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휴직을 마무리하며
회사 복직원을 내고
어제 새로운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시 돌아오시는 것 맞죠?"
내게 복직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전화였다.
"당연하죠. 다음 주에 복직합니다."
그때 보자는 인사로 간단히 통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다음 주 월요일 16일에 복직을 한다는 복직원 전자 결재를 올렸고, 오늘 인사팀 담당자에게 전달이 되었다. 내일이면 복직 인사명령이 나고, 다음 주 월요일 출근 시간에 맞춰서 회사로 나가야 한다. 다음 주부터는 또다시 주간업무 보고를 매주 올려야 하는 월급쟁이가 되어야 한다.
솔직히 걱정은 된다. 몇 달간 쉬웠던 회사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가득하다. 그래도 거의 20년 정도의 회사 생활 경력이 있으니 적응은 잘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육아 휴직을 하는 시간. 회사에도 나에게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회사에는 조직 개편이 있어서 나는 새로운 팀으로 배치가 되었다. 신생팀이라서 팀원도 3~4명. 팀장은 같은 팀에 있던 나보다 조금 어린 동료가 되었다. 그래도 예전팀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내게 괜찮은 선택지가 틀림없다. 어차피 신사업이나 신기술 기획하고 전략을 짜는 것은 항상 백지 위에 새롭게 쓰는 작업이기에 새로운 팀에서 시작한다고 특별한 것도 없다.
회사 생활은 그렇지만, 육아 휴직은 나에게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시간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해보지 못했던 많은 경험들을 했고, 아이와 아내와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휴직을 마무리하면서 글로 정리해 보니, 그래도 몇 달을 헛되이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이 시간이 지금 나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는 것 같다.
1. 아이와 함께 한 소중한 시간
육아 휴직 본연의 목적답게 아이와의 시간이 많아졌다. 미운 7살답게 아들은 아빠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가끔씩 도전도 했다. 미운 정과 고운 정 모두 늘어나는 시간이었다. 함께 티격태격 몸으로 부딪치면서 몇 달을 보내다 보니까, 진짜 아빠의 역할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시나브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역시 좋은 아빠는 그냥 함께 있다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열심히 노력해야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2. 브런치 작가, 그리고 100개의 글
휴직하고 제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오늘 드디어 브런치에 100번째 글을 남겼다. 일하면서 100개 글쓰기는 쉽지 않을 텐데, 휴직을 하니까 그게 가능했다. 글 쓰면서 나의 이야기들을 다른 이들에게 함께 나눠줄 수 있었고, 많은 격려와 칭찬을 받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했다. 그리고 기대하지 못했던 누적 조회수가 5만 회가 넘었고, 월간지에 글을 기고하는 행운도 얻었다. 작가로서의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는 단계. 그것만으로도 앞으로가 기대된다.
3. 제주도 가을 한 달을 즐기다
처음 휴직을 생각할 때 제주살이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내의 제안으로 생각해낸 제주도살이. 제주도의 가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11월 대부분 제주도의 하늘은 맑았고, 기온도 여행하기 최고의 날씨였다. 그 시간 동안 제주도의 많은 곳들을 다녔다. 한라산도 두 번이나 올랐고, 올레길도 5개나 걸었다. 마라도와 가파도, 우도 같은 섬 속의 섬도 들렸고 박물관을 비롯하여 각종 테마공원들을 아내, 그리고 아이와 같이 했다. 제주의 맛있는 음식들도 하나하나 챙겨 먹었고, 귤 따기 체험부터 낚시와 투명카약, 말타기, 레일바이크까지 제주의 모든 것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4. 꿈같은 뉴질랜드 4주의 기억
20년 전부터 그토록 원했던 가족들과의 캠핑카 여행.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밀포드사운드까지 7박 8일의 캠퍼밴 여행을 다니면서 그 한을 풀었다. 2018년 퀸스타운을 여행하면서 꼭 한 번 1주일 정도 퀸스타운에 머물고 싶었는데, 홀리데이 아파트에 머물면서 퀸스타운의 초여름을 제대로 경험하고 왔다. 동네 주민처럼 슬리퍼 끌고 나가서 호수에서 멍도 때리고 개울에 발도 담그고, 동네 쇼핑몰 구경도 하면서 보낸 일주일은 힐링 그 자체였다. 남섬에서 북섬으로 2,000km 드라이브를 하면서 뉴질랜드의 연어와 크레이피시를 먹고 거대한 활화산과 화산 계곡의 분화구 등을 처음으로 눈으로 확인했다. 세상에서 가장 맑은 호수가를 걷고 숲 속의 온천에서 조용히 온천욕을 즐긴 것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5. 몸무게가 5kg가 빠졌다
휴직을 하면서 다이어트도 하나의 목표였다. 남편의 과체중을 보다 못한 아내는 나에게 PT(개인 트레이닝)을 시켜줄 정도였다. 그렇게 빠지지 않던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체중계를 확인해보니 무려 5kg이 빠졌다. 목표치의 절반이다. 복직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여행 피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이렇게 빠진 몸무게를 유지만 해도 대성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6. 인생 제2막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
회사를 벗어나면서 회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인 압박도 심해졌다. 아직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기에 또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다만, 나는 복직과 함께 몇 년 후에 다시 멋진 퇴사를 꿈꾸고 있다. 1년 후가 될지, 아니면 5년이 될지, 혹은 정년을 다 채우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어차피 나는 월급쟁이고,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 끝을 준비하는 시간을 더욱 고민하게 되었다.
7. 바닥이 보이는 통장 잔고와 일에 대한 의지!
열심히 여기저기를 다니느라고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제 돈을 다시 벌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때문에 복직에 대한 동기 부여가 확실히 되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금 부담도 커지고 아이도 올해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교육비 부담도 늘어난다. 열심히 일해야만 이런 곳에 들어가는 돈을 채울 수 있다.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하지 않고 회사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나의 육아 휴직 성과들이다.
진짜 이제부터가 인생 후반전인가? 아니면 연장전일까? 아니면 아직도 설마 전반전? 내 삶이 어찌 흘러갈지 궁금할 뿐이다.