읽었다. 창문 밖으로는 하얀색 아파트가 보였고,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무와, 풀들 그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의 흔들림들이 보였다. 딱딱하게 생겼지만 포근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최근에 북토크에서 만난 안리타 작가의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제야 나의 마음이 잔잔해졌다. 내 마음속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책방으로 가고 싶다고 마음속에서 두드렸던 걸까. 조용히 차분한 음악에 집중하며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창문밖으로 요란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본 구름은 얼마나 많은 물을 품고 있었는지, 아니면 얼마나 많은 울음을 참고 있었는지, 울컥 쏟아진 게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앞에 보이는 나무가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나무에 달린 열매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내어 꼭 붙잡고 있었다. "밖에 있는 나무는 모과나무예요. 바람이 저렇게 부는데도 모과는 절대 떨어지지 않고 꼭 매달려 있더라고요." 나무를 걱정하는 내 마음이 사장님에게도 전해졌는지 사장님이 조심히 말해주셨다. "엄청 뜨겁던 한여름에도 잘 붙어 있더니, 저렇게 바람이 부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잡고 있는 모과가 대견하면서도 기특해요." 사장님의 말에 나는 누군가 툭 치면 넘어올 눈물이 눈가에 고이고 있었다. "사장님이 모과나무를 보며 대견해하고 기특해하는 마음이, 저희 엄마가 저를 보는 마음과 같네요." 나의 말에 사장님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따듯한 눈으로 촉촉 해친 나의 눈을 바라보며 다 괜찮다는 듯 웃어주었다. 정말 나를 위태롭게 보던 엄마가 대견하다고 말해주듯이 사장님은 모과나무를 보며 위태롭지만 잘 버티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요즘 사랑하는 아이들을 혼자 키우는 게 버거웠던 건지, 사랑하는 사람이 변한 것 같다는 불안함이 나를 힘들게 했던 건지, 나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이 무서웠던 건지 번아웃과 함께 공황장애가 나를 찾아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던 존재를 무시하며 지내다 이제는 안 되겠는지 공황장애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내가 왔다고, 무시하지 말고 나를 보라고. 열심히, 부지런히 잘 살고 있던 나에게 왜 찾아오냐고 화를 냈더니 너 자신을 돌보지 않길래 너한테 오는 것쯤은 쉬웠다고 말하며 오히려 나에게 윽박을 지르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고 허무했었다.
모과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를 보고 있는 것과 같았다. 여름 태양이 뜨거워 물기 한 방울 없이 말라버릴 법도 한데, 가을바람이 세차게 흔들고 비가 떨어지라고 한 방 두방 펀치를 날려도 끝끝내 버티고 나는 떨어지지 않으리. 이 악물고 버티는 저 모과열매가 나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나의 모과열매는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었는데 창문 밖의 모과가, 창문 안에서 조용히 응원해 주는 사장님의 음성이 나를 붙잡게 해 주었다. 고마운 나무와, 감사한 사장님. 다 잡힌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한다. 조금 있다가 아이들 하원시키러 가는 길에 나의 모과나무가 잘 있는지 또 한 번 보러 다녀와야겠다. 나의 모과나무가 가을 햇빛에 은은하게 빛나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